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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1200만원 공연계 최저임금 인상은 '남 얘기'

장병호 기자I 2018.02.08 05:25:00

11년 만에 두 자릿수 인상률에도 '울상'
불분명한 고용관계로 최저임금 적용 어려워
예술인복지법·예술인 고용보험제도 등 마련
"예술가 스스로 노동자라는 인식 가져야"

지난해 7월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문체부, 현장과 함께하는 예술정책 연속토론회’ 첫 번째 토론 현장(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 대학로의 한 극단 대표인 A씨는 최근 최저임금 관련 뉴스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 단원들에게 먹고 살 수 있는 만큼의 수익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최저임금 수준에는 못 미치기 때문이다. A씨는 “단원들에게 약속한 출연료만큼은 꼭 챙겨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를 최저임금 수준으로 맞추는 데는 힘든 점이 많다”며 “최저임금 인상 소식에 마음이 더욱 무겁다”고 말했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이 16.4%로 11년 만에 두 자릿수를 기록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의가 사회 전반에서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공연계는 최저임금 인상 소식에도 좀처럼 웃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 적용 자체가 힘든데다 최저임금 만큼의 수익을 보장하는 환경 조성이 안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예술인복지법 개정과 예술인 고용보험제도 도입 등을 통해 예술인도 최저임금만큼의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공연계에서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고용관계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최저임금은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와 고용계약을 맺은 근로자에 한해서만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문체부가 가장 최근에 발표한 ‘2015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활동 직업 종사자 중 전업 예술인은 70%, 겸업 예술인은 87.5%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년간 예술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입도 평균 1255만원에 불과했으며 수입이 없다는 응답도 36.1%나 됐다. 현재로서는 국공립단체나 대형 공연기획사를 제외하면 최저임금법을 적용 받을 수 없는 현실이다.

정부도 공연계에 대해서는 최저임금 현안 해결에 앞서 안정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생태계 조성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김영산 문체부 기획조정실장은 “공연계의 경우 최저임금 적용 이전에 제대로 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현장 의견을 듣고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지난 2011년 최고은 작가의 죽음을 계기로 예술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예술인복지법을 제정해 2012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불공정계약을 막기 위한 표준계약서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기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5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30.7%가 예술활동과 관련한 계약을 체결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 중 서면계약은 25.5%에 불과했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문체부는 올해 예술인복지법 개정과 예술인 고용보험 도입에 나선다. 예술인복지법 개정에는 불공정행위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재정적 지원에서 배제하는 것과 서면계약 현황파악을 위한 조사권을 신설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표준계약서도 강제 과태료 부과 조항을 신설해 사용률을 6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예술인 고용보험제도는 새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현재 문체부는 내년 시행을 목표로 올해 안에 법률 개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 중에 있다. 고용보험 가입 방법에 대해서는 프리랜서가 대부분인 예술인의 특성을 반영해 임의가임과 강제가입 모두 가능한 방향으로 추진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의 노력과는 별개로 예술가 스스로 노동자라는 인식 아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린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대학로에서 열린 ‘2018 문화예술 혁신 대토론회’에서 “예술인 고용보험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예술인 스스로 자신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예술인의 생존권도 보장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출범 1년째를 맞는 공연예술인노동조합도 출범 당시 3대 권리 운동 중 하나로 내세운 예술인 최저임금제 도입을 위한 현장 의견 수렴에 나선다. 이종승 공연예술인노동조합 위원장은 “현재는 최저임금보다 지원제도 개선이 보다 시급한 문제라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예술인 최저임금제에 대한 방안은 내년 발표를 목표로 올해 공청회와 토론회로 현장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예술가의 창작활동은 노동강도를 일률적으로 정량화할 수 없기에 최저임금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어렵다”면서 “예술인복지법과 예술인 고용보험은 물론 파견지원과 창작준비금 등 예술인을 위한 다양한 제도를 통해 예술인도 최저임금인 월급 157만원 만큼을 보장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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