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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주말] 선비의 걸음으로 구곡의 꽃을 품다, 소백산자락길

강경록 기자I 2015.10.10 06:06:06

경북 영주
한국관광공사 추천 단풍과 함께 즐기는 야생화 가을 여행

경북 영주 소백산자락길 1자락길인 구곡길과 쑥부쟁이.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경북 영주의 소백산자락길 1자락길은 선비촌에서 삼가주차장까지 12.6km로, 소백산자락길의 대표 구간이다. 선비길(3.8km)과 구곡길(3.3km), 달밭길(5.5km)로 나뉘며, 역사와 문화, 생태 삼박자를 고루 갖췄다. 자락길의 자락은 ‘논밭이나 산 따위의 넓은 부분’을 가리키지만, ‘스스로 즐긴다(自樂)’는 의미를 포함한다. 가을날의 야생화 역시 ‘자락 거리’ 중 하나다. 여러 구간이 있지만 1자락길, 그 가운데 구곡길이 알차다. 소백산자락길안내소를 출발점 삼아 죽계구곡을 끼고 초암사까지 왕복 두 시간이면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완만한 오르막이라 가을날 느긋한 산책 코스로 무리가 없다.

소백산자락길안내소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송이풀 몇몇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나도송이풀은 우리나라 산과 들의 양지 바른 곳에서 볼 수 있다. 초가을 전후로 자주색 꽃을 피우며, 크기가 작고 앙증맞다. 너도밤나무처럼 이름이 재미난데, 원래 송이풀이 따로 있다. 나도송이풀은 송이풀과 비슷해서 ‘나 또한 송이풀이다’라고 말하지만, 다른 속의 식물이다. 잎 속에 밥풀 같은 것이 있어서 꽃말이 ‘욕심’이다.

배점리의 지명과 연계해서 기억해도 재미나다. 배점리는 인근에 살던 대장장이 배순의 이름에서 왔다. 그는 천민이지만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 퇴계 이황이 제자로 들였다. 뒷날 퇴계가 죽자 상복을 입고 삼년상을 지냈으며, 《퇴계문도록》에 제자로 이름을 올렸다. 배점(裵店)은 배순의 대장간을 의미한다. 그는 스스로 선비라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 선비 이상으로 여겼다. 송이풀을 자처했으나 송이풀에 속하지 못한 나도송이풀에게 교훈이 됐을까.

고마리도 수시로 등장한다. 초가을 전후로 꽃이 피는데 형태와 개화 시기, 잎 모양에 변이가 많다. 같은 고마리도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물을 깨끗하게 해서 ‘고마우리’라고 부르던 게 고마리가 됐다고도 하고, 꽃이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꽃망울을 활짝 열기 전에도 꽃 같은데, 꽃잎을 열면 그 작은 몸짓에 탄성이 절로 난다.

여름부터 피기 시작해서 자주 볼 수 있는 쑥부쟁이나 자줏빛 대롱이 삐쭉 솟은 오이풀도 길가로 고개를 내민다. 그리 자박자박 걸음을 내면 ‘초암들꽃마을’ 팻말과 장승이 나오고, 주변으로 야생화 정원을 꾸민 흔적이 보인다. 기세가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슬며시 옆으로 걸음을 내볼 일이다. 아담한 정원에 그보다 아담한 세잎쥐손이가 눈길을 끈다. 엄지손톱만 한 꽃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다가가 살피면 그리 고울 수가 없다. 같은 쥐손이풀과에 속하는 이질풀은 분홍색이 한층 화려하다. 이질풀은 이질에 효험이 있어서 붙은 이름으로, ‘새색시’라는 꽃말처럼 수줍은 듯 핀다. 쥐손이풀과 식물은 보통 8~9월에 꽃을 피우는데, 요즘은 10월까지 보인다.

경북 영주에서 다양한 변이를 선보이는 고마리.
초암들꽃마을을 지나서는 계곡이 구곡길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죽계구곡은 소수서원에서 가깝고 여름 계곡과 가을 단풍이 아름다워, 조선의 학자들에게 성리학의 성지와 같다. 구곡 또한 여러 사람이 이름을 붙였다. 풍기 군수 주세붕의 구곡이 있고, 퇴계 이황의 구곡이 있다. 하지만 영조 때 순흥 부사 신필하가 구곡의 위치를 바위에 새긴 까닭에, 현재는 대부분 신필하의 구곡을 죽계구곡으로 인식한다. 그는 다른 이들과 달리 상류에서 하류로 진행하며 구곡을 새겨, 죽계구곡은 9곡에서 출발해 1곡을 향한다. 길은 두 갈래다. 임도를 따라 초암사까지 갈 수도 있고, 다리를 건너 숲으로 걸을 수도 있다. 길가의 야생화는 임도 근처에 많고, 숲의 운치는 계곡 안쪽 데크가 낫다. 적당히 넘나들며 그 품에서 보물을 찾듯 구곡이 새겨진 바위와 야생화의 흔적을 찾아 오른다.

꽃은 저마다 생김이 아름답고, 이름이 붙은 원인을 추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도송이풀이나 고마리뿐만 아니라 투구꽃이나 용담 등도 마찬가지다. 같은 자주색 꽃으로 자태가 우아한데, 투구꽃은 그 모양이 고깔이나 병사들의 투구 같다. 용담은 그 생김과 무관하게 곰의 쓸개(웅담)보다 쓰다고 그리 부른다.

초암주차장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좀더 오르니 초암사다. 의상조사가 부석사를 창건하기 전에 임시 거처로 지은 초막이 있던 자리다. 삼층석탑 한 기를 품은 포근한 사찰이다. 그 전후로 죽계구곡 1~4경이 있다. 계곡 위로 슬며시 가을 단풍이 계절을 밀고 당긴다. 자박자박한 걸음 따라 ‘자락’이 더한다. 단풍보다 붉은 사과 또한 달콤한 향기를 전한다. 야생화는 초암사를 지나며 줄어든다. 대신 가을빛이 물씬 풍긴다.

초암사에서는 국망봉 쪽으로 등산로가 이어지나, 가벼운 산행을 원할 때는 달밭길을 지나 비로사 방면으로 하산한다. 달밭길은 성재를 중심으로 순흥과 풍기의 달밭골로 나뉘지만, 행정구역의 의미일 뿐이다. 그저 고개를 넘는 정도라고 할까. 달밭골 사람들은 달이 밝아 달밭이라 하는데, 다락밭(계단밭)에서 기인한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달 밝은 골짜기의 심상을 쉬이 지워낼 수 없다. 성재를 넘어 풍기 쪽 달밭골로 내려설 때는 침엽수림이 무성해 피톤치드의 맑은 기운을 만끽한다.

달밭골 순흥 방면에 초암사가 있다면, 풍기 방면에는 비로사가 반긴다. 비로사 역시 이 일대 사찰처럼 의상조사의 발자취다. 의상이 제자 진정의 효심에 탄복해, 그의 어머니가 죽자 초가를 짓고 화엄경을 강의한 터다. 경내 적광전에 석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996-1호)과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996-2호)이 있다. 영주삼가동석조당간지주(경북 유형문화재 7호)가 과거 비로사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달밭길을 넘지 않을 계획이라면 구곡길 야생화 탐방을 전후해 소수서원(사적 55호)을 돌아본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서원의 시작이다. 풍기 군수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을 세우고, 퇴계 이황이 나라에 건의해 최초로 사액을 받았다. 문성공묘와 명륜당, 죽계천 옆 경렴정, 초입의 솔밭 등이 매혹한다. 선비촌이 들어선 뒤에는 그냥 지나치는 이들이 적잖은데, 은은하고 한적한 분위기가 선비촌과 다른 여운을 남긴다.

가을에는 인근 부석사도 빼놓을 수 없다.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든 길이 명불허전이다. 무량수전 앞에서 소백산을 품는 것 또한 가을 영주 여행의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소백산자락길 구곡길과 소수서원, 선비촌, 부석사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버스 시간을 미리 확인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오가는 데 큰 무리가 없다.

◇여행메모

△여행코스

▷당일코스= 소수서원→소백산자락길 1자락길 구곡길→소백산자락길 1자락길 달밭길, 소수서원→소백산자락길 1자락길 구곡길→선비촌

▷1박 2일 여행 코스= 순흥면사무소(옛 순흥도호부)→소백산자락길 1자락길 선비길→소백산자락길 1자락길 구곡길→소백산자락길 1자락길 달밭길 →숙박→ 소수서원, 선비촌→콩세계과학관→부석사

△가는길

△버스= 서울-영주,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30회(06:15~21:45) 운행, 약 2시간 30분 소요.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10회(07:10~20:40) 운행, 약 2시간 20분 소요. 영주시외버스터미널 옆 드림마트 맞은편 정류장에서 순흥 방면 시내버스 이용, 배점2리 하차, 소백산자락길안내소까지 도보 300m.

△자동차= 중앙고속도로 풍기 IC→풍기 방면 우회전→소백로 1.2km→봉현교차로 우회전→신재로 8.6km→순흥교차로 부석?소수서원 방면 좌회전 500m→읍내사거리 소백산?초암사 방면 좌회전 3.2km→소백산자락길안내소

△ 주변 볼거리= 금성단, 부석사, 콩세계과학관, 금선정, 죽령옛길

경북 영주의 풍기 달밭골 억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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