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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장 뗀 정사각형 회의테이블서 '엘사' 탄생

오현주 기자I 2014.10.02 06:42:30

픽사·디즈니 '토이스토리' '겨울왕국'의 캣멀
'창의적 경영' 비결 풀어
픽사 신화 DNA로 디즈니 부활
소통 중요성·규칙 최소화 강조
…………………………………
창의성을 지휘하라
에드 캣멀·에이미 월러스|440쪽|와이즈베리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샌프란시스코 베이브리지 근처, 예전에 통조림 공장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1만 8000평 넓이의 픽사 건물은 스티브 잡스가 설계했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스티브 잡스 빌딩. 특징이라면 잡스의 별난 성격처럼 빚어졌다는 것. 직원 누구라도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꼼꼼하게, 또 화려하게 디자인됐다. 야구장, 축구장, 수영장에다가 600석 원형극장까지 구비해서.

같은 듯 다른 예를 하나 더 보자. 이번엔 테이블이다. 픽사가 작품에 대해 논의하는 회의실엔 직사각형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원체 크고 긴 탓에 끝과 끝에선 대화는커녕 눈도 마주치기 어려운 형편. 그래서 나온 대안이 감독·프로듀서·각본가 등 창작부서 리더들을 가운데 몰아 앉히기였다. 그런데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발언의 진원이다. 주로 말들은 가운데 토막서 나왔고 멀어질수록 입을 다물었으며 중앙의 의견이 핵심으로 수렴됐다. 그래서 테이블을 갈아치우기로 했다. 정사각형으로.

두 사례의 공통분모는 창의성이다. 잡스의 요란한 건물설계는 뭔가 있어 보이려는 심리에서 나온 게 아니다. 창의적 업무를 지원하려는 목적의식이다. 각을 다시 잡은 테이블도 창의적 대화를 해보자는 장치였다. 당연히 효과를 봤다. 그토록 강조하던 소통에 근접했으니. 그런데 이 혁신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 것 같은가. 간단한 테이블만 보자. 무려 10년이란다. 이 사실은 픽사 구성원까지 화들짝 놀라게 했다. 자유분방하고 솔직한 소통을 기업원칙으로 신봉해왔던 터였으니.

굳이 이들 상황을 드러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창의적 공간의 중요성. 공간은 아이디어와 견해가 흘러가게 통로를 터준다. 다른 하나는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 가진 거라곤 창의밖에 없는 이들에게도 창의는 어렵다.

1986년 잡스 등과 픽사를 공동설립한 에드 캣멀이 결코 만만치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기업요건인 창의성에 대해 설파했다. 2006년 픽사가 디즈니에 합병된 이후부터 픽사·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장직을 맡고 있는 캣멀은 30여년간 이들 조직에 기업경영 DNA를 안착시킨 인물로 꼽힌다. 그 경과는 대단한 성과물로 빛을 봤다. 성공을 넘어 혁명으로 기록된 첫 3D 애니메이션인 픽사의 ‘토이스토리’(1995)부터 16년 부진에 종말을 고한 디즈니의 ‘겨울왕국’(2013)까지. 캣멀은 그 휘황한 파노라마에 창의성을 얹어 회고한다. 그런데 가시가 꽂혀 있다. 그게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었겠느냐는 일침이다.

▲잘 나가던 기업이 몰락하게 됐다면

당장 두려운 것이 뭐냐고 기업에 묻는다면? 누군가 잔뜩 겁을 줬을 미래전략, 리스크, 오류 등을 들먹일 공산이 크다. 조직의 불안은 대개 이런 보이지 않는 형태에 휘둘린다. 그러나 캣멀에 따르면 결국 기업이 몰락하는 건 오류와 리스크를 최소화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위기가 드러났을 때 대응할 수 있는 탄력적 구조를 갖지 못해서다.

픽사의 성공은 이 부문의 유연한 대응 덕이라고 했다. 가령 ‘직급에 관계없이 모든 구성원에 문제해결의 권한이 있으며 허락 없이 문제해결에 나설 수 있다’는 암묵적 합의. 대단히 민주적이면서 대단히 발칙한 이 발상이 주춧돌이 됐다고 확언한다. 한 가지 더 있다. 지속가능성이다. “기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건 어렵지만 성공한 기업을 유지하는 일은 더 어렵다”는 게 캣멀의 지론이다. 물론 창의성도 다르지 않다.

▲“창의적 천재도 비전은 쉽게 말하지 못하는 법”

창의성에 관한 한 일관된 착각이 있다. 뛰어난 비전을 가진 외로운 천재가 번뜩이는 통찰력으로 획기적인 작품을 구상한다. 이윽고 팀원들을 이끌고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간 뒤 종국엔 원하는 결과물을 손에 쥔다. 하지만 캣멀이 단언컨대 이런 영웅담은 세상에 없다. 창의적인 비전은 영감이 아니라 오랜 세월 헌신과 고생으로 쌓아가는 실적이란 것이다.

픽사를 향한 세상 밖 시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발한 상상력,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깔린 뒤 기술·조직력으로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실망스럽겠지만 캣멀의 답은 ‘아니올시다’다. “더럽게 형편없다”가 대개의 첫 아이디어란다. 이 조야한 단상을 ‘창의적 아이콘’으로 키워낸 건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걸림돌은 ‘창의성이 부족한 개인’이 아니라 ‘창의성을 억압하는 제작환경’이란 말이다.

▲너무 많은 규칙은 95% 직원에게 모욕

당연히 충돌할 것이라 여기는 예술과 상업의 절묘한 균형을 구축한 것. 픽사의 창의성이다. 배경에는 조직문화, 업무프로세스, 말이 통하게 만든 수평성이 포진해 있다. 여기에 결정적인 요소가 덧붙었으니 바로 사람. 창의성도 아이디어도 결국 ‘사람의 것’이란 데 무수한 방점을 찍었다. 이쯤에 붙인 제언이 규칙에 관해서다. ‘하라, 하지 마라’는 수많은 규칙은 그저 경영자에게 편리한 도구일 뿐, 제대로 일하는 95% 직원에겐 모욕일 수 있다는 거다. 5%를 규제하려다 95%의 창의성을 억압할 수 있단 논지다.

몸담은 조직의 현장감을 살린 덕에 캣멀의 창의성엔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시행착오가 어찌 없었겠는가. ‘잃어버리고 되찾은 것’이란 서문은 되레 결론 같다. 30년간 녹였을 덩어리가 잡힌다. 잡스의 아성에서 살아남게 했을 성찰은 인간적 고백으로 대신했다. “나 역시 이곳에서 일하는 목적을 잃고 방황했던 적이 있다”고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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