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오얏나무 밑에서 갓끈 고쳐매는 산업부

김형욱 기자I 2023.03.29 05:30:00

공기업 외유성 출장 이례적 전수조사
KT CEO 인선 파행 속 정치외풍 의심
“공직기강 확립” 꼭 필요한 일이지만,
원 취지 벗어난 낙하산 인사 경계해야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윤경림 KT 대표이사 후보자가 정부와 정치권의 압력 속에 사퇴를 결정한 지난 27일, 산업통상자원부는 41개 산하 공공기관 외유성 출장에 대한 전수조사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달 한국전력공사와 한전KDN 등 2곳의 임원 2명에 대한 외유성 출장 제보가 있었고, 조사 결과 비위 사실이 확인돼 이참에 부적절한 관행을 뿌리 뽑기로 했다는 것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정부부처가 공직 기강을 확립하려는 노력은 반길 일이다. 문제는 조사 시점이다. 가뜩이나 민영화한 지 21년이 된 KT 최고경영자(CEO) 선임이 벌써 세 번째 원점으로 돌아갔을 정도로, 정부와 정치권이 노골적으로 인사에 개입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슷한 처지의 KT&T, 포스코도 떨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치적 압력과는 전혀 상관 없다”고 했지만, 의심쩍은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선임된 기관장과 임원들을 쫓아내고, 현 정부 인사로 채우는 발판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해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해외 출장을 점검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이다. 과거 국민권익위원회, 감사원 등이 공직사회 전반의 기강 확립 차원에서 외유성 출장 여부를 감찰한 적 있지만, 개별 부처가 산하 공공기관을 전수조사에 나서는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산업부가 핵심 비위 행위로 꼽은 ‘코로나19 대유행 출장 자제 지침 위반’의 경우 이미 현 시점에서 ‘뒷북’이기에 의구심이 더 증폭된다.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약속은 무색해진 지 오래다. 한국가스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도로공사 등 주요 공기업 사장은 하나 같이 해당 분야 경력이 전무한 대통령선거 캠프 출신의 전직 국회의원들로 채워졌다. 더욱이 산업부는 전직 관료 다수가 문재인 정부 시절 공공기관장에게 사퇴를 종용한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재판을 앞두고 있다. 오얏나무 밑에선 갓끈도 고쳐매지 말라고 했다. 의심받을 짓 만들지 말고, 항상 조심하라는 뜻이다. 이번 조사가 공직기강 확립이란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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