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치한약수, 사교육 말기 현상…곧 절벽 온다”[ESF 2023]

전선형 기자I 2023.05.23 05:30:00

①손주은 메가스터디그룹 회장 인터뷰
2017년부터 출생자수 40만명 하회
10년 후 대입 경쟁률 1대 1 전망도
AI 등장 교육시스템 대변화 고려해야

[이데일리 전선형 이다원 기자] “지금 대치동에서는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를 목표로 하는 초등학생 학원이 등장하고 있다. 학생 수가 줄면서 한국식 사교육이 말기적 현상을 보이고 있다.”

손주은 메가스터디그룹 회장이 22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교육 현실에 대해 이같이 말하며 “사교육 시장의 절벽이 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로 대표되는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했던 사교육계는 이젠 ‘의대 올인’이라는 왜곡된 상황을 만들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사교육이 종말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 인터뷰


◇“ 초등생도 ‘의대’ 목표? 사교육 절벽 온다”


손 회장은 한국식 사교육이 1970~1990년대 고도 압축 성장 시기를 거친 한국 사회의 부산물이라고 봤다. 그는 “한국식 사교육은 이 시대 성과를 낸 명문대 출신 중산층이 이 경험을 자기 자녀들에게 이식하는 아주 특수한 구조”라고 짚었다. 높은 입시 성적을 거둔 이들이 사회에서도 우위를 차지하면서 자녀에게 이 성공 경험을 그대로 물려주기 위해 학원을 보낸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경제 성장 그래프와 사교육 시장의 성장 그래프가 10년 격차를 두고 따라가고 있다. 손 회장은 2000년대 수도권 집중 현상에 따라 ‘인서울’ 대학 진학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점을 예시로 들었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지금은 어떨까? 지금 사교육 시장의 새로운 대세는 ‘의치한약수’다. 평생 면허가 발급되는 데다 미래에도 수요가 꾸준할 메디컬 업종에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손 회장은 “지금 대치동에는 초등학생 의대 반이 생길 정도로 메디컬 열풍이 불고 있다”며 “학부모들 역시 대학이 아닌 ‘의대’에 간다는 생각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국 의과대학 정원은 3000명대 초반(2023학년도 기준)이다. 의치한약수 전체로 늘려도 6500명대다. 언뜻 보면 경쟁이 치열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진단은 달랐다.

손 회장은 “사교육이 말기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봤다. 사교육 수요가 점차 학생 전체에서 성적 상위 학생만을 중심으로 줄어들고 있다. 그는 “서울 내 명문대에 가도 의대를 가기 위해 반수를 결심하고 3수, 5수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며 지난해 총 정원 3000명인 서울대 자퇴생이 400명 이상이라고 언급했다.

의치한약수 열풍마저 꺼지면 사교육 시장에는 절벽이 올 수밖에 없다. 한 해에 태어나는 출생아 수가 전국 대학 정원보다 적으니 굳이 학원에 다닐 이유가 없는 셈이다.

당장 2036년 대학에 입학할 2017년생들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손 회장은 “2017년부터 출생아 수가 40만명 밑(35만7771명)으로 내려앉았다”라며 “현재 수도권 주요 30개 대학 정원이 9만4000명이고 이 숫자가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오는 2036년 수도권 대학 경쟁률은 3대 1이 된다”고 설명했다. 복수 지원까지 고려했을 때 실제 경쟁률은 일대일에 가까워진다.

교육부가 집계한 ‘2023~2029년 초·중·고 학생 수 추계’에 따르면 올해 고3 학생은 39만8271명으로 지난해(43만1118명)보다 3만2847명(7.6%) 감소했다. 1994년 대학수학능력시험 도입 이후 역대 최저 수준이다. 손 회장은 “지금도 대학은 쓰면 다 붙는 상황”이라며 “이미 지방 주요 사립대가 정원 70%를 못 채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들 역시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손 회장은 “2035~2036년께 전국 대학에서 신입생 미달이 나타날 것”이라며 “현재의 대학 정원이나 체제를 유지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고 내다봤다.

“AI, 교육 싹 바꾼다…사교육에 휘말리지 마라”

사교육 절벽의 또 다른 원인은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경제·사회 구조 변화다. 특히 손 회장은 고도화한 AI 도입을 통한 교육 혁신이 멀지 않았다고 예상했다.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선생님이 21세기 학생을 가르친다’라고 교육 현실을 꼬집었던 그는 “앞으로 5년 안에 챗GPT를 비롯한 AI 혁명이 교육의 본질을 다 바꿔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 회장은 “현재 공교육 시스템의 경우 교사가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고 암기시키는 ‘언더스탠드-리멤버’의 구조였다면 AI가 교육에 도입되면서 학생 수준에 맞도록 최적화한 일대일 교육을 진행하며 ‘하이테크’ 교육을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교사의 역할도 AI의 1대 1 교육 현황을 토대로 아이들을 파악하고, 특히 학생의 창의성을 끌어내는 코칭 기능으로 바뀌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 인터뷰


학령인구 급감과 AI 혁명으로 한국 교육이 대변혁의 시기를 맞는 셈이다. 손 회장은 “대학을 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국 교육에 엄청난 지각 변동이 생겨야 하고 그 수요를 충족하는 사교육의 존재 이유는 어느 순간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적어도 명문대, 또는 의치한약수 등 왜곡됐던 사교육 시장의 열풍은 사그라질 전망이다.

다가올 미래에 사교육 산업과 대학은 어디로 눈을 돌려야 할까? 손 회장은 미래 기술과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미 일부 학원가는 성인, 노인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초등교육은 돌봄교육에 집중하며 정부 정책과 연결할 수 있다. 대학은 기업과 연계해 일정 분야에 특화한 인재를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손 회장은 오는 6월 21~22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제14회 이데일리 전략포럼’에 김누리 중앙대 교수와 함께 사교육을 넘어 한국 교육의 미래와 개혁 방향에 대해 논할 예정이다. 그는 젊은 학부모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사교육 열풍에 휘말리지 마라!” 사교육 대부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이다. 손 회장은 “부모가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신의 인생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교육적인 기반”이라며 “사교육 시스템에 아이를 맡기지 말고 아이의 든든한 뒷배가 돼라”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1961년 경남 창원 출생 △서울대 서양사학과 학사 △2000년 메가스터디교육 창업 △現 메가스터디 회장 △現 윤민창의투자재단 이사

제14회 이데일리 전략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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