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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가상공간에 말 통하는 친구 만들 것"…AI 열공 나선 '배그' 신화 CEO

노재웅 기자I 2021.06.04 05:00:00

크래프톤 김창한 대표 인터뷰
배틀그라운드로 공전의 히트 친 스타 개발자
후속 프로젝트는 게임 아닌 'AI 딥러닝'
대표가 AI 전문가인 회사 목표로 '열공'
진짜 친구 같은 캐릭터 '버추얼 프렌즈' 목표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가 5월27일 서울 서초구 펍지 사무실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데일리 노재웅 기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PC게임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PUBG)’로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개발자에서 작년 6월 국내 4위 게임사 크래프톤의 수장이 된 김창한(47) 대표. 이른바 ‘배그 신화’를 쓴 김창한 대표가 크래프톤에서 선보일 후속 게임은 과연 무엇일지가 그동안 업계의 큰 관심사였다.

그런데 대표 취임 이후 첫 언론 인터뷰로 이데일리와의 대담을 택한 김창한 대표가 꺼낸 자신의 후속 프로젝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게임이 아니었다.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펍지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인공지능(AI) 딥러닝을 공부하는데 하루 대부분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고 멋쩍게 웃으며 한 회사의 대표이기보단, 학구열에 불타는 학생의 자세로 테이블에 앉았다.

AI로 다시 쓸 배그 신화…“새 역사는 숫자로 예견 못 해”

모두가 제2의 배틀그라운드는 무엇일까 궁금해했지만, 그의 시선은 의외에 곳에 꽂혀 있던 것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크래프톤 대표 자리에 처음 취임했을 때부터 딥러닝 분야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운을 뗐다.

김 대표는 “작년 여름 크래프톤의 대표직을 맡게 되면서부터 지금 잘하는 것도 계속 잘해야 하지만, 미래를 준비하려면 딥러닝에 집중하는 게 맞겠다고 판단했다”며 “대표이기 전에 한 명의 엔지니어로서 이 기술이 앞으로 우리 삶과 비즈니스를 다 바꿀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작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딥러닝 공부를 시작했고, AI연구팀을 꾸려 팀원 한 명 한 명도 자신이 직접 영입했다. 이날 인터뷰 자리에도 크래프톤의 직원이기 전에 김 대표의 딥러닝 공부 친구들인 염화음 딥러닝팀 팀장, 김훈 음성합성팀 팀장, 알베르토 세레저르 머신러닝 연구원 등 세 명이 동석했다.

염 팀장은 미네소타대에서 전산학을 전공하고 2018년까지 5년간 카카오에서 데이터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펍지로 합류한 데이터와 머신러닝 전문가로, 김 대표가 직접 딥러닝팀 팀장직을 맡긴 인물이다. 메디컬 AI 스타트업 ‘루닛’의 딥러닝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김훈 팀장과 덴마크기술대학교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세레저르 연구원도 김 대표가 공들여 영입한 인재들이다. 이들이 참석하는 세미나는 이강욱 위스콘신 매디슨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가 자문 교수 역할을 맡고 있다.

염 팀장이 “대표님께서 핵심을 정말 잘 짚으신다. 개념의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과 통찰력이 특히 뛰어나다”고 치켜세우자, 김 대표는 “나름 공대 박사 학위도 있고, 공부를 오래 하긴 했다”며 농담을 던졌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왼쪽부터) 크래프톤 김훈 음성합성팀 팀장, 김창한 대표, 염화음 딥러닝팀 팀장, 알베르토 세레저르 머신러닝 연구원. 김 대표는 작년 10월부터 매일 이들과 딥러닝 공부에 매진해오고 있다.


아무리 중요한 미래 과제라고 판단이 섰어도, 회사 경영과 개발을 겸업하기도 힘든데 딥러닝 공부에까지 대표가 시간을 쏟아도 차질은 없을까.

김 대표는 “잘 돌아가고 있는 조직은 위임하고, 직접 해야 한다고 판단한 일은 직접하는 게 저의 방식”이라며 “펍지에서도 재작년 e스포츠를 키워야겠다고 판단했을 때부터 최근까지는 직접 e스포츠 사업을 지휘했지만, 올해부터는 담당 조직에 위임한 상태다. 그러면서 생긴 시간에 다시 직접 해야겠다고 시작한 게 딥러닝”이라고 설명했다.

올 들어 특히 국내 유수의 ICT기업들이 대규모 AI 전략 발표와 투자 계획을 잇달아 내놓고 와중에 크래프톤도 이러한 흐름에 단순 편승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들법하다. 투자 규모는 남들보다 얼마나 클지, 어디에 센터를 건립할지도 관심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숫자로 기술을 논하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우리는 이제 게임 회사를 넘어 AI 회사로 갑니다’ 같은 슬로건도 지양하고 싶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김 대표는 “배틀그라운드만 해도 당시 얼리액세스(사전출시) 게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기록이 350만 장이었는데, 이를 기반해 예측값을 냈다면 200만 장을 얘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는 7000만 장을 기록했고, 이것은 새로운 역사였다”며 “당시 우리 제작환경과 개발인력이 최대 40명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제작비에 비례한 결과도 아니었다”고 배그 신화를 회상했다.

이어 “솔직히 말해 크래프톤도 이제는 자원이 많은 회사가 됐지만, 그 중 얼마를 투자하겠다고 밝히는 것은 단순 흥미를 유발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닌가 한다”면서 “IT, 디지털 세상에서는 미래 결과가 반드시 투입되는 숫자에 비례하지 않는다고 믿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대신에 그는 외부에서 연구소장을 데려와 맡기는 여타 기업들과 달리, 회사 대표인 자신이 직접 딥러닝을 연구하고 전문가가 돼 팀을 진두지휘한다는 점을 봐 달라고 했다.

염 팀장을 비롯한 나머지 팀장, 팀원들도 그런 김 대표의 의지와 행동력을 신뢰해 팀에 합류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연구만 하는 AI는 관심 없어…상용화에 몰두

김 대표가 이끄는 크래프톤 AI연구팀이 딥러닝으로 만들고자 하는 건 매우 발전된 형태의 캐릭터 친구, ‘버추얼 프렌즈’다.

이미 게임에는 NPC(게임 안에서 이용자가 직접 조종할 수 없는 캐릭터)라는 형태로 이용자과 대화하는 캐릭터가 존재하지만, 현재는 제한된 입력값에 따른 상호작용이 전부인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픽 품질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발전했지만, 상호작용에서만큼은 여전히 짜인 ‘각본’ 느낌이 강하다.

김 대표는 “살아 있는 캐릭터 친구인 버추얼 프렌즈를 만들기 위해선 한국어 초거대 언어모델(GPT-3)을 보이저엑스와 공동연구로 연내 확보하는 것을 시작으로 오픈 도메인 대화, 음성-자막 변환, 모션 인식 등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면서 “이 네 가지 구성요소는 단순히 연구과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B2C 서비스 모델로 제품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크래프톤 장병규 의장과 KAIST 시절부터 연을 맺어온 남세동 대표가 이끄는 딥러닝 스타트업 보이저엑스는 해당 분야에서 선제적 기술력을 인정받아 포스트밸류 1000억~1500억원 수준의 투자 유치가 전망되는 회사다.

4개의 AI 연구 영역을 차례로 개발하되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닌, 제품화를 위한 실제적인 접근에 집중하겠다는 게 김 대표 생각이다.

크래프톤이 선보일 AI 제품들에 대한 상세 콘셉트는 비밀에 부쳤다. 그는 “확실한 건 크래프톤의 기존 게임 IP와 연결하지 않고, 완전히 독립된 제품 및 서비스로 만들 것”이라며 “버추얼 프렌즈를 게임이라는 틀에서 먼저 만날 수 있게 만들겠지만, 그 외에 다양한 공간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힌트를 줬다.

김 대표는 올해만 크래프톤 AI연구팀 인력을 50명 수준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학문적 연구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신과 함께 세상에 쓰일 AI 제품을 만들 인재를 찾고 싶다는 게 그의 소망이다.

김 대표는 “현재 딥러닝은 학부 전공이 없다. 결국 경험과 독학으로 익혀야 하는데, 일반 회사에 들어가서도 리서치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다”며 “이곳에선 저와 함께 실제적인 AI 연구와 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큰 관심을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왼쪽부터) 크래프톤 김훈 음성합성팀 팀장, 김창한 대표, 알베르토 세레저르 머신러닝 연구원, 염화음 딥러닝팀 팀장. 김 대표는 작년 10월부터 매일 이들과 딥러닝 공부에 매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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