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유의 웹툰파헤치기]“‘아만자’가 암의 정서적 이해 발판됐으면”

김정유 기자I 2020.07.25 06:00:00

레진 ‘아만자’ 김보통 작가 인터뷰 ②
‘D.P 개의 날’ 이어 ‘아만자’ 웹드라마화
아버지와 자신의 이야기 그래도 담아
“‘아만자’는 한풀이 같은, 자기치유적 작품”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아만자’는 암 환자의 감정과 시선을 진솔하게 담아낸 웹툰이다. 암 말기 젊은 환자의 시선으로 일상의 정서를 포착해 독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준 작품이다. ‘아만자’를 통해 데뷔한 김보통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2014 오늘의 우리문화상’, ‘2015 부천시민만화상’을 수상했다. 레진 한국 서비스에서는 1000만, 일본 서비스에서는 약 1200만 조회 수를 기록할 정도로 국내외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아만자’는 웹드라마로도 제작된다. 최근 레진이 진행한 김보통 작가와의 릴레이 인터뷰를 순서대로 소개한다.

사진=레진엔터테인먼트


◇‘아만자’ 김보통 작가

△‘아만자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김보통 작가(이하 김):
과거 이야기를 꺼내 보자면 아버지가 암 투병을 하다가 돌아가셨어요. 당시 저는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병간호를 제대로 못했죠.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죄의식이 항상 있었어요. 또 이런 생각도 있었어요. 이렇게 회사를 다니다 보면 ‘20년 뒤에 아버지가 누워있던 병상에서 죽어가는 건 바로 나겠구나’. 회사 다니다 죽으면 너무 억울할 거 같았어요. 회식하고 야근하느라 하고 싶은 거 해보지도 못하고 죽으면 얼마나 슬프겠어요. 물론 지금도 만화 그리다가 죽을 수는 있죠.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하다가 죽는다면 그 의미는 다를 거라 생각해요.

만화가가 된 건 정말 우연이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책방을 열려고도 했고, 로스쿨 준비도 했어요. 그림 그리는 건 취미였는데 트위터에 일반인 프로필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서 올렸어요. 한 몇 백 장쯤 쌓였을까? ‘송곳’ 최규석 작가님으로부터 짧은 메시지가 왔어요. “만화 한 번 그려보지 않겠느냐”라고. 그게 시작이었어요. 첫 작품으로 다루고 싶은 이야기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밖에 없었어요.

‘아만자’는 제게 한풀이와 같아요. 마음의 응어리를 풀기 위한, 심리적인 장애물을 뛰어넘기 위한 발버둥이죠.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넘어서지 못하면 인생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야말로 자기 치유적인 행위였습니다. 지금 ‘아만자’를 다시 보면 제정신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에요.(웃음) 독자분들 신경 쓰지도 않고 오로지 저를 위해 그린 작품이니까요.

△병실에서 투병하는 암 환자의 ‘현실’과 숲을 헤매는 ‘꿈’이 번갈아 가며 보인다. 어떤 의미인가.

김:
암 환자들이 말기에 이르면 통증을 못 견뎌요. 그래서 모르핀을 많이 맞거든요. 모르핀을 맞으면 의식이 없어요. 하루에 깨어 있는 시간이 30분 정도? 잠깐 깨어나도 영문을 모르겠는 이야기를 해요. 뇌에 물이 차서 환각이 보이는 거죠.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랑 이야기를 했어요. “아빠가 꿈속에서 재미있는 모험을 떠났다 봐.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던 이야기를 우리한테 설명해 주는 거야”라고. 이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현실이 너무 괴로우니까. 그래서 아버지가 진짜 꿈속에서 즐거운 모험을 떠난 거였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이야기를 구성했어요.

△극 중 ‘죽어가는 아들을 두고 회식에 갔던 아버지의 에피소드’는 실제 작가님의 경험담으로 알고 있다.

김:
맞아요. 실제로 저희 아버지가 투병 중이실 때 저 또한 회식에 끌려다녔어요. ‘아만자’를 통해 독자들마다 이입하는 대상이 다 다를 거예요. 누구는 아내의 심정으로, 여자친구의 심정으로. 저는 회사원의 심정에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버지가 아픈데도 불구하고 회식에 나갈 수밖에 없었던 그 괴로운 심정을요. 이걸 만화로 그려서 아버지에게 변명할 수 있었던 거죠. “아버지, 사실은 이랬어요. 저도 되게 힘들었어요”라고요.

△주인공은 이름 없이 ‘아만자’라고 불리다가 마지막에서야 이름이 공개된다. 어떤 의미인가.

김:
사실은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었어요. 그냥 그렸는데 어느 날 누가 “왜 주인공 이름이 안 나와요?”라고 묻는 거예요. 어라, 진짜 그러네? 근데 생각해보면 일생 생활에서 이름을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엄마, 아빠, 야, 너라고 하지 이름 넣어서 “보통아” 이렇게 부르는 경우는 잘 없거든요. 오히려 이름이 없으니까 독자분들이 더 대입을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어쨌든 이름에 대한 떡밥은 풀어야 했으니까 마지막에 저희 아버지 이름을 넣었어요.

살아생전에 아버지께서 그렇게 유명해지고 싶어 했어요. 평생을 무명(無名)으로 살다 가셨으니 그 소원을 나중에라도 이뤄 드린 거예요. 유치원 다닐 적부터 아버지가 앞에 앉혀놓고 아버지 이름을 한자로 쓰게 시켰거든요. 아버지 이름은 한자로 쓸 줄 알아야 한다고. 그래서 동녘 동(東)에 밝을 명(明), 인이 박히게 들었던 아버지 이름을 작품 마지막에 넣은거죠. 동쪽에서 해가 떠오른다는 의미도 만화의 흐름과 잘 맞았고요.

‘아만자’ 4화 중. (그림=레진엔터테인먼트)


△꿈속에서 마주하는 ‘사막의 왕’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김:
사람들이 ‘암’인 줄 알더라고요. 사실 ‘사막의 왕’이 상징하는 건 ‘절망감’이에요. 암 환자들이 육체적으로도 괴롭지만 점차 커지는 절망감에 더 힘들어해요. ‘내년이 오지 않겠구나, 자식도 못 낳고 떠나는구나, 내 애가 결혼하는 걸 못 보겠구나.’ 이런 생각에서 오는 절망감 때문에 의지가 꺾여버려요. 투병 생활 중에도 긍정적인 마음이 꺾이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분들은 삶의 질을 보았을 때 마지막까지 자기 삶을 살고 가세요. 반면 절망감에 사로잡혀 매일 슬퍼하며 울다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어요. 절망감에 사로잡혀서 마지막 하루를 사는 것과 마지막 하루까지 절망감을 이겨내고 사는 건 아주 큰 차이가 있어요.

‘사막의 왕’은 절망감이에요. 마지막 화에 다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보면 ‘사막의 왕’이 쓰던 왕관과 봉은 남겨져 있어요. 마음가짐에 따라 언제든 다시 절망감이 시작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해요.

△‘D.P 개의 날’에 이어 ‘아만자’ 또한 웹 드라마로 재탄생한다. 소감이 어떤가.

김:
‘D.P 개의 날’도 그렇고 ‘아만자’도 그렇고. 그냥 다들 제정신이 아닌 거 같아요. 다들 좀 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 거 아닌가? (웃음) 사실 저는 저에 대한 확신이 없어요. 작품에 대한 애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제가 기술적으로 뛰어난 만화가도 아니고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저 우리 직원들에게 월급 줘야 하는 사장님일 뿐이에요.

근데 최근에 ‘아만자’ 촬영 현장에 갔더니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진지한 자세로 드라마를 만들고 있는 거예요. 그때 죄를 짓고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너무 미안한 거예요. 그때 생각이 달라졌어요. 다들 확신을 갖고 내 작품에 자본과 인력을 투입해서 드라마를 만드는 걸 보면서 ‘내가 허투루 작품을 만들면 안 되겠다’, ‘고료 받고 끝이 아니라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웹 드라마 ‘아만자’의 시청 포인트는 무엇인가.

김:
웹 드라마 ‘아만자’는 웹툰 원작과 살짝 다르기는 할 거예요. 주인공 설정도 달라졌고 아무래도 숏(short) 폼 형식의 콘텐츠라서 호흡이 짧아요. 개인적으로 기대되는 포인트는 꿈속 세계의 표현이에요. 주변에서도 다들 물어보는 거예요. ‘꿈속’ 장면이 많이 나오는 데 어떻게 영상으로 표현할 수가 있냐고요. 이 부분은 애니메이션으로 처리가 되는데 업계에서 굉장히 각광받는 다크호스가 작업을 하고 있어서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8월 말에서 9월 초 방영 예정이에요.

△독자에게는 ‘아만자’가 어떤 작품으로 남길 바라나?

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암 환자를 나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봐요. 암이란 다른 세상 이야기인거죠. 근데 살다가 세 명 중에 한 명은 암에 걸려 죽어요.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 중 하나인 거예요. 지금은 내가 젊고 건강하지만 ‘나중에는 암에 걸려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봐야 해요. 교통사고처럼 불의의 사고로 생각할 게 아니라 그저 노화의 한 과정이라고 여긴다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거죠. 혹시 모를 상황이 닥쳤을 때 ‘아만자’가 완충 작용을 하는 쿠션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더불어 암 환자들이 단지 육체적인 고통만 겪는 게 아니라 외로움, 두려움 등 정신적인 고통도 함께 겪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미국에서는 ‘아만자’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어요. 암 환자의 정서적인 부분까지 알아야 환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나라도 ‘아만자’를 통해 암을 단지 병리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정서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발판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만자’ 단행본. (사진=레진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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