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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 지점장을 지내다 외환위기 후 명예퇴직한 이용수(72) 국민문화연구원장은 지난 21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국민은행 정읍지점장이었던 1997년 11월 중순의 기억은 아직도 아프다.
사실 국민은행은 퇴출 대상이었던 다른 은행보다 사정이 나았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8%를 못 채운 은행들이 줄줄이 퇴출당하면서 그나마 안전하다는 국민은행으로 예금이 몰렸다.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은행 지역본부에서 매일 예금성적이 부진하니 하루빨리 만회하라는 독촉 전화에 시달렸지만 상황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이 원장은 “한 때 우리나라 산업을 일으키는데 큰 공을 세운 은행들인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며 “예금은 이제 아무 의미 없이 넘쳤고 오히려 예금을 많이 받다 보면 수지면에서 애로가 생겨 또 다른 걱정거리가 됐다”고 털어놨다.
안전하긴 했지만 그래도 말로만 듣던 은행 빅뱅 시대가 오면서 국민은행 역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피해 갈 순 없었다.
이 원장은 “은행마다 직장마다 명퇴 바람이 유행처럼 번졌다”며 “그땐 버티는 것이 의미가 없던 시절이어서 일단 나와 다른 일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생각했다”고 그 시절을 떠올렸다.
광주상고를 졸업하고 1966년에 입행해 30년 넘게 몸담은 곳이었다. 삶의 터전이었던 곳을 나오려니 불안하고 서운하면서도 외로움이 밀려왔다.
이 원장은 “1만4000명의 동료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이고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고객과의 거리도 멀어진다는 생각에 울컥했다”며 “생활비와 아이들 학비조달 같은 경제적인 문제와 결혼시킬 때 사돈 될 집에서 볼 시선 같은 현실적인 문제도 닥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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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장은 “은행 지점장을 할 때에 비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국민은 특유의 근성으로 IMF 체제를 조기에 졸업하고 그 이후로 눈부신 성장을 일궜지만 이 원장은 지금도 IMF시대와 다를 게 없다고 본다.
그는 “그때 우리가 좀 더 확실히 개혁하고 구조조정을 했으면 더 좋아졌을 텐데 너무 단기간에 풀리니까 지금 더 어려운 상황이 된 것 같다”며 “청년 실업이나 양극화와 같은 또 다른 문제가 경제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요즘도 청계산 새벽 등반을 자주 한다. 청계산 582.5m를 오르면 국민은행이 기증한 팻말이 있다. 은행마다 산을 한두 개씩 맡아 관리하는 게 유행이었던 시절에 국민은행은 청계산을 맡아 기념으로 세운 팻말이다.
이 원장은 “만일 국민은행이 그때 없어졌다면 팻말도 사라졌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은행도 역사성을 갖고 있는데 과거 외환위기 때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