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돌아온 '둘리 아빠'가 던진 말, "너 죽으면 어디로 갈거나"

장병호 기자I 2021.09.09 05:40:00

만화가 김수정, 20년 만에 신작
사후세계 다룬 '사망유희' 발표
다음은 '아기공룡 둘리 후속편'
남은시간 더 많은 만화 그릴 것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제 삶을 돌이켜보니 이제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본업인 만화로 돌아와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둘리 아빠’로 유명한 만화가 김수정(71) 작가가 20년 만에 신작 만화를 발표했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주제로 한 4편의 에피소드를 엮은 ‘사망유희’(둘리나라)다. ‘삐끕(B급) 만화’라는 문구를 표지에 내건, 오랜만에 만나는 김 작가표 블랙코미디다.

최근 서울 도봉구 둘리뮤지엄에서 만난 만화가 김수정 작가가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태형 기자)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 새 만화에 담아”

오랜만에 새 만화를 발표한 이유를 듣고자 김 작가를 최근 최근 서울 도봉구 둘리뮤지엄에서 만났다. 그는 “‘아기공룡 둘리’의 TV·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에 매진하면서 본의 아니게 만화를 손에서 놓고 있었다”며 “오랜만에 다시 펜을 잡아 걱정도 됐지만, 옛날만큼은 아니어도 매끄럽게 그림이 그려져 기분 좋게 작업했다”고 20년 만의 신작 발표 소회를 밝혔다.

한동안 캐나다에서 생활해온 김 작가는 3년 전 교통사고를 목격한 뒤 삶과 죽음의 의미를 돌아보며 ‘사망유희’의 주요 스토리를 구상했다. 지난해 9월 한국에 돌아와 만화를 그렸다. 김 작가는 “살다 보니 삶보다 죽음이 친근해지는 시간이 생기게 된다”며 “죽음을 앞두고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번 작품을 그렸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한 조폭, 죽어서도 인연을 잊지 못하는 귀신 등 날선 웃음이 인상적이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 ‘너 죽으면 어디로 갈거나’는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가정 폭력을 다뤄 눈길을 끈다.

“이번 만화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어요. 세상이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당하는 자의 아픔을 모르죠.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면,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던지고 싶었어요.”

김수정 만화가 신작 ‘사망유희’ 표지(사진=둘리나라)
만화 자신감 되찾아…“건강하게 그릴 것”

김 작가는 ‘사망유희’와 함께 2001년 한 스포츠지에 연재했던 만화 ‘작은 악마 동동’을 같이 출간했다. 1985~1987년 연재한 ‘아리아리 동동’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연재 당시 완결을 내지 못해 김 작가에게 ‘아픈 손가락’ 같은 작품이다. 김 작가는 “우연히 다락방에서 원고를 발견했다”며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지만, 캐릭터에 대한 디테일이 살아 있어서 만화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냈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가 탄생시킨 둘리는 올해 서른여덟 살이 됐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만화 캐릭터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둘리 뮤지엄을 찾은 관람객들은 예상 밖 ‘둘리 아빠’의 방문에 놀라며 사인 요청을 하기도 했다. 둘리를 좋아해 광주에서 올라온 6세 소녀와 만난 김 작가는 둘리 인형을 선물로 주며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최근엔 둘리를 패러디한 2차 창작물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김 작가는 “‘아기공룡 둘리’를 보물섬에 연재할 때도 독자엽서의 대부분이 둘리를 그린 것이었다”며 “둘리를 통해 여러 가지 또 다른 창작물이 나오는 현상 또한 재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년 만에 작업한 ‘사망유희’는 김 작가가 만화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게 한 작품이다. 다음 만화는 둘리의 새로운 이야기다. 제작이 무산된 극장판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아기공룡 둘리’의 스페셜 에피소드를 내년에 발표할 계획이다. 김 작가는 “건강하게 만화를 계속 잘 그릴 테니 독자들과도 계속해서 소통하고 싶다”고 전했다.

최근 서울 도봉구 둘리뮤지엄에서 만난 만화가 김수정 작가가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태형 기자)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