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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양호 “규제·상속세 확 풀고 오너 일가 특혜 없애야”

최훈길 기자I 2021.05.13 06:00:00

만났습니다②‘경제정책 어젠다 2022’ 저자 인터뷰
“차기정부 어젠다, 자유·공정·사회안전망”
“규제 풀어 기업에 경제적 자유 부여해야”
“오너 특혜 없애 책임있는 공정경쟁해야”
“개혁하려면 대통령 리더십, 대타협 필요”

[이데일리 최훈길 최정훈 기자] “자유롭고 공정한 경제 시스템을 만들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할지가 경제정책 어젠다의 핵심 목표입니다.”

변양호 VIG파트너스 고문은 지난 10일 서울시 중구 순화동 VIG파트너스 사무실에서 진행한 이데일리 인터뷰에서 최근 출간한 저서 ‘경제정책 어젠다 2022’를 이렇게 요약했다.

300페이지 넘는 책에는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재정개혁 △규제 개혁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이라는 3대 과제 아래 16개 세부 과제가 제시됐다. 과제 면면을 보면 퇴직 관료들이 쓴 내용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개혁적이다. 이념적으로는 좌우를 넘나드는 제언이다.

재정개혁은 나랏빚을 늘릴 게 아니라 증세 등을 통해 재원 170조원을 만들고 일자리를 잃은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자는 내용이다. 규제 개혁, 공정 경쟁은 한 세트다. 규제·상속세 등 기업 부담을 확 줄이되 오너 일가의 특혜를 없애 기업의 사회적 책임·공정경쟁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공정 경쟁에는 검찰개혁 과제도 포함됐다.

변 고문은 “사회안전망 강화는 돈 쓰는 문제, 규제 개혁과 공정 경쟁은 돈 버는 문제”라며 “지금 더 중요한 것은 규제를 풀고 공정한 경쟁이 되도록 해 기업이 돈을 벌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개혁이 성공하려면 대통령 리더십과 함께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변 고문과의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변양호 VIG파트너스 고문 모습. VIG파트너스는 2005년 설립된 보고펀드를 모태로 하는 사모펀드다. 보고펀드는 변 고문이 외국자본에 맞서는 토종 사모펀드를 만들겠다며 2005년에 창립한 회사다. △1954년 제주 출생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1977년) △미국 북일리노이대 경제학 박사 △행시 19회 수석 합격 △재무부 사무관 △국제통화기금(IMF) 근무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재정경제원 산업경제과장·정책조정과장·국제금융담당관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과장·국제금융심의관·정책조정심의관·금융정책국장 △금융정보분석원장 △보고펀드 공동대표 (사진=방인권 기자)
-문재인정부 4년을 평가하자면?

△문재인정부 경제정책의 큰 방향은 맞다. 혁신경제, 공정 경쟁을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자는 것이다. 기대가 많았다. 하지만 내로남불 정권이었다. 자기 편에만 유리했고, 각종 규제·부담금이 많아졌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돈을 많이 썼는데 체계적으로 쓰지 않아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했다. 실망스럽다.

-왜 이렇게 됐다고 보나?

△좋은 방향으로 간다고 했지만 결과는 거꾸로 갔다. 정책의 목표와 수단이 연계되지 않았다. 성찰의 부족, 이념의 과잉, 조급함 때문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어떤 경제정책 어젠다로 가야 하나?

△경제정책이 지향하는 바는 똑같다. 자유·공정·평등이다. 자유롭고 공정하고 어려운 사람을 잘 도와주는 것이 핵심이다. 경제적 자유는 미국이나 싱가포르, 공정 경제는 선진국, 사회복지는 유럽 북구 수준으로 올리자는 것이다. 규제개혁으로 기업에 경제적 자유를 주고, 기업도 그에 상응해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 정부는 경제 개입을 최대한 줄이고 사회복지에 더 신경을 더 써야 한다.

-경제적 자유 과제로 기준국가제 도입을 주장했다. 규제개혁과 뭐가 다른가?


△그동안 규제개혁하자는 목소리는 많았지만 진전이 없었다. 규제 완화를 하려면 기득권을 설득해야 한다. 공무원들은 얽히고 설킨 이런 상황에서 선뜻 규제 완화에 나서지를 않는다. 기준국가제는 ‘기준 국가’를 정해서 그 국가 수준만큼 규제를 풀어보자는 것이다. 부처들은 그 기준만큼 규제를 풀려고 해야 한다. 감사원은 적극행정을 하는 공무원들이 아니라 무사안일한 공무원들을 감사해야 한다.

-규제를 풀면 일자리가 늘어날까?


△일자리를 늘리려면 경제를 자유롭게 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지금처럼 규제가 많은데 일자리가 만들어지겠나. 지금은 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들면 노조 때문에 골치 아파한다. 정부가 인센티브를 줘도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 정부가 통제하는 경제는 희망 없는 경제다. 규제로 기업 손발을 묶으면 돈 벌 수가 없다. 기업이 일자리 만들 생각이 들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 그 과정은 사회적 대타협 없이는 못한다.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기업 책임이란?

△기업 개혁도 필요하다. 문제의 핵심은 대주주 가족의 특혜다. 특혜가 없도록 채용, 승진,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가 필요하다. 이렇게 개혁을 하면 기업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이 외국 기업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국제적인 수준으로 상속세를 확 낮춰야 한다. 지금 현실에 맞지 않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총수)’ 지정 제도도 바꿔야 한다.

변양호 VIG파트너스 고문은 후배 공무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질문 받자 “기재부의 나라는 아니지만 기재부가 필요한 나라”라며 “선출된 권력이 국민의 뜻에 반하는 결정을 하는 경우 할 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사진=방인권 기자)
-사회안전망 대안으로 제시한 ‘부의 소득세’는 170조원 재원 마련이 최대 난제다.

△부의 소득세는 일자리, 소득이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 최소 생계비(월 50만원)를 지원하는 것이다. 재원 마련 방식으로 제시한 부가세 인상 등은 사실 쉽지 않다. 모든 개혁에는 반발이 따른다. 그래서 정치권이 국민의 의견을 담아내는 공론화를 해야 한다. 안정적이고 의미 있는 사회안전망을 논의해야 한다. 정치권이 공론화를 싫다고 하면 결국 개혁을 못하게 된다.

-국채를 발행해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은?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속도가 빠르다. 이대로 계속 빠르게 늘어나면 국가신용등급이 내려갈 수 있다. 국가신용등급이 한 단계 더 낮아지면 큰 파장이 올 것이다. 만약 국가 지도자, 정책 입안자가 ‘국가채무가 많아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면, 신용평가에 악영향을 줄 것이다.

-‘부의 소득세’가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과 다른 점은?

△부의 소득세는 어려운 사람 모두에게 지원하는 측면에서 기본소득의 일종으로 분류하는 학자들도 많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부의 소득세보다 재원이 많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은 부자한테도 돈을 주는 것이어서 (소득격차 해소에) 역진적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2~3배 재정 지원을 하는 게 낫다. 왜 부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재정 지원을 하나.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준 다음에 소득 차이에 따라 다시 환수를 하나. 줬다 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무조건 현금을 주면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 근로장려금(EITC)을 강화하는 방식은 어떤가?


△EITC는 일하는 취약계층에 지원하는 것이다. 이 제도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고속성장을 하던 때로 원하면 일할 수 있었던 시기다. 하지만 앞으로는 4차 산업혁명에 따라 일자리를 찾기 힘든 시기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이들도 기본 생계를 꾸릴 수 있어야 한다. 과도한 복지가 근로의욕을 낮춘다는 것은 20세기 생각이다. 정부가 근로자만 지원하고 일자리를 못 찾는 사람들을 나몰라라 하는 건 맞지 않다.

-문재인정부는 전국민 고용보험을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자는 입장인데.

△전국민 고용보험 혜택을 받으려면 보험료 납부 등 여러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구조다. 결국 전국민 고용보험을 도입한다고 하지만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경제정책 어젠다를 이끌어 가려면 대통령 리더십이 중요하다.

△개혁을 하려면 유능한 정치 세력, 유능한 정치 지도자가 필요하다. 대권만 잡으려고 할 게 아니라 비전이 있어야 한다. 국민을 편하게 하고 미래 희망을 만들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내가 대선 캠프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 다만 좌파든 우파든 기존 생각을 완화해 경제정책 어젠다를 내면 국민에게 환영받을 것이다.

-후배 공무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기재부의 나라냐는 논란이 있었다. 기재부의 나라는 아니지만 기재부가 필요한 나라다. 선출된 권력이 국민의 뜻에 반하는 결정을 하는 경우 할 말을 해야 한다. 90년대 초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일할 때 만난 싱가포르 예산실 공무원은 ‘국민 돈 1원도 허투루 쓰지 않게 해야 한다’고 했다. 필요한 돈은 쓰는 게 맞다. 하지만 그게 아니면 결단코 막는 게 예산실 공무원이 할 일이다.

‘경제정책 어젠다 2022’ 저자들이 제시한 경제정책 방향이다.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출신인 변양호 고문은 김낙회 전 관세청장,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최상목 현 농협대 총장(전 기획재정부 1차관)과 함께 ‘경제정책 어젠다 2022’를 최근 출간했다. 자유롭고 공정한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대안을 정리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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