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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아디다스와 파나소닉의 공통점

류성 기자I 2020.03.14 07:09:00

박정수 교수의 현미경 '스마트팩토리'

[박정수 성균관대 스마트팩토리 융합학과 겸임교수] 개인화 고객과 시장의 변화는 제조업의 실질적인 변화, 즉 ‘고객과 시장에 대한 대응역량’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 경영혁신분야의 석학이자 리엔지니어링(re-engineering) 창시자인 마이클 해머 박사는 저서 『리엔지니어링 혁명』에서 “1990년대 초, 미국기업의 업적이 나쁜 이유는 과거가 매우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를 현재 대한민국 제조업에게 적용해 본다면, “현재 제조업의 업적이 나쁜 이유는 과거가 매우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 동안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수 차례의 불황을 경험했지만 거시 경제 지표는 호황이었다. 그런데, 보다 근본적인 제조업의 문제는 과거에 성공했던 ‘제조와 마케팅 방식’이다. 현재는 물론, 장차 닥쳐올 ‘개인화 고객(Click Creation)시대’의 글로벌 경쟁 하에서 미래의 대한민국 제조업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현명한 제조업자라면 아마도 자신이 종사하는 제조 비즈니스에서 과거 불황 시기에는 겪어보지 못한 다른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아직 내 눈 앞에 선명히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예고된 ‘거대한 물결’의 ‘전조(前兆)’ 같은 것이 아닐까?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경제환경의 악화는 누적된 문제를 드러내는 계기가 될 것이고, 혹은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서 살아 남기 위한 ‘개혁을 향한 울림’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계속 쌓아왔다고 하더라도 오랜 역사 속에 누적된 경영의 구태(舊態)를 언젠가는 씻어 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개선을 거듭해 온 지극히 세련된 비즈니스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그 기본적인 사고가 시대의 변화에 적합하지 않다면 결과적으로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일찍이 좋은 업적을 올리고 있던 기업일수록, 또한 호황이 오래 지속되던 기업일수록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대응역량은 늦게 마련이다.

아무리 환경변화를 알아챈다 하더라도 체득화 된 비즈니스 관행이나 방법을 백지화하고 새 출발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스마트팩토리와 4차 산업혁명 이야기가 ‘변화에 대한 울림’으로 느껴지지 않고 ‘이 또한 지나가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대응역량은 소위 ‘개선’과 다르다. ‘개선’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 상태를 바꾸는 것이다. 어느 정도 일정하게 변화하는 시대, 예를 들어 계속 성장곡선을 이룩한 시대라면 과거를 기준으로 ‘개선’을 도모하여 장래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변화는 너무도 근본적인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의 시대를 대응하기 위해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 상태를 개선하고자 하는, 일반적으로 통용된 지금까지의 경영혁신 방법론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과거에 경험했던 변화는 앞으로 맞이하게 될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고 있는 변화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개념을 디자인하는 역량’ 수준으로 볼 때, 대한민국의 제조업은 경쟁해야 할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의 제조업은 ‘개념을 디자인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Creative Idea)에 대해 미국, 독일, 일본과 같은 선진국에서 배워오거나 사오면 된다’는 뿌리깊은 착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개념을 디자인하는 역량’을 포함한 ‘제품설계와 개념설계’는 선진국에서 배워 국내에서 진행하고, 저렴한 인건비와 많은 인구가 있는 개발도상국에서 생산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독일의 아디다스, 일본의 파나소닉, 그리고, 미국의 수많은 제조기업들은 스마트 팩토리 구축을 위해서 해외로 나갔던 공장들을 속속 자국으로 되돌아오게(Reshoring, 제조업의 본국 회귀) 하고 있다.

왜냐하면, 제조업에서 ‘개념을 디자인하는 역량’과 ‘생산 역량’은 따로 양립할 수 없는 특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생산 현장이 제품만 생산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육성하고 제품의 부가가치가 창출되며 더 나아가 미래의 개념이 디자인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즉, 현장의 경험 없이는 ‘개념을 디자인하는 역량’도 없는 것이다.



‘개념을 디자인하는 역량’이란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에 대해 새로운 개념과 경험을 제시하는 역량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는 기존 관점과는 다르게 상품과 서비스, 고객과 제조업의 현상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미 정립되고 고착화된 구조를 새롭게 재구조화할 줄 알아야 하며, 이전에 없던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디자인을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말 그대로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하는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역량’이라 할 수 있다. 덧붙여 ‘실행 역량’은 새로운 개념을 실체화하고 구현하기 위한 역량이라 할 수 있다.

경영 관점에서 보는 ‘개념을 디자인하는 역량’이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사용자 경험(UX-Design)과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기존 경영 환경에서 아직 실체화되지 않은 혁신적 제품과 서비스를 구상하는 것이다.

또한, ‘실행 역량’이란 ‘개념을 디자인하는 역량’에서 구체화된 것을 실제로 사업화하여 제품을 제작하고 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경영 관점에서 두 역량 중 어느 한 쪽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최근 변화하는 경영환경에서 보자면 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단연코 ‘개념을 디자인하는 역량’이라고 확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민소득 3만불 시대로 상징돼 왔던 GDP(국내 총생산 지표) 12위의 ‘대한민국 제조업’에 왜 길고 긴 정체 현상이 발생되고 있는 것일까? 벤치마킹(Benchmarking)과 실행역량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왔던, 지금의 ‘리더들’을 탄생시킨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이 20세기 한국 산업의 빠른 성장을 주도해왔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임시변통, 선택과 집중의 실행역량이 이제 ‘개념을 디자인하는 역량’이 발휘되어야 할 시대에서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나아가 우리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어쩌면 벤치마킹과 임시변통, 선택과 집중이라는 오랜 ‘단기 업적과 실행역량의 습관’에 젖어있는 건 아닌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개념뿐만 아니라 경험을 디자인하는 시대이다. 소비자 경험 디자인(CX-Design)과 사용자 경험 디자인(UX-Design) 측면에서 보면 사용자의 니즈(Needs)를 분석해 개개인의 라이프 스타일 변화와 소비자 기호의 다양성을 해결해야 하는 개인화된 ‘고객 맞춤형 생산’ 시대이기도 하다.

즉, DIY(Do it Yourself)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질 수 밖에 없고, 이는 생산 뿐만이 아니라 공급망(SCM)의 변화로 견인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이버 마켓(Cyber Market)의 추세 속에서 ‘개인화 생산(Personalized Manufacturing)은 이미 4차 산업의 핵심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개인화 생산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스마트 팩토리는 기본이다. 엣지 컴퓨팅(Edge Computing)을 바탕으로 제조 현장 빅데이터(Big Data)를 수집하고, 데이터 애널리틱스(Data Analytics)를 통해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현장과 동기화된 사이버 모델(Cyber Model)을 만들어야 한다. 과거처럼 시스템에 종속되도록 개념을 디자인 하는 것은 새로운 제조업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효율적인 설계, 운용(Operation)을 수행하는 체계화된 모델로서 주문변경, 공정이상, 설비고장 등의 실시간 현장 상황을 인공지능으로 활용하여 최적의 인지, 판단, 제어할 수 있는(optimized control) ’고객 맞춤형 스마트 팩토리 구축‘은 ’개념을 디자인하는 역량‘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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