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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세일합니다" 증권가 한파에 술렁이는 여의도

김보겸 기자I 2022.11.11 05:45:00

케이프투자증권 법인영업부·리서치센터 폐지
감축 칼날 피한 옆동네도 "연봉 삭감 각오"
활황기 틈타 인력 늘린 IB 부서도 긴장
"그동안 벌어들인 돈이 얼만데" 불만도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증권가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선 지금이 광군제(光棍節)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광군제는 이달 1일부터 11일까지 열흘간 진행되는 중국 최대 할인 행사로, 미국 블랙 프라이데이와 함께 세계적인 쇼핑 행사로 통한다. “증권가 한파에 연구원부터 세일당하고 있지 않느냐”고 최근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한 증권사 연구원은 토로했다.

증시가 얼어붙은 데다 자금시장 경색이 동시에 몰아치면서 여의도 증권가가 술렁이고 있다. 부서 통폐합과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 우려가 고개를 드는 탓이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가장 먼저 타깃이 된 애널리스트 감축이 증권사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돈 못 버는 부서부터 IB까지…감축될라 ‘벌벌’

케이프투자증권은 지난 2일 법인 상대 영업부와 리서치사업부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조직 구조와 인력 효율화를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해당 본부 소속 임직원 약 30명은 전원 재계약이 불발됐다. 올 12월까지인 계약기간 종료 전까지 잔류를 희망하는 직원들은 유사 업무에 전환 배치할 예정이다.

올해 3월만 해도 법인영업 직원 채용 공고를 냈던 케이프투자증권이 급작스럽게 조직 폐쇄를 결정한 데에는 실적 악화로 인해 비매출 및 고정비용이 큰 부서부터 구조조정하겠다는 계획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케이프투자증권 관계자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기업금융(IB), 고유자산투자(PI) 사업 위주의 투자전문 회사로 나아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리서치센터가 없는 중소형 증권사들도 사업을 확장하는 와중 인력 유치 속도조절에 나서는 모습이다. 카카오페이증권은 지난 2020년 홀세일 부문에 애널리스트 2명을 두다가 올 하반기 리테일 사업 부문 애널리스트 1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카카오페이증권 측은 인력 충원 계획에 대해 “콘텐츠 전략에 맞춰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비교적 재정상태가 좋은 10대 증권사들의 애널리스트들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1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NH투자증권과 신한투자증권, 삼성증권 등 자기자본 기준 10대 증권사들의 애널리스트 수는 지난 2019년 610명에서 올해 458명으로 줄었다. 리서치센터가 주로 법인 영업 부서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데, 법인 영업 부서 수익 비중이 예전만 못하면서 ‘비용 부서’로 인식된 영향으로 보인다.

감축의 칼날이 미치지 않은 여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안심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리서치센터가 비용 부서이긴 하지만 필요한 인력이기 때문에 쉽사리 감축하지는 못할 것”이라면서도 “연봉 삭감은 이뤄질 것 같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도 “내년 성과급은 못 받는다는 의견이 많다”고 했다.

시장 활황기를 틈타 인력을 늘려 놓은 IB 부서도 감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작년에는 증권사들이 전단채를 발행해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투자해 수익을 내 왔는데 지금은 전단채 자체가 거래가 안 되고 있다”며 “IB 본부의 내년 수익이 암울할 전망이라 감축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증권사들이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는 부동산 PF에 공격적으로 뛰어들었지만 대외환경 악화로 미분양이 급증하면서 위기에 봉착했다는 지적이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의 경우, 최근 리서치센터 인력 전원에 대한 재계약은 마쳤지만 IB 본부에 대해서는 일부 폐지설이 거론되기도 했다. 이베스트투자증권 측은 “지난 6월부터 조직개편을 고려 중”이라면서도 인력 감축이나 부서 폐쇄 등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다올투자증권도 지난 9일 채권구조화팀 6명에게 계약 만료 뒤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하는 등 인력 감축에 나섰다. 채권 관련 손실이 커지면서 팀 한 군데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다.

비용 부서로 통하는 리서치센터와 내년 수익성 악화가 예상되는 IB 부서에 이어 고액 연봉자들을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을 실시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대형 증권사에서조차 대책회의 때 감원 필요성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이 안 좋으니 증권사별로 희망퇴직안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며 “경력 채용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성과급 잔치 얼마나 됐다고”…증시불황 핑계로 감축 불만

다만 ‘비상경영’을 앞세운 증권사들의 감축 시동에 곱지 않은 시선도 쏟아진다. 작년 주식투자 열풍으로 역대급 성과급 잔치를 벌인 지 몇 달 만에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서는 건 증시 불안을 인력 감축 핑계로 삼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그동안 벌어들인 돈이 있는데, 이때다 싶어 감원에 나서는 듯한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며 “이제 와서 시장 상황이 안 좋다는 건 핑계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증권사 유동성 문제가 크게 악화되지 않았지만 이를 핑계로 인건비 줄이기에 나설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2022년 6월말 기준 유동성 비율은 125%로, 감독당국의 권고 기준인 100%를 넘는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현금을 쌓아 두고는 있지만, 매출이 안 나온다는 이유로 지금 구조조정을 해야 할 때라고 판단할 수 있다”고 짚었다.

관리직 비중이 큰 역피라미드 구조를 띠는 증권사들이 증시 불황을 명분삼아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리서치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은 10년 만에 찾아온 희망퇴직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몇 년치 임금을 주면서 ‘시장이 어려운데 이거라도 챙겨줄 때 나가라, 고생했다’며 인력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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