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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아동 돌봄체계 재설계의 방향

함정선 기자I 2021.03.24 05:50:00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우리나라도 일찍이 서명한 유엔의 아동권리협약에는 다음 네 가지 기본원칙을 서명국이 따르도록 하고 있다. 모든 아동은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 의견, 출신, 재산, 장애 여부, 태생, 신분 등과 관계없이 동등한 권리를 누리도록 하는 ‘비차별 원칙’,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을 결정할 때는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아동최선의 이익 원칙’, 아동은 생존과 발달을 위해 다양한 보호와 지원을 받도록 하는 ‘생존과 발달의 권리 원칙’, 아동은 자신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적절한 사회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갖고,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일에 대해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의견을 존중받게 하는 ‘아동 의견존중 원칙’이 그것이다. 따라서 아동 돌봄은 중요한 아동권리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저출산 문제나 일·생활 균형 문제의 해결과 관련해서도 아동 돌봄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과제가 되지만 그래도 핵심은 아동권에 입각해서 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영유아와 초등학생에 대한 돌봄 제공 체계가 각 부처별로 구축돼 왔다. 영유아의 경우 어린이집은 복지부, 유치원은 교육부가 담당해 왔으며, 초등학생의 경우에는 지역아동센터, 다함께돌봄센터는 보건복지부, 초등돌봄교실은 교육부, 방과후아카데미는 여성가족부부가 맡는 등 분절적으로 맡아왔다. 당연히 전달체계 등이 달라 서비스 격차나 공백 문제가 생겨나며, 이용자 불편, 종사자 갈등 문제 등이 계속 제기돼 왔다. 특히 코로나19로 돌봄 공백문제가 생기면서 최근 교육부가 방과후학교와 돌봄 교실을 학교에서 운영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초·중등교육법 개정 입법안을 내놓았으나 교원 단체들이 돌봄은 학교 소관이 아니라며 강력하게 반발함으로써 입법 추진은 중단되었지만 교육과 돌봄의 분리문제는 불씨를 안고 있다. 돌봄 인력의 전문성, 재원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렇게 볼 때 코로나19는 온종일 돌봄 프로그램 등 돌봄을 양적인 시간으로 충원해 주는 돌봄 정책만으로는 아동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폭적인 아동 돌봄 체계의 재설계를 요구한다. 재설계의 방향은 첫째, 아동권의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돌봄은 부모의 부담을 덜어 주는 하나의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더 행복할 수 있도록 하며, 주체적인 인간이 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모든 성인이 아동 돌봄 역량을 갖춰 가정과 시설 간, 남녀 간 돌봄 책임을 균형 있게 나누고, 개인의 일상 생활시간에서도 노동과 돌봄 간에 조화를 이뤄야 한다. 아동 돌봄이 어느 한 쪽에 치우치면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셋째, 아동 돌봄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 아동 돌봄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원인인 대상 선정기준과 접근성, 서비스의 불충분성 문제를 해소시키는 방향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특히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하려면 돌봄 인력의 전문성과 그에 걸맞은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넷째, 아동 돌봄의 방향을 교육을 강조하는 학교 중심형과 돌봄 자체를 강조하는 지역사회 중심형 모두가 필요하므로 지역사회가 자율적으로 지역여건과 재정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비중을 조절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다섯째, 국가는 재택근무나 가족돌봄휴가를 통해 아동 돌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인 일용직 노동자나 자영업자들이 일을 쉬더라도 생계를 지원해 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소득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모든 가정이 개별 돌봄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 아이를 성숙한 주체적인 민주시민으로 키우는 일은 온갖 정성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전 사회와 국가가 아동 돌봄 체계에 관심을 쏟아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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