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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세계시민] 언어 달라도 '이모지'로 통하는 세상

송길호 기자I 2023.07.17 06:20:00
[이희용 언론인·본사 다문화동포팀 자문위원]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명으로 전 세계 인류는 말 그대로 지구촌의 한 가족이 됐다. 만나본 적도 없는 외국 셀럽이나 인플루언서들에게 응원 댓글을 보내는 이도 많다. 그러나 언어 장벽이 존재한다. 오늘날 아무리 영어가 대세라 하지만 지구상에는 영어를 모르는 인구가 80%를 넘고, AI(인공지능)에 의한 번역 기술이 놀랍도록 발전했다 해도 아직은 소통에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는 것이 그림글(그림문자)이다. 출발은 컴퓨터 자판을 이용한 이모티콘이었다. 감정이란 뜻의 영어 이모션(emotion)과 기독교에서 유래한 컴퓨터 아이콘(icon)을 합친 말이다. ‘-_-’, ‘ㅠ_ㅠ’. ‘:-)’처럼 문자나 기호를 활용해 얼굴 표정을 묘사함으로써 감정을 표현했다. 온라인상에서는 미국 카네기멜런대의 스콧 팔먼 교수가 1982년 9월 19일 오전 11시 44분에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그림을 글자처럼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을 이모지라고 한다. 그림문자를 뜻하는 일본어 에모지(繪文子·emoji)가 어원인데, 영어식 발음에 따라 이모지로 굳어졌다. 다른 나라에서는 문자나 기호를 그림처럼 활용하는 이모티콘과 그 반대 개념인 이모지를 구분해 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모티콘으로 통칭한다.

애플이 2008년 6월 일본에서 아이폰 3G를 출시하며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권유에 따라 이모지 입출력 기능을 탑재한 데 이어 구글도 2008년 10월 지메일(gmail)에 이를 도입했다. 2010년에는 국제 문자코드 규약인 유니코드에도 이모지가 수록되며 당당한 컴퓨터 문자로 공인받았다.

유니코드가 이모지 표준화 작업에 나서면서 플랫폼 간, 운영체계 간, 단말기 간의 장벽이 차례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에 이어 2011년에는 PC 자판에도 이모지를 입력하는 단축키가 등장했다.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얼굴’ 이모지를 ‘2015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7월17일은 제10회 ‘세계 이모지의 날’(World Emoji Day)이다. 이모지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국제기구 이모지피디아는 출범 10주년과 10회 이모지의 날을 맞아 지난 10년간 이모지 사용 통계를 11일 발표했다. 10년 전 유니코드가 키보드에 포함하도록 권장하는 이모지는 700개가 조금 넘었으나 지금은 3,664개에 이른다. 이모지피디아가 출범한 2013년 4월에는 트위터에서 이모지를 사용하는 비율이 4%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26%에 이른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장 인기 있는 이모지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얼굴’이다. 2013년에는 ‘OK를 뜻하는 손 모양’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표정의 얼굴 이모지가 인기 10위까지 휩쓸었으나 올 상반기에는 ‘빨강 하트’(3위), ‘기도하는 두 손’(4위), ‘반짝이는 표시’(7위), ‘불꽃’(8위) 등으로 다변화됐다.

이모지도 언어인 만큼 시대에 따라 생성, 발전, 쇠퇴, 소멸의 길을 걷는다. 디지털 기술의 속성과 주이용자층 세대의 특징 때문에 그 주기는 훨씬 짧고 변화도 극적이다. 2020년 ‘턱시도를 입은 여성’이나 ‘베일 쓴 남성’처럼 성(性) 고정관념을 깨는 이모지들이 등장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피부색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했고, 성소수자나 장애인을 위한 이모지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함에 따라 ‘마스크를 쓴 얼굴’은 슬픈 표정에서 환하게 바뀌었다. 마스크는 환자들이 쓰는 것이라는 인식을 깨려는 시도였다.

새로운 이모지 등장 추세를 보면 이용자 간의 소통은 물론 문화 다양성과 소수자 배려에도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인류가 새롭게 만들어낸 만국 공용문자를 소중하게 키우고 요긴하게 활용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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