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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확대경] 저인망식 기업수사가 남긴 것

김정민 기자I 2015.11.17 06:00:00
[이데일리 김정민 기자] 저인망식 어업을 하는 어선은 그물 머리를 배 후미나 옆쪽에 매단다. 그물을 바다에 가라앉힌 뒤 배를 앞으로 몬다. 배가 전진할 때 생기는 수압으로 가라앉아 있던 그물 입구가 벌어지고 입구 범위 내에 있는 물고기들은 모두 그물 안에 갇힌다.

저인망식 어업은 그물을 넗게 펴고 바다를 훑는 방식이다 보니 어군을 포착해 그물을 치는 선망, 일정 장소에 그물을 치고 물고기가 잡힐 때까지 기다리는 정치망 등 다른 어업방식보다 손쉽게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반면 저인망식 어업은 물고기를 마구잡이로 남획해 어족자원을 황폐화할 수 있다. 또 그물이 해저를 긁어내 해초지대를 고사시키는 등 문제가 많아 세계 각국이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라고 한다. 그린피스 등 국제 환경단체들은 저인망식 어업을 막기 위해 수톤 크기의 바위들을 어장지역 바다에 떨어뜨리기도 한다. 바다를 훑던 그물이 바위에 걸려 망가지게 하기 위해서다.

검찰의 경제범죄 수사는 기본적으로 저인망식이다. 그물을 넓게 펼치고 밑바닥부터 훑는다. 검찰은 기업범죄 수사에 착수하면 일선 실무자를 가장 먼저 불러낸다. 이어 책임자, 중간간부, 임원, 최고경영진 순으로 출석을 요구하거나 소환한다.

압수수색은 전방위다. 개인 소지품부터, 사무실 컴퓨터, 회사 서버, 임직원 자택도 압수수색 대상이다. 대기업 본사 건물에서 박스째 서류와 컴퓨터를 실어내는 장면은 기업범죄 수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때 몇 명을 구속했느냐는 수사의 성과를 측정하는 잣대다. ‘검찰 00명 구속’이라는 헤드라인이 신문에 등장해야 수사팀이 박수를 받는다. 구속은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 뿐 아니라 피의자를 압박해 자백을 받아내는 효과적인 수사 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같은 저인망식 수사는 성과 못지않게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털어서 먼지가 나올 때까지’ 수사가 진행되다 보니 무리수를 두기 십상이다. 이석채 전 KT 회장 사건이 대표적이다. 검찰이 적용한 배임혐의를 1심 재판부는 ‘고의성 없는 경영상 판단 실패’라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강덕수 전 STX 회장은 분식회계에 뒤따른 ‘허위 재무제표 이용 사기’ 혐의에 대해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지난달 14일 풀려났다. 서울고등법원에서 파기환송심 재판 중인 이재현 CJ 회장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도 비슷한 맥락이다. 검찰은 재판부가 기업범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을 한다고 불만인 모양이지만 무리한 기소로 인한 자업자득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지난 3일 대검찰청 확대간부회의에서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수술’식 수사를 재차 강조했다. 그는 “사람이나 기업 전체를 마치 의사가 종합 진단을 하듯이 수사하면 표적 수사 등의 비난을 초래하게 된다”고 했다.

다시 쓴소리를 꺼낸 이유에 대해 김 총장은 “남은 임기 내에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취지”라고 했다. 김 총장은 다음달 1일 퇴임한다.

검찰내에서는 김 총장의 쓴소리가 마땅찮은 사람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현장의 애로를 반영하지 않은 질책이라는 불만도 들린다. ‘수사는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한다. 수사를 진행하다 보면 예상 못한 새로운 혐의가 드러나 수사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열 도둑을 놓치더라도 무고한 한 사람을 벌해서는 안된다’는 명제는 국가에 형벌권을 위탁한 국민들의 당연한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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