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페리지 갤러리는 이해민선 작가 개인전 ‘디코이’(Decoy)를 개최하고 있다. 전시 제목처럼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야생 오리를 사냥하기 위해 연못에 띄워 놓는 가짜 미끼인 ‘디코이’에 특히 흥미를 가졌다. 야생 오리의 모습을 똑 닮은 디코이는 가까이서 보면 가짜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먼 곳에는 이를 구분하기 어려워, 마치 오리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어 진짜 오리를 유인한다. 작가는 “디코이는 스티로폼으로 만든 무생물에 불과하지만, 멀리서 디코이에 다가가는 오리에게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다름없이 인식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이번 작품 제작 동기를 밝혔다.
작가는 디코이를 보면서 만든 연작 시리즈를 벽 한쪽면에 나열했다. ‘아 깜짝이야’ ‘사물’ ‘사물인 줄 알았네’ ‘그’ ‘날, 밤’ ‘천변에’ ‘웅크리고 있는’ ‘검은 등어리가’ ‘반질반질 했다’는 제목의 작품 9점이 그것이다. 작품 제목은 작가가 디코이를 보면서 떠올렸던 문장을 쪼개서 붙였다. 각 작품은 디코이를 연상시키는 스티로폼 조각이 꽂혀 있기도 하고, 정확한 형체를 알 수 없는 스티로폼 알갱이가 떨어져 흩어진 모습으로 둥둥 떠 있기도 한다. 작가는 “관람객들이 디코이에 유인되는 오리의 경험을 직접 해보길 바라 의도적으로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며 “작품과의 거리와 바라보는 관람객의 시선에 따라서 캔버스 속 작품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작가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단순히 재현하기 보다는 그 대상의 본질적 요소를 표현하고자 끊임없이 고민했다. 이같은 작가의 태도는 자신의 자화상 ‘자화상을 그리다’에 분명히 드러난다. 자화상이라고 하지만 작품속에는 작가의 얼굴이 아닌 붉은색 ‘덩어리’가 놓여 있다. 작가는 “이번 작업을 하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거울 속 비친 얼굴을 보면서 스스로의 본질에 대해 고심하다 보니 어떤 덩어리를 그리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특정한 형태가 있지 않고 모호한 상태로 덩어리가 고정되지 않은 스스로의 본질을 무엇보다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표승하 페리지갤러리 디렉터는 “작품 속 덩어리는 일시적이고 불확실함으로 가득한 세계를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다”고 부연했다. 전시는 11월 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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