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K워치]이창용式 인재 발탁, IMF 내부경쟁방식이 참고될 듯

최정희 기자I 2022.04.21 06:09:00

국제기구 11년차가 3주 만에 파악한 한은은
이창용 "내부 경쟁 필요하고 외부와 소통 강화해야"
조사·공보 업무 강화하는 '조직개편안' 마련 중
국장직 선임시 IMF '경쟁 면접방식' 채택하나
한은式 KPI 정립…"조사연구로 성과 평가 받는 문화"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에서만 11년간 일하다 ‘한은사(韓銀寺·외부와 소통하지 않은 조용한 절간)’란 별명을 가진 한국은행의 수장이 된 이창용 총재. 그가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예고했다.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질의에 답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사진=노진환 기자)


지난달 말 귀국한 뒤 19일까지 약 3주간 인사청문회 준비 등에 몰입했던 그가 체험한 한은은 생각했던 곳보다 더 경직되고 보수적인 곳이었다. 이 총재는 한은을 ‘대한민국 최고의 싱크탱크’로 만들기 위해 연구조사에 대한 성과 평가, 내부 경쟁, 외부 소통 등 크게 3가지 키워드를 강조했다. 한은은 조사·공보 업무 등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개편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창용 총재 책상 앞에는 전임인 이주열 총재가 2020년부터 맥킨지, 머서코리아 등 컨설팅 업체 두 곳을 거쳐 만든 조직진단 및 조직개편안이 놓여 있다. 이창용 총재는 “1~2개월 사이에 내부 사람과 얘기해서 (직원들도) 공감할 수 있는 개선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머서코리아의 조직개편안에는 한은의 조사연구를 강화하고 조사역부터 임원까지 5단계의 직급을 3단계로 압축하고 역할에 따라 직무급제를 도입, 수시·다면 평가를 강화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이 총재는 머서코리아의 조직개편안을 기반으로 하되 자신만의 색깔을 입힐 가능성이 높다.

우선적으로 ‘내 연구 성과를 바깥으로 홍보하라’가 한은 직원들에게 주어진 KPI(핵심성과 지표)가 될 전망이다. 한은은 이를 위해 조사·공보 업무를 강화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 총재는 청문회에서 한은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경직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은 중립성이 바깥에서 정부와 많이 얘기하면 훼손된다고 보는 (내부) 프레임워크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하다”며 “중립성과 소통은 별개의 문제다. 우리 의견을 여러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것이 한은의 새로운 업무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갖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은의 연구 성과가 정부나 민간 기업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이 총재의 발언과도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예컨대 한은은 거리두기를 완화할 때 사적 모임 인원을 확대할 것이냐, 영업시간을 연장할 것이냐를 두고 영업시간 연장이 더 소상공인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연구해놓고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추후 관련 연구가 외부로 공개된 이후에야 보건당국이 이를 토대로 거리두기를 완화할 때 영업시간 연장을 우선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연구 성과가 더 빨리 공개됐다면 보건당국의 의사 결정에도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본인이 한 역할에 대해 크레딧(credit, 성과 인정)이 명확하게 주워져서 직급과 관계 없이 자기가 한 리서치(연구)에 대해 평가를 받고 크레딧을 받음으로써 더 열심히 하는 문화를 만들겠다”며 “젊은 직원을 중심으로 본인이 한 리서치나 연구가 외부로 나가는 데 너무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문제를 우선 해결해 한은 직원으로서 자기가 한 업적에 자부심을 느끼게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인사에 대한 관심도 높다. 외부 출신 수장들이 조직 장악을 위해 흔히 하는 것이 ‘발탁 인사’다. 이 총재 체제에서도 발탁 인사가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이 총재는 청문회에서 “내부적으로도 경쟁이 있어야 할 것 같다”며 인사에 있어 내부 경쟁 체제를 도입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 총재가 8년간 국제통화기금(IMF)에 있었던 만큼 IMF식 경쟁 체제 도입이 예상된다. IMF에서는 국장급 인사를 선임할 때 5명 정도 후보군을 놓고 이들을 상대로 각각 면접을 본 후 면접우수자를 발탁하는 데 이 총재가 이런 방식을 한은에 접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은 내부에선 조직개편과 새로운 인사 방식 도입 등을 앞두고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이주열 전 총재가 두 번의 컨설팅을 받고도 조직개편을 시작조차 못한 것은 조직 내부의 불만이 컸기 때문이다. 특히 한은 직원들은 낮은 임금으로 패배감이 큰 상황이다. 연구 성과가 승진 등 인사 보상을 넘어서서 임금 인상으로도 연결될 수 있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이 총재 역시 “몇 년간 공직 경험을 봐선 아무리 위에서 새로운 조직영영에 관한 개혁을 하더라도 밑에서 같이 수긍하지 않으면 어렵다”며 내부 직원과 협력해갈 것임을 밝혔다.

한은 관계자는 “이 총재가 개혁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임기 4년 내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며 “일단 개혁을 한다면 욕을 먹게 돼 있고 개혁에 따른 성과는 그 다음 총재가 보게 돼 있어 개혁도 천천히 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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