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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 새내기 납시오!"…영조 오순잔치 간 MZ세대

이윤정 기자I 2023.05.04 05:30:00

'시간여행-영조, 홍화문을 열다'
'2023 봄 궁중문화축전' 메인 프로그램
궁중회화·무용·음악 등 영조 '어연례' 체험
곳곳에 배치된 배우 100명 색다른 재미 선사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궁중 새내기 통명전 출발이오!”

3일 서울 종로구 창경궁. 기수의 힘찬 외침과 함께 수백년 전으로 시간여행이 시작됐다. 이윽고 새하얀 도화서 복장을 한 새내기들이 도착한 곳은 조선 영조 임금의 오순 잔치인 ‘어연례’(御宴禮)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무대였다. 무용단원 중 한명이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정재(고려·조선 궁중무용)를 익히게 될 것”이라며 시범을 보이자 새내기들은 흥겹게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자연스레 임금의 잔치에 참여했다.

6일까지 창경궁에서 열리는 ‘시간여행-영조, 홍화문을 열다’의 체험 모습이다. ‘2023년 봄 궁중문화축전’(4월 28~5월 7일)의 메인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다. ‘궁중문화축전’은 아름다운 고궁을 배경으로 다채로운 전통문화 활용 콘텐츠를 선보여 온 국내 최대 문화유산 축제다. 지난해 봄·가을을 합쳐 총 89만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올해는 ‘오늘, 궁을 만나다’를 주제로 다채로운 문화 체험과 전시, 공연을 선보인다.

조진영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활용실장은 “창경궁 명칭 환원 40주년을 기념해 궁에서만 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며 “그동안의 행사에서는 의례를 재현하기만 했었는데 처음으로 참여자들이 의례 전체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을 선보인다”고 말했다.

‘시간여행-영조, 홍화문을 열다’ 행사에서 시민들이 궁중문화를 체험하고 있다(사진=한국문화재재단).
고임상 차리기…궁중연향도 직접 그려

‘시간여행-영조, 홍화문을 열다’는 1743년 ‘영조 오순 어연례’를 주제로 연향을 준비하는 과정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프로그램이다. ‘어연례’에 참여하게 되는 일명 ‘궁중 새내기’들은 총 180명이다. 사전 신청을 받아 선발된 새내기들은 6개 조로 나눠 약 3시간 동안 △궁중회화 또는 궁중음식 △궁중무용 △궁중음악 등 3개의 체험을 하게 된다. 각 프로그램은 경춘전, 명정전 옆 숙설소, 통명전, 함인정 등 창경궁 곳곳에서 이뤄진다. 궁중문화축전을 기획한 장보영 활용사업팀장은 “신청자들 대부분은 20~30대의 MZ세대”라며 “그중 20대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고 귀띔했다.

‘궁중회화’ 체험으로는 창경궁 경춘전에서 전통의궤 전문가가 선보이는 궁중의궤 기록과정(궁중연향도) 재현과 궁궐 그림 그리기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이날 밑그림이 그려진 ‘궁중연향도’ 앞에 앉은 새내기들은 붓에 물감을 묻혀가며 진지하게 그림을 완성했다. 조교들이 중간중간 돌아다니며 그림의 완성을 돕는다. 조진영 실장은 “의궤를 그리는 장소인 ‘경춘전’은 평소에는 개방되지 않는 곳”이라며 “전통 안료로 채색하기 때문에 하얀 복장에 물감이 묻더라도 금세 닦인다”고 설명했다.

명정전 옆에서는 고임상 준비가 한창이다. 고임상이란 의식이나 잔치에 사용하는 떡, 과자, 강정, 과일 등의 음식을 높이 쌓아 올린 상을 말한다. 궁중무용과 그리기 체험을 끝낸 새내기들은 이곳으로 이동해 직접 고임상 차림에 참여하게 된다. 궁중음식 보유자인 정길자씨가 상차림에 자문으로 참여했다.

‘시간여행-영조, 홍화문을 열다’ 행사에서 시민들이 궁중문화를 체험하고 있다(사진=한국문화재재단).
왕·궁녀 등 배우 100명 현실감 더해

왕과 왕비, 궁녀 등의 복장을 한 배우 100명을 곳곳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것도 행사의 색다른 재미다. 이들은 도화서 복장을 한 새내기들에게만 말을 건다. “어서 왕에게 예를 올려라”라고 명하면 새내기들이 왕에게 90도로 인사를 하는 식이다. 실제 궁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한 이벤트다.

함인정 인근에서는 ‘장악원, 가객을 초빙하다’를 주제로 민간 가객의 판소리, 탈춤 등의 버스킹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영춘헌에서는 현장 관람객을 대상으로 문관과 나인 등 궁궐 내 증강현실(AR) 인물들의 복식을 입어보는 궁중복식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날인 6일에는 모든 준비과정을 마친 영조의 어연례 공연이 펼쳐진다. 1743년에 거행된 어연례는 문무백관과 왕세자를 비롯한 종친, 정예 군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진 조선 궁중연회의 백미로 손꼽힌다. 재현 공연 이후에는 춘당지로 이동해 전통다과를 시식한다. 전통예술공연단체 ‘아울’의 가악과 창작판굿 공연을 관람하는 식후 행사를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이 모두 마무리된다.

‘시간여행-영조, 홍화문을 열다’ 행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고임상 차림(사진=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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