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의 발길을 돌리게 했던 집은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현대아파트.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제공하는 부동산 매물 현황을 보면 지난 8월 초만 해도 김씨가 점찍어뒀던 전용면적 84㎡ 전셋값은 2억3000만원이었다. 현지 중개업소 확인을 거쳐 올라온 시세였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현재 이 아파트 전세시세는 2억7000만원에 맞춰져 있다. 한 달여 만에 전셋값이 4000만원가량 뛴 것이다. 단지 내 N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정부가 8·28 전월세 대책을 꺼내들었지만 가을 이사철을 맞아 전세 수요가 몰리면서 전셋값이 대책 이전 때보다 더 뛰었다”며 “전셋값이 많이 올랐지만 정작 집을 사려는 사람은 드물다”고 말했다.
◇ “전세 대책 약발 안 먹혀”
매년 이사철마다 반복되는 전세난을 막기 위해 정부가 8·28 전월세 대책을 내놨지만 서울·수도권 전셋값 상승세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대책 발표 한달 새 전셋값이 수천만원씩 뛴 지역도 적지 않다. 특히 빌라·다세대주택에도 전세 수요가 몰리면서 아파트에서 시작된 전세난이 다른 주택 유형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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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현상은 전세물량이 많고 상대적으로 전셋값이 저렴한 서울 노원·양천·강서·동작구 등지에서 두드러진다. 노원구 상계동 미도아파트 전용 87㎡는 현재 2억5000만원에 전세로 나와 있다. 8월 초만 해도 2억원에 거래됐는데, 한 달 새 5000만원 뛴 것이다. 인근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세 물건이 부족한 상황에서 대기자가 많다보니 오른 가격에 전세 거래가 되고 그 가격이 다시 시세로 굳어지고 있다”며 “수요와 공급 불균형에 따른 전셋값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가을 이사철만 되면 학군 수요까지 가세해 극심한 전세난이 벌어지는 서울 목동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55㎡형)의 경우 최근 한 달 새 평균 3000만원가량 전셋값이 올랐다.
인근 U공인중개업소 대표는 “목동 전체 아파트 가구 수가 2030가구 가량 되는데 이 중 대책 발표 후 거래가 이뤄진 건 많아야 5~6가구에 불과할 것”이라며 “대부분 외부 학군 수요로 전셋값 때문에 집을 산 경우는 드물다”고 귀띔했다.
◇ 연립·다세대주택도 전세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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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전세난이 당장 사그라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1.5% 주택 모기지 상품 역시 대상이 3000가구로 제한적인 데다 해당 지역도 서울·수도권은 물론 광역시까지 포함하고 있어 수도권 전세난을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세기 한국감정원 부동산분석부장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9월 들어 가파르게 뛰고 있는 점이 우려스럽다”며 “정부의 주택시장 활성화 대책으로 주택 거래가 늘기는 하겠지만 전세시장은 연말까지 수급 불균형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매매 수요로 돌리기 쉽지 않아
집값 상승 기대감이 확산되지 않는 한 전세 수요를 매매 수요로 돌아서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부동산114 임병철 리서치팀장은 “정부가 대책 때 발표한 취득세 영구인하 조치 등이 여전히 국회에 걸려 있어 수요자들이 섣불리 내집 마련에 나서려하지 않는다”며 “당분간 전세 선호 현상이 짙어지면서 전셋값 상승세가 지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