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키우기 위해 넘어야 하는 수많은 사회적 장벽을 생각하며 나는 아들을 바랐노라.’ 이 고백은 딸 키우기 힘들다는 한국 부모의 속마음이 아니다. ‘뉴욕타임스’ 매거진 등에서 기고 작가로 활동 중인 저자의 토로다. 그가 말하기 껄끄러운 비밀이라며 꺼낸 이야기의 첫 토막은 이렇다. 저널리스트로서 20년간 활동하며 여자아이에 대한 글을 쓰고 여자아이를 키우는 방법을 설파해왔다. 그런데 막상 임신을 하니 덜컥 겁이 나더란 거다. 딸을 낳으면 어떡하나. 도대체 그 분홍색과 파랑색 사이엔 무엇이 있는 건가.
책은 여자아이는 어떻게 여자아이가 되어가는가에 대한 진지한 진단이다. 목적은 대중문화와 상업전략 때문에 여자아이들의 성 정체성이 왜곡되는 현실을 고발하는 데 있다. 성별 차이가 극대화된 건 1980년대부터 성행한 마케팅 전략 탓이란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1900년대 초반만 해도 성별에 대한 색깔 구분은 없었다. 1930년대 소비타깃을 설정하려는 한 의류제조업체의 설정이 확산된 거다. 결국 남녀 성에 맞는 색깔을 정해서 홍보하면 같은 상품을 한 번 더 팔 수 있다는 논리까지 가세했다. ‘핑크 팩터(pink factor)’가 그것. 가령 야구배트에 분홍색을 칠해 시장에 내놓으면 여자아이에게 한 번 더 팔 수 있단 얘기다.
사실 확인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업계 최대의 완구박람회,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장난감 가게, 4~6세 유아들 미인대회까지 찾아다녔다. 그러고 내린 결론은 이렇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분홍색인 여아용 장난감 가게가, 여성스러움을 끝없이 강요하는 ‘공주신화’가 과도하게 ‘여성스러운 여자아이’(girlie girl)를 길러내고 있다는 것. 현상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주류미디어를 소비할수록, 공주신화에 노출될수록 주체적인 여성성은 더욱 어려워진다고 했다. 결국 아름다움과 섹시함을 중시하는 여성들은 야망이 적고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는 거다.
성은 만들어지는 것이란 페미니즘의 입장과 성은 타고난 것이란 생물학적 입장 모두를 저자는 수용한다. 그러나 문제의 핵은 어느 한쪽이 아니라 이 양쪽을 교묘히 오가는 상술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부모가 무심코 고르는 색이 아이 일생의 빛깔을 결정한다. 부지불식간에 이뤄지는 행위가 이뿐이겠는가. 분홍빛 산업자본과 소비주의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딸아이를 지켜야 할 부모의 소임이 더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