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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목조불상이 1200년 동안 건재한 이유는[알면 쉬운 문화재]

이윤정 기자I 2023.04.15 07:00:00

충균에 강한 향나무 재료
옻칠개금 통해 주변 환경으로부터 보호
스님들의 지속적인 보존·관리

우리 ‘문화재’에는 민족의 역사와 뿌리가 담겨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있듯이 수천, 수백년을 이어져 내려온 문화재는 우리 후손들이 잘 가꾸고 보존해 나가야 할 소중한 유산이죠. 문화재는 어렵고 고루한 것이 아닙니다. 문화재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 쉽고 친근하게 배울 수 있는 문화재 이야기를 전합니다.<편집자주>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불상인 합천 해인사의 두 불상이 지난해 국보로 승격됐어요.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과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이 주인공인데요. 앞서 두 불상은 2012년 보물로 지정된 바 있습니다.

해인사는 802년 창건됐어요. 두 불상의 조각양식과 과학적 조사 결과를 고려할 때 통일신라 때인 9세기 후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두 불상은 현재까지도 형태가 온전하고 보존이 잘 된것이 특징인데요. 통일신라 시대의 목조불상이 무려 1200년 동안 건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사진=문화재청).
우선 불상이 충균에 강한 향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재료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향나무는 강한 향 때문에 생긴 이름이에요. 근처에만 가도 진한 향이 느껴질 정도죠. 강한 향으로 인해 해충이 잘 생기지 않고 병에도 쉽게 걸리지 않아 예로부터 궁궐이나 저택의 목재로 귀하게 쓰였어요.

또한 ‘옻칠개금’을 통해 외부의 부적절한 보존환경으로부터 보호를 할 수 있었어요. 옻칠개금은 옻칠을 하고 난 후 금으로 칠하는 작업을 말해요. 옻칠은 사포질이 마무리되면 건조해주면서 표면이 매끄럽게 나올때까지 6~7번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데요. 여기에 금칠까지 했기 때문에 보존능력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이죠.

스님들께서 지속적으로 수리·보존해온 점도 중요했어요. 방치돼 있던 불상이라면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해당 불상은 예배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스님들이 오랜시간 관리하고 보존에 힘써왔어요. 결국 향나무와 옻칠개금, 스님들의 보존 노력 덕분에 1200년 전 불상을 온전한 형태로 후손들이 볼 수 있게 됐습니다.

법보전 및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상은 ‘대비로전’에 함께 안치돼 있어요. 한쪽 어깨를 드러낸 옷차림이나 둥근 얼굴과 당당한 신체 표현, 몸을 자연스럽게 감싼 옷주름 등은 석굴암 불상을 연상시킬 정도로 조각의 완성도가 높습니다. 목조불상을 통해 석조불상에서 보이지 않는 신라시대 조각가들의 섬세한 솜씨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현재 통일신라시대의 목조불상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는 상태예요. 게다가 해인사 창건 시기와 가까운 시점에 조성됐다는 점에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습니다. 특히 당시 해인사의 화엄사상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녀요. 조성 당시부터 현재까지 해인사의 중요한 예배대상이기도 하죠.

해인사는 세조때부터 연산군까지 국사(國師)였던 학조대사가 1489~1490년 조선 왕실의 후원으로 중창했어요. ‘복장유물’은 불상을 만들 때 가슴 안쪽에 넣는 유물을 말하는데요. 해당 불상의 복장유물에는 고려 후기~조선 초기 이뤄진 불상의 수리 과정에서 추가로 납입된 서책이나 문서, 각종 직물이 포함돼 있죠. 1490년 납입한 복장유물은 조선 초기 왕실이 발원한 복장유물의 대표적인 사례로 왕실과 불교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복장유물은 조선시대부터 확인되는데 이렇게 복장유물이 많이 남아 있는 사례는 많지 않아요. 복장의례의식을 담은 ‘조상경’이 16세기에 간행됐는데, 그보다 앞선 복장유물의 시초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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