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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th SRE][Issue]‘아 옛날이여’…소비패러다임 변화에 유통업 휘청

김성훈 기자I 2019.05.16 00:10:00

온라인 시대 등장에 유통업체 수익성 적신호

1993년 11월 12일 서울 도봉구 창동에 문을 연 이마트 창동점의 당시 모습. (사진=이마트)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1993년은 대한민국에 있어 굵직한 사건이 줄 잇던 해다. 고(故)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32년 만에 문민(文民) 정부가 출범한 해이자 이른바 ‘금융혁명’으로 불리는 금융실명제가 시행된 첫해기도 하다. 개도국에서는 처음 열린 대전엑스포는 우리의 과학·문화사에 큰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한민국 유통업계에서 1993년은 새로운 변화를 알린 한 해로 기억하고 있다. 그 해 11월 아시아 최초의 순수 자본 할인점인 ‘이마트’가 서울 지하철 4호선 창동역 앞에 문을 열고 첫 영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재래시장을 밀어내고 각 가정의 장바구니를 차지한 대형마트의 서막을 알린 시작이다.

경제성장과 함께 막 올린 대형마트 전성시대

“신세계 백화점이 운영하는 국내최초 디스카운트 스토어인 이마트 1호점인 창동점이 창동역 앞에 12일 문을 연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인 1993년 11월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다. 신세계백화점이 야심 차게 내놓은 할인점인 이마트가 창동역 앞에 문을 열고 영업에 나선 것이다. 같은 달 22일에는 경기도 성남시에 지하 1층~지상 8층 규모의 식료품 전문점과 의류할인점 등을 접목한 디스카운트 스토어를 1996년에 오픈할 것이라는 기사도 더해졌다.

대형마트의 출현은 국내 경제의 급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해마다 나아지는 집안 사정에다 1기 신도시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분당신도시와 일산신도시 입주로 내 집 마련이 속속 이뤄지면서 대형마트 이용이 급격히 늘었다. 신도시 입주와 함께 찾아온 현대화 물결이 한 장소에서 편리하게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대형마트 매출 급증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마트는 해외 진출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1997년 2월 중국 상해 무역센터에 3800평(1만2561㎡) 규모의 중국 내 1호점인 이마트 상해점이 문을 열었다. 국내 할인점이 해외에 둥지를 튼 것은 이마트가 처음이었다.

이마트가 국내외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키워나가자 ‘이거다’ 싶었던 경쟁 업체들도 너나없이 뛰어들었다. 1997년 대구 칠성점(現 대구점) 개장을 시작으로 홈플러스가 합류했고 이듬해인 1998년 강변역 테크노마트에 롯데마트 1호점이 문을 열면서 대형마트 전성시대가 활짝 열렸다.

대기업의 자본력을 바탕에 둔 대형마트가 몸집을 키워갈 무렵 재래시장과 자영업자의 설 곳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1996년 1월 남대문 시장의 분위기를 전한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유통시장의 양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다. 할인마트 하루 매출이 평균 3~4억에 육박하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반면 재래시장 상인들은 하루 매출이 평균 30%가량 줄면서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이후 대형마트 내 품목 다양화와 경쟁 대형마트의 출현, 거기에 IMF 외환위기가 연달아 일어나면서 재래시장과 관련 자영업자들은 긴 침체터널로 접어든다.
장바구니 대신한 클릭…대형마트, 실적악화에 한숨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승승장구하던 대형마트에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몇 해 전부터다. 10가구 중 3가구가 ‘1인 가구’인 시대가 도래하면서 온라인으로 생필품을 사는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11월 온라인쇼핑 동향’을 보면 지난해 11월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10조629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1%(1조9208억원) 늘었다. 1인 가구 증가로 가정 간편식 선호가 늘면서 △음·식료품(32.3%) △음식서비스(70.9%) 등에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클릭이 장바구니를 대신하면서 대형마트들의 성장세도 한풀 꺾인 모습이다. 한국신용평가(한신평)에 따르면 지난해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주요 대형마트 3사(社)의 합산 총매출은 전년보다 1.3% 줄고 영업이익률은 1.1%포인트 하락한 3.1%에 머물렀다. 온라인 채널 침투와 소비패턴 변화에 따른 경쟁력 약화로 구매 건수 감소를 반전할 성장 모멘텀이 없다는 전망이 더해졌다.

새로운 시장 발굴을 위해 1조원대 부동산투자회사(REITs·리츠)를 추진하던 홈플러스가 올해 3월 상장을 철회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홈플러스 리츠 측은 “최종 공모가 확정을 위해 국내외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시행했지만 회사의 가치를 평가받기 어려운 측면 등을 고려해 상장 철회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외 기관 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 신청 수량이 기관 배정 물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제시한 가격대도 희망 공모가 밴드 하단을 밑돌면서 상장 의사를 다음으로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 리츠를 주시하던 신세계그룹과 롯데그룹도 당분간 대형 리츠 등장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에 숨이 한풀 죽었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리츠자산관리회사(AMC)인 롯데에이엠씨를 설립해 국토교통부의 본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 SRE 자문위원은 “새로운 영역으로 꼽히던 공모 리츠가 탄력을 잃으면서 비슷한 처지의 다른 대형마트들의 고민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갈림길에 선 대형마트…돌파구 열릴까

대형마트들은 온라인 강화와 창고형 할인점으로 분위기 반전에 나서고 있다. 이마트는 온라인 통합법인(SSG닷컴)과 창고형 할인마트인 트레이더스를 선보이면서 재도약을 예고한 상황이다. 롯데마트도 중국 내 매출 부진 점포 정리와 유휴자산 매각을 통한 사업 효율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결국 관건은 20년 넘게 시장을 지배해온 대형마트들이 자금력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온라인 시장에서 얼마나 입지를 넓힐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한 SRE 자문위원은 “최근 대형마트들이 자신이 쌓은 노하우와 인프라 등을 바탕으로 온라인 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중장기적 안목에서 봤을 때 기존의 매장 인프라와 자금력을 앞세운 배송경쟁력 강화로 시장에서 대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자문위원은 다만 “기존에 없던 경쟁 요소가 하나 더 생긴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투자해야 하는 금액이 더 늘어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며 “전반적인 유통 환경과 각 회사별 온라인 대응 전략 성패에 따라 기업별 실적 차별화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29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 책자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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