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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로 부활한 귀신, 간첩, 할머니…

김용운 기자I 2014.09.12 06:42:00

'미디어시티서울 2014'
아시아문화 아우른 주제로 풀어
17개국 42개팀 230개작 선보여
11월2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한국영상자료원서

미카일 카리키스 ‘해녀’(사진=서울시립미술관)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1980년대 중반 38선 인근 군사도시에 살던 아이들 사이에서는 홍콩할매귀신 이야기가 유행했다. 홍콩의 할머니귀신이 한국에 나타나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얘기였다. 어느 날 홍콩할매귀신이 간첩으로 둔갑했는데 홍콩으로 돌아간 진짜 홍콩할매귀신 대신 간첩이 내려와 아이들을 납치해 북으로 끌고 간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들은 겁에 질렸다. 이런 풍문을 들은 어른들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수상한 사람을 보면 바로 ‘113’으로 신고하라고 했다. 기자가 겪은 실화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오는 11월23일까지 미술관 서울 서소문 본관과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미디어아트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2014’를 개최한다. 17개국 42명(팀)의 작품 230여점을 선보이는 올해 비엔날레의 주제는 ‘귀신 간첩 할머니’다. 주제는 지나간 시절 풍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도대체 귀신과 간첩, 할머니는 미디어아트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2000년 처음 시작한 ‘미디어시티 서울’은 여타 국내 비엔날레와 달리 동시대 예술을 중심으로 특히 과학과 테크놀로지 및 인문학의 교류와 통섭에 기반한 미디어 작품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뒀다. 올해로 8회째다. 그간 민간위탁사업으로 2년마다 개최하다 지난해 미술관 직영사업으로 전환했다.

박찬경 예술감독은 “귀신은 아시아의 잊힌 역사와 전통을, 간첩은 냉전의 기억을, 할머니는 여성과 시간을 비유한다”며 이번 ‘미디어시티 서울’의 주제를 설명했다. 그러나 출품작은 꼭 주제와 연관이 없다는 설명이다. 박 감독은 “출품작은 이러한 주제를 훌쩍 넘어서기도 하고 비켜가기도 하는 풍부한 가능성의 상태로 관객 앞에 놓여 있다”며 “‘귀신 간첩 할머니’는 전시로 진입하는 세 개의 통로로서 아시아를 아우르는 주제이기도 하다”고 부연했다.

박 감독의 말처럼 전시에는 간첩과 귀신, 할머니에 한정된 작품보다는 ‘아시아’라는 지역의 전통과 역사, 현재의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대만의 자오싱 아서 리우의 14분짜리 비디오작품인 ‘코라’는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서 출발해 티베트고원을 지나 카일라스산까지 순례하는 과정을 담았다. 한국의 배영환은 무당과 군부대가 공존하는 인왕산을 기존의 작품 ‘오토누미나’와 혼합한 ‘만년 동안의 잠, 인왕산 선바위’를 선보인다. 민정기는 기존의 진경산수로 그려진 겸재 정선의 ‘금강산 만물상’을 원형구도로 해체한 후 재구성한 작품을 선보인다.

자오싱 아서 리우의 14분짜리 비디오 작품인 ‘코라’의 한 장면(사진=서울시립미술관)


일본의 요네타 토모코는 ‘적운’ 연작 중 ‘히로시마 평화의 날’이란 사진작품을 통해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 지진과 원전사고에 대처하는 일본인들의 무기력함을 표현한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미카일 카리키스는 제주도의 해녀마을에서 3개월간 머문 뒤 ‘바다 노동자’ ‘노년 여성의 일’ 및 독특한 ‘소리문화’에 초점을 맞춘 작업 ‘해녀’를 설치했다. 작품의 소리와 이미지를 통해 바닷일을 하는 노년 여성의 집단 노동과 일상, 공동 공간에서 어우러지는 해녀들의 움직임을 표현한다. 아울러 해녀의 숙소에서 녹음한 전통노동요도 감상할 수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서울시립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 외에도 출품된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아시아 고딕(11~17일), 냉전극장(10월 14~19일), 그녀의 시간(11월 4~9일), 다큐멘터리 실험실(11월 18~23일) 등 다양한 주제로 묶인 영화들이 상영된다. 이 가운데 ‘엉클 분미’로 2010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태국의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초기작인 ‘유령의 집’과 ‘뱀파이어’는 ‘아시아 고딕’ 기간 중 상영된다. 이밖에 ‘냉전극장’ 기간 중에 상영되는 장 클로드 보나르도 감독의 프랑스영화 ‘모란봉’은 1958년 북한이 전폭적으로 지원해 만들어진 작품으로 프랑스에서도 상영금지가 됐던 작품으로 눈길을 끈다.

‘미디어시티 서울’ 홈페이지(www.mediacityseoul.kr)에 접속하면 기본 정보를 비롯해 오디오가이드, 교육자료, 포럼자료 등을 다운받을 수 있다. 배우 박해일과 최희서가 각각 국문과 영문 오디오가이드 녹음을 맡았다. 관람은 무료다. 02-2124-8800.

다무라 유이치로 ‘세와료리스즈키보초’(사진=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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