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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갈 곳 잃은 거리의 아이들 “폭력 가해자이자 피해자”

이지현 기자I 2017.09.11 05:00:00

여가부, 지자체와 거리청소년 대상 아웃리치 사업 진행
거리 청소년 보듬는 찾아가는 상담버스 전국 10대뿐
주민 민원에 쫓겨나고 자원봉사 없으면 운영 어려워
"아이들은 변화 가능..사회안전망 좀더 촘촘히 갖춰야"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이른 가을비가 내리던 지난 6일 저녁 서울 양천구 신월로 신정네거리로 출장나간 ‘작은별’ 청소년 거리상담버스를 찾았다. 비가 내리는 밤이지만 버스에는 거리를 배회하던 7~8명의 아이들이 머물고 있었다. 평소에는 30~40명이 이 버스를 찾는다.

한쪽에서는 자원봉사를 나온 로스쿨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비를 제대로 받지 못한 청소년과 상담 중이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유해환경 감시 활동 설문을 위한 패널 꾸밈 작업을 하고 있었다.

청소년 거리상담버스 ‘작은별’에서 청소년들이 유해환경 감시 활동 설문을 위해 패널 꾸밈을 하고 있다.(사진=이지현 기자)
◇갈 곳 잃은 거리의 아이들 “폭력 가해자이자 피해자”

매주 수요일 저녁이면 이곳을 찾는다는 이유정(18·가명)양은 자신이 폭력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고 털어놨다. 중학교 때만 해도 운동선수였던 이양은 다부진 체격이었지만 당시 여럿에 둘러싸이자 겁부터 났다고 했다.

이양은 “부산 여중생 폭행 동영상을 본 사람들이 ‘왜 피해자가 맞고만 있을까’ 의아해 하지만 한번 호되게 당하고 나면 그 사람이 폭력을 휘둘러도 강제적으로 뭔가를 시켜도 반항하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가해자가 자신이 다니는 학교와 집을 알고 있어 자칫 2·3차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에 도움을 구할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거리 청소년들이 자주 모이는 뒷골목을 찾아가는 ‘더작은별’ 버스 안에서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고 있다.(사진=이지현 기자)
피해자였던 이양은 고등학교 때 가해자가 됐다. 친구 욕을 하던 동급생을 때렸다고 했다. “때린 건 저 혼자였지만 친구 여럿이 같이 있던 탓에 제가 맞았을 때랑 정반대 상황이 됐어요.”

이양은 피해자가 학교폭력으로 신고한 탓에 학교로부터 서면사과와 접촉금지 명령을 받았다. 정학도 당했다.

이양은 “신고한 동급생이 원망스러워 다시 불러다 혼을 내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학교에서 마주치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고 했다.

이양의 변화에는 주변 어른들의 도움이 컸다. 이양은 언제나 따뜻한 목소리로 “밥은 먹었니”라고 챙겨주는 학교선생님과 집에 가기 싫어 거리를 배회할 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준 ‘작은별’ 상담교사들 덕분이라고 했다.

이 양은 “아무리 사고치고 다녀도 ‘항상 네 편이야’라며 날 믿어주는 사람이 한사람만 있어도 다 해결이 되는 것 같다. 내가 그랬다”며 웃었다.

저녁 10시 30분. 서울 강서구 까치산로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 ‘더작은별’ 버스를 찾았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교복차림으로 게임에 열중 하고 있는 남학생이 눈에 띄었다. 김장우(15·가명)군은 친구들은 학원에 가고 집에는 가고 싶지 않아 이 시간대면 ‘더작은별’ 버스를 찾는다고 했다. 한부모가정인 김 군은 아버지와 어린 동생만 있는 집이 답답해 저녁이면 집 주변을 배회한다.

김군에게 ‘부산 여중생 사건’에 대해 묻자 김군을 게임기에서 눈을 떼 처음으로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면서 “가해자들을 찾아가서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김군은 중학교 1학년 때 몸집 큰 형들 여럿에게 둘러싸여 폭행을 당한 기억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김 군은 “이제는 나도 힘이 세졌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며 주먹을 들어 보였다.

◇거리 청소년 보듬는 찾아가는 상담버스 전국 10대뿐

거리청소년들을 보듬기 위해 ‘더작은별’ 버스가 밤늦도록 환하게 붉을 밝히고 있다.(사진=이지현 기자)
여성가족부는 지방자치단체와 손잡고 거리 청소년을 보듬는 찾아가는 거리상담(아웃리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5년 서울에서 처음 시작한 이 사업은 전국 10대 버스로 확대됐다. 서울에는 대형버스(작은별) 2대, 25인승(마을버스형)버스(더작은별) 2대 총 4대가 운영 중이다. 요일별로 청소년들이 자주 모이는 신림, 금천, 천호, 고덕동 등으로 찾아가 상담 뿐 아니라 놀이공간도 제공한다.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보드게임과 닌텐도, 만화책이 비치돼 있고 간식도 준다. 자원봉사자와 전문가들이 고민을 들어주고 귀가도 돕는다. 지난해 상담버스를 찾은 청소년은 연인원 10만 4442명(전국기준)에 달한다.

김기남 서울시립청소년이동쉼터 소장은 “거리청소년들 대부분이 처음부터 비행청소년, 문제아가 아니다”며 “가출을 경험하며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변하게 된다. 아이들이 거리에 나온 후에도 위기들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주 수요일 지하철 2호선 신정네거리역을 찾는 ‘작은별’버스는 청소년 알바 관련 상담을, 지하철 5호선 화곡역 인근 공원을 찾는 ‘더 작은별’ 버스는 스마트폰 게임도박 등 청소년 도박중독 상담을 주로 한다.

김 소장은 “처음에는 대부분 아이들이 버스에 오르기를 주저하지만, 한번 오면 계속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아이들도 변하고 싶어한다. 다른 친구를 돕고 싶다며 데려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어려움도 많다. 늦은 시간에 운영하다보니 주민들 민원으로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지역별 상담시간은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다. 또 과거에는 거리청소년들이 자주 모이는 지역이 정해져 있어 그곳을 거점으로 활동해왔지만 요즘은 스마트폰이 대중화하면서 거리청소년이 모이는 곳이 다양화한 탓에 어려움이 커졌다.

예산도 제한적이어서 무급 자원봉사자가 없으면 운영이 불가능할 정도다.

김 소장은 “어른들을 변화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건 가능하다”며 “우리의 아이들에 사각지대에 노출되지 않고 제대로 클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이 좀 더 촘촘하게 갖춰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 은퇴 후 1년여 동안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김옥란(67·여)씨는 “처음에 중·고생에게 다가가는 게 낯설었는데 지금은 아이들이 먼저 자기 얘기를 들어달라며 찾아온다. 생각지도 못한 사연들을 들다보면 가슴이 아프지만 아이들과 뭔가 통하게 될 때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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