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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장사도 감사쇼크]과도한 손실과 부채…감사인 눈높이 못 맞춰

이명철 기자I 2019.04.12 05:11:00

계속기업가정 불확실성, 감사의견 주요 근거로 제시
대표이사 재판 등도 회계 신뢰성 하락 요인으로 작용
외감대상 확대와 지정제 곧 도입…기업 대응 필요해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최근 30여개 상장사들이 감사의견 ‘비적정’을 받으면서 회계기준 강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지만 비상장사들은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 증시에 상장된 기업은 아니어도 실생활에서 자주 접한 기업들의 재무제표가 무더기로 신뢰할 수 없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먼 셈이다.

◇ 회계 깐깐해지는데…재무제표 신뢰도↓

외부감사인으로부터 ‘의견거절’을 받은 주요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주로 과도한 영업손실과 부채, 대표가 연루된 소송 등으로 기업의 계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충분하지 않은 주석 기재, 자금 거래 소명 부족 등도 의견거절의 근거로 제시됐다.

카페베네의 의견거절 근거 중 하나는 계속기업가정의 불확실성이었다. 회사는 지난해 10월 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지만 외부감사인은 계속기업 가정의 타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경영 정상화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경우 현재 자산 회수나 부채 상환의 불확실성이 발생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내용이 재무제표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출채권과 재고자산의 적정성 확인이나 특수관계자와 거래 내역의 범위·정확성을 판단할 감사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얍컴퍼니는 영업손실 57억원, 당기순손실 217억원을 기록했고 현재 기업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약 133억원 초과하는 등 재무제표가 계속기업 존속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대표의 위법 행위가 회계 신뢰성 하락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서울히어로즈는 이장석 전 대표가 횡령 혐의로 실형을 받아 복역 중인 상태다. 외부감사인은 이와 관련 사건 판결에 따른 변제금액 영향에 대한 감사증거를 입수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회사가 피소된 주식양도 등 청구 소송 사건도 중요한 불확실성으로 꼽았다.

알바이오는 전 대표이사의 재산국외도피 위반 혐의 형사 재판과 조인트스템 반려 처분에 대한 식품의약품안전처 행정 소송 등을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외부감사인은 불확실한 여러 건의 소송 결과가 계속기업 존속능력에 대한 의문을 초래한다고 진단했다. 69억원대의 영업손실, 누적이월결손금 638억원, 유동자산을 70억원 가량 초과하는 유동부채도 문제로 지목됐다.

◇ 상장사에 비해 비협조적인 비상장사?

한국거래소의 상장 규정 등을 적용 받는 상장사에 비해 비상장사는 상대적으로 회계관리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대형회계법인들도 상대적으로 비상장사보다는 상장사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주권상장법인에 대한 4대 회계법인 점유율은 개별감사 44.7%, 연결감사 49.7%다. 4개의 회계법인이 상장사 절반 가량의 외부감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상장사들은 기업 내부 재무팀을 잘 갖춘 경우가 많고 감사보수도 높아 규모가 작은 비상장사보다 감사업무가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한 대형회계법인 관계자는 “상장사는 투자자인 주주가 많기 때문에 감사의견을 낼 때 부담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라며 “비상장 중소기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이해관계자가 적기 때문에 상장사에 비해 감사자료 제출 등 감사 업무에 비협조적인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비상장사는 감사의견 비적정을 받아도 상장폐지를 당할 일도 없고 금융당국으로부터 별다른 조치를 받지 않는다. 단순히 제도만 놓고 보면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유인책이 부족한 셈이다.

다만 기업 신인도 저하에 따른 자금 조달 차질 등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감사의견 거절만으로 감사인 지정 같은 조치를 할 수는 없다”면서도 “당장 채권자들로부터 문제 있는 기업으로 인식될 수 있어 자정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신용평가는 비적정 감사의견은 정보 위험을 높이고 재무제표 신뢰성을 저하하는 만큼 향후 채무 상환 관련 재무 위험에 대해 보수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류종하 연구원은 “자본시장 투자자와 금융기관에 위험신호로 작용해 신규 자금 조달이나 만기 연장에 불리할 수 있다”며 “단기차입 부담이 크거나 대체 자금 조달력이 부족한 회사는 유동성 위험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앞으로 비상장사에 대한 외부감사는 더욱 확대된다. 외감법 시행령 개정안을 보면 자산(100억원 미만), 부채(70억원 미만), 종업원 수(100인 미만), 매출액(100억원 미만) 중 3개를 충족하는 비상장사를 제외한 모든 회사(유한회사 포함)는 원칙상 외부감사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렇게 되면 앞으로 외부감사대상이 3만3000여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봤다.

주기적 지정제까지 도입되면 그간 외부감사를 받지 않았던 기업들은 정부가 지정한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게 된다. 기업들의 회계역량 강화는 시급한 문제가 됐다. 금융위원회 감리위원회 출신 한 교수는 “기업은 물론 감사인들도 표준감사시간이나 품질관리 등 신 외감법을 통해 도입된 제도를 잘 준수하는 게 중요하다”며 “한국공인회계사회 위탁감리 확대나 은행권의 대출 제한 등 제재를 가하는 방법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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