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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세종대왕에게 부끄러운 한글날

논설 위원I 2015.10.09 03:00:00
제569돌 한글날을 맞아 한글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한글이 과연 품격에 걸맞는 대접을 받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독창성과 우수성을 인정받는다고 내세우면서도 실제 생활에서는 푸대접이기 일쑤다. 한글날에 즈음하여 창시자인 세종대왕과 한글을 기리는 행사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으나 이 또한 연례행사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정체불명의 언어들이다. 그중에서도 텔레비전의 책임이 작지 않다. 집집마다 안방을 점령한 텔레비전과 인터넷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신조어들이 계속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코미디 프로그램의 걸러지지 않은 표현과 대중가요의 가사들이 이러한 추세에 한몫 거들고 있다. 휴대전화 메시지의 문자들이 오염되는 등 청소년을 중심으로 언어 왜곡이 심화되는 것이 그런 결과다. 방송사들이 아름다운 우리말 사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뜻을 모았다니 지켜보고자 한다.

사진=연합뉴스
도심 거리마다 늘어서 있는 간판들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한글보다 외래어 간판이 더 많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요에 따라 영어나 한자로 표현해야 하는 경우가 없지 않겠으나 무분별한 외래어 취향에 사로잡힌 탓이다. 청소년들의 티셔츠나 모자, 가방에 적힌 외래어 문구들은 더욱 심각하다. 광화문 동상에서 내려다보는 세종대왕의 심사가 어떠할지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지금의 복잡한 맞춤법 정책이 한글에 대한 친근감과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닌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역, 니은, 디귿을 배우기보다 띄어쓰기가 더 어려워서야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내세우기 어렵다. 종래 비속어로 간주하던 생활 용어들을 표준어로 인정하는 기준도 명확하지가 않다. 아예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국내 지명이나 문화재 명칭을 영어 알파벳으로 표기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좀 더 명확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우리도 헷갈리는 터에 외국인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리 없다. 국제화 시대를 맞아 우리의 문화와 관광시설은 물론 한글의 과학성을 외국인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글 사랑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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