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수의 경세제민]대학개혁과 등록금 동결

신하영 기자I 2022.04.07 06:47:58


[국민대 전 총장·명예교수] 흔히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국가정책의 경우에는 실패를 두려워해야 한다. 국가정책이 한번 실패하면 수많은 사람에게 고통과 불행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정책은 실패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식 교육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어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교육개혁은 낙제점이다. 국민에게 항상 실망을 안겨주었다. 때로는 이념에 따라, 때로는 정치적 이해관계로 교육개혁은 철학도 없고 방향도 없이 표류해 왔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예외 없이 교육개혁이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그리고 교육부가 필수 식자재로 도마에 오른다.

대학에 규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학기당 수업시간도 교육부에 의해 정해져 있다. 대학으로 허가를 받으려면 충족해야 할 요건이 많다. 교수의 자격, 재학생 총정원, 편입생 정원, 전공별 정원 재배치 등 규제가 수도 없이 많다.

학교법인에 대한 규제도 만만치 않다. 법인에 수익사업체가 있다면 이 수익에 대한 처분도 엄격히 규제되고 있다. 이외에도 모든 대학의 절차·집행은 교내규정을 만들어 놓고 진행해야 한다. 만약 관련 규정 없이 정책을 결정하고 이를 집행하면 감사에서 지적을 당한다. 규제가 과다하고 시대에 낙후된 것은 사실이다. 100년 전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국가가 대학을 규제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그리고 대학경쟁력의 약화를 모두 교육부 규제 탓으로 돌려서도 안 된다. 대학 내부의 문제점도 많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 규제만 탓하는 것이야 말로 ‘내로남불’이다.

대학규제와 대학 내부의 혁신의지 결여라는 두개의 서로 다른 문제를 구분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우선 규제를 풀려면 규제가 현 상황에서 필요한가를 잘 분석을 해야 한다. 동시에 폐지 혹은 완화할 때 다른 부작용이 없는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필요한 규제인데 무조건 철폐하면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수도권 정원규제를 폐지하면 지방대학에는 재앙이 된다.

대학의 수준을 정부가 책임질 것인가 아니면 대학 자체에 맡길 것인가는 국가의 운영 철학에 달려있다. 미국식 자율성은 좋은 면도 있지만 부작용도 있다. 정부가 관여하지 않기에 예산집행·학사관리·교수채용·전공조정에서 대학은 자율성을 갖는다는 점은 장점이다. 반면 미국에선 정부가 대학을 관리·감독하지 않으니 심심치 않게 학위 사기가 벌어진다.

대학경쟁력 제고야 말로 새 정부의 과제이다. 대학의 기술개발과 산학협력의 취약성이 규제 탓만은 아니다. 대학이라는 조직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태풍의 눈’같은 곳이라 혁신 의지가 결여된 경우가 많다.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필요 없는 규제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정체된 대학을 움직이게 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지난 10여 년간 대학혁신을 위해 교육부가 대학을 피곤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교육부의 대학개혁정책이 대학에 자극이 돼 성과를 낸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규제완화와 대학개혁정책을 균형 있게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수위에서 논의됐던 것으로 알려진 교육부와 과기부 통합도 과연 어떤 효과를 낼지 의문이다. 교육부는 교육개혁·산학협력 등을 주로 관할하고, 과기부는 과학 분야 연구개발을 주로 담당하는 부처다. 별도의 기능과 영역을 가진 조직을 합친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식당을 개혁한다고 중국집과 일식집을 합쳐봐야 손님이 모이지 않는다는 원리와 같다.

규제를 완화할 땐 숫자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마커스 피콕 조지워싱턴대 석좌연구교수는 “규제의 양보다 부정적 영향이 큰 규제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의 인재양성에 결정적 걸림돌은 등록금 동결이다. 급변하는 기술환경·경제환경에 따라 △토론교육 △실습교육 △창의교육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이는 곧 3차원(3D)프린터, 사물인터넷(IoT)실습실, 메타버스실습실, 자율주행실습실, 현장실습실, 해외파견, 온라인강의 등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14년간의 등록금 동결은 이러한 교육인프라 투자를 지지부진하게 만들었다.

대학의 자율성 측면에서 보면 등록금 동결을 풀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따라서 등록금 동결을 풀기보다는 과목당 수업료를 내도록 등록금 제도를 바꾸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학생들이 재정 여력에 따라 과목을 수강토록 하는 것이다. 과목당 수업료 산정에 어려움이 있기는 하겠지만 이런 제도는 다른 부수적 장점도 갖고 있다.

현재 대학 등록금 제도는 수업료를 한번 내면 수강 과목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음식점으로 치면 뷔페식인 셈이다. 뷔페는 과식을 부르게 된다. 고정적 수업료를 낸 학생들은 한 학기에 가능한 한 많은 학점을 따서 조기에 졸업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질적인 수강이 되지 않고 양적인 수강을 하게 된다. 과식해서 소화가 되지 않게 수강하는 것이다. 과목당 수업료 제도를 도입하면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

유럽에서 출발한 현대의 대학은 초기엔 신학과 철학만 가르쳤다. 고고한 상아탑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제 대학은 인문사회과학, 엔지니어링, 자연과학, 디자인, 건축, 예술, 음악, 의학, 약학을 융합한 창의적 디지털융합타워로 거듭나야 한다. 하지만 대학은 과도한 규제, 내부의 폐쇄성, 등록금 동결 탓에 사회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흔히 교육정책은 ‘백년대계’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년소계’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바뀌기 때문이다. 수년 만에 바뀌는 것도 문제이지만 개혁의 내용이 현장과 동떨어져 있고 효과도 없었다. 식당을 개혁한다고 식당 간판, 실내장식, 메뉴 만 바꾸는 개혁이 반복되었다. 식당을 개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손님이 원하는 가격에 맞춰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이번 정부는 착한 가격에 훌륭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대학개혁을 추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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