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길의뒷담화]'멍상사' 아닌 '유상사' 되는 법

최훈길 기자I 2021.04.19 05:00:00

文정부 개각, 유능한 수장 되려면
쇄신한다며 혼자서 마이웨이 말아야
보고만을 위한 공무원 보고서 없어야
소신·영혼 없는 관료 모습서 벗어나야

※모든 정책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세종관가 이슈나 정책 논의 과정의 뒷이야기를 추적해 전합니다.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세종 관가가 국무총리·장관 뒷담화로 술렁이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김부겸 총리·노형욱 국토교통부·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박준영 해양수산부·안경덕 고용노동부·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습니다. 관가에서는 새 수장이 어떤 정책을 펼칠지 못지않게 어떤 스타일의 리더십을 보일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외부 평판과 달리 실제 일하다 보면 ‘멍상사’(멍청한 상사)인 경우가 많아서입니다.

내각과 부처의 수장이 총리와 장관이 멍상사면 큰 일입니다. 장관의 실수나 잘못이 정권이나 부처 전체에 큰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과거 정부에서는 친일 사관 논란으로 지명된 지 2주일 만에 총리 후보자가 사퇴하는 일이 있었죠. 동문서답, 잇단 실언으로 ‘막말어록’을 남긴 해수부 장관이 전격 해임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승진 위해 물불 안가리는 상사가 멍상사

어떻게 하면 멍상사가 되지 않을까요? 27년간 인사 업무를 해온 김우호 인사혁신처장에게 물어봤습니다. 김 처장은 최근 인사처 국·과장들에게 선물한 ‘멍상사 유상사’ 책을 소개했습니다. 이 책은 중앙부처에서 30여년 간 근무하고 1급으로 퇴임한 김의환 씨가 쓴 책입니다. 책에는 멍상사, 유상사(유능한 상사) 비교를 통해 관리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 정리돼 있습니다.

저자는 멍상사를 △밥 같이 먹기 싫은 상사 △말이 통하지 않는 상사 △배울 것이 없는 상사 △실력 없는 상사 △존재감 없는 상사라고 정의했습니다. 저자는 “불나방처럼 권력을 향해 무섭게 달려드는 자들은 대부분 리더로서의 준비가 부족한 상태”라며 “이번 정부 들어서도 상사병은 바이러스처럼 사라지지 않는다”고 꼬집었습니다. 저자가 지적한 상사병은 승진을 위해 물불을 안 가리는 행태를 뜻합니다.

사진 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김부겸 국무총리·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사진=청와대)
문재인 정부에서 마무리 투수 역할을 맡은 이들이 곱씹어 볼만한 대목도 눈에 띄었습니다. 저자는 ‘의욕만으로 조직을 이끌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새 수장이 와서 “근본부터 뜯어고쳐야겠다”며 혼자서 칼자루를 휘두르면 멍상사가 된다는 지적입니다.

그동안 묵묵히 해왔던 일들이 한순간에 부정되면서 직원들이 허탈감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진짜 쇄신을 하고 싶으면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은 뒤로하고 직원 얘기부터 경청하라고 저자는 주문합니다.

‘멍상사는 보고 받는 것이 존재 이유’라는 지적도 명심해야겠습니다. 멍상사는 일일·주간·월간·연초·연말보고 등 각종 회의자료에 파묻혀 삽니다. 멍상사는 전체적인 방향을 보는 게 아니라 보고서 오탈자를 체크하고 질책합니다. 이 결과 정책 개선이 아니라 보고를 위한 보고서만 남습니다.

특히 ‘영혼이 있는가’라는 저자의 질문은 무겁게 다가옵니다. 영혼, 소신은 멍상사 사전에는 없는 말입니다. 이들은 윗선에 지시에 따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발표문을 읽습니다. 부당한 지시에 직언을 서슴지 않던 기개 넘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영혼이 없는 공직자는 국민에게는 불행의 씨앗입니다.

“지금 필요한 상사는 치어리더형 리더”

저자는 “문서를 집어 던지는 사람, 욕을 입에 달고 있는 사람, 보고서 중독증에 걸린 사람, 책임을 안 지는 사람, 집에 안 가는 상사, 위에는 말 한마디 못하고 직원만 들들 볶는 사람, 규정을 불변의 진리로 모시는 꽉 막힌 사람 중에 최악의 멍상사는 누구일까”라고 꼬집습니다.

그는 “지금 시대에 필요한 상사는 무서운 감독이 아니라 치어리더”라고 했습니다. 직원들이 신나게 자발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독려해주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김우호 인사혁신처장은 “국·과장 등 공무원들에게 ‘외부로 나가서 할 말은 적극적으로 하고 쓴소리도 들으면서 부딪히라’고 권하고 있다”며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일하도록 독려하고 그 과정에서 실수를 하더라도 포용해주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재인정부 남은 1년이 길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짧은 시기도 아닙니다. 인사청문회를 거쳐 새로 취임한 총리·장관들이 지킬 건 지키되, 혁신할 것은 혁신하는 유연하고 포용적인 리더십을 보이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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