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호의 그림&스토리]<19>오래 볼수록 '묘'하다 네가 그러하다

오현주 기자I 2021.06.18 03:30:00

▲고양이를 사랑한 조선시대 화가들
변상벽 '묘작도'와 마군후 '반묘가수'
영모화 중 특히 '고양이그림'에 탁월
오래 면밀히 관찰하고 정성으로 묘사
정교한 외형에 습성·감정까지 담아내

변상벽의 ‘묘작도-고양이와 참새’. 기둥처럼 세운 고목을 중심으로 두 마리의 고양이와 여섯 마리의 참새를 그렸다. 특히 고양이의 생태와 심리를 완벽하게 파악한 듯한 자연스러운 자세, 갈색·흰색이 대조를 이루는 터럭 한 올 한 올 등, 정밀하고 꼼꼼하게 그려내는 묘사력이 당대 최고란 평가를 받았다. 정확한 제작연도 없이 18세기 작품으로만 전한다. 비단에 담채, 93.7×43.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혹독한 세상살이에 그림이 무슨 대수냐고 했습니다. 쫓기는 일상에 미술이 무슨 소용이냐고 했습니다. 옛 그림이고 한국미술이라면 더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는 일을 돌아보면 말입니다. 치열하지 않은 순간이 어디 있었고, 위태롭지 않은 시대가 어디 있었습니까. 한국미술은 그 척박한 세월을 함께 견뎌온 지혜였고 부단히 곧추세운 용기였습니다. 옛 그림으로 세태를 읽고 나를 세우는 법을 일러주는 손태호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조선부터 근현대까지 시공을 넘나들며, 시대와 호흡한 삶, 역사와 소통한 현장에서 풀어낼 ‘한국미술로 엿보는 세상이야기’ ‘한국미술로 비추는 사람이야기’입니다. 때론 따뜻한 위로로 때론 따가운 죽비로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손태호 미술평론가] 최근 코로나19로 ‘집콕’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도 점점 늘어나는 모양입니다. 가구수로는 600만, 인원수로는 1500만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주변을 살펴봐도 확실히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많어졌고 가구당 반려동물의 수도 늘어났습니다. 반려동물의 종류로는 반려견이 반려묘에 비해 3배가량 많아 압도적인 1위지만 반려묘의 수도 예전에 비해 증가추세라고 합니다. 고양이는 가정에서 지내는 고양이뿐 아니라 길고양이도 많기에 실제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에게 사랑을 받는 고양이는 현대만이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많았는데요. 그래선지 회화 작품에서도 고양이는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했습니다. 조선시대에 그린 고양이 그림을 ‘묘도’(猫圖)라고 합니다. 조선의 많은 묘도 중 가장 먼저 꼽는 작품이 있습니다. 조선후기의 도화서 화가로 활동한 화재 변상벽(1730∼1775)이 그린 ‘묘작도(猫雀圖)-고양이와 참새’입니다.

그림부터 한 번 살펴볼까요. 고목 한 그루에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올라 타 있습니다. 나무는 진한 먹으로 테두리를 그린 뒤 가운데로 갈수록 엷은 먹을 사용했고 껍질의 뒤틀림까지 표현했는데, 그 모양으로 보아 향나무로 생각됩니다. 깊게 파인 둥치와 부러진 가지, 엷은 잎 등을 적절히 구사해 자연스럽게 표현했습니다. 그 나무 아래 앞발을 세우고 연녹색 풀밭에 앉은 어미 고양이가 고개를 돌려 나무 위 고양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목을 한껏 돌리고 꼬리는 움츠려 마치 나무 위고양이를 걱정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변상벽은 영모화(翎毛畵)의 대표작가인데, 그중 고양이를 잘 그렸습니다. 특히 어미와 새끼들 간의 따스함을 즐겨 표현했습니다. 거기에 비춰보면 ‘묘작도’ 역시 어미 고양이를 염두에 둔 그림일지 모릅니다.

특별한 것은 나무 위에 앉은 참새 여섯 마리입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고양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게 지저귀고 있습니다. 특히 나무몸통에 몸을 숨기고 얼굴만 삐죽이 내민 참새의 표현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은 고양이를 정성스럽게 묘사한 것입니다. 흰 털과 검은 털이 만나는 부분을 확대해보면 얼마나 섬세하게 묘사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양이 귀 안쪽 실핏줄, 발톱, 표정, 자세까지 오랫동안 고양이를 관찰하지 않고서는 그릴 수 없을 정교함이 돋보입니다.

고양이 ‘묘’와 늙은이 ‘모’ 발음 닮아 장수 의미하기도

고양이는 살쾡이를 붙잡아 길들인 짐승으로 인류와 처음 함께한 때는 약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집트에서 곡식창고에 모여드는 쥐를 잡기 위해 길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아라비아 무역상들이 긴 항해를 위해 배에서 길렀고 무역항로를 통해 유럽과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 무덤에서 고양이 유골이 발견됐고 조선 성종 때 편찬한 시문선집 ‘동문선’(東文選·1478)에는 사람들이 개와 고양이를 가까이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궁궐에서도 고양이를 길렀습니다. 쥐를 퇴치하고 질병과 귀신을 물리치는 동물로 고양이를 들였던 것입니다.


변상벽이 그린 ‘묘작도-고양이와 참새’의 부분. 나무에 매달려 있는 고양이(왼쪽)와 그를 올려다 보는 고양이를 클로즈업했다. 생생한 표정, 리얼한 동작, 터럭 한 올까지 정밀하고 세밀하게 그려낸 묘사가 돋보인다.
중국에서는 고양이 ‘묘’와 70세 노인을 지칭하는 ‘모’의 중국어 발음이 같아 장수를 의미하는 그림으로 많이 제작했습니다. 이런 인식은 이후 조선에도 전해져 이때 고양이 그림은 대부분 장수를 축원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나아가 고양이 그림에 참새가 등장하기도 했는데요. 이유는 참새 작(雀)과 까치 작(鵲), 벼슬 작(爵)이 모두 음이 동일해 장원급제 같은 출세의 기쁜 소식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양이와 참새를 같이 그린 그림을 ‘묘작도’라 따로 불렀고 그 대표작이 변상벽의 그림인 것입니다.

‘고양이 덕후 화가’ 변상벽의 뛰어난 기량에 대한 기록은 여럿 남아 있습니다. “변상벽은 변고양(卞古羊)이라고 부르듯 고양이 그림으로 유명하네. … 그가 고양이를 그렸을 때 쥐들도 마찬가지였을까. 뛰어난 솜씨가 그런 경지에 이르니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네. 못된 화가들이 산수를 그리면서 거친 필치만 보여주지”(정약용 ‘여유당전서’ 중). “화재는 고양이를 잘 그려서 별명이 변고양이였으며 초상화 솜씨가 대단해서 당대의 ‘국수’라고 일컬었는데 그가 그린 초상화는 백(百)을 넘게 헤아린다”(장지연 ‘진휘속고’ 중).

18세기 조선 숙종·영조 때 화원으로 활동한 변상벽은, 영조 때는 두 차례나 어진을 그리는 영광을 얻어 관직이 현감에까지 올랐습니다. 그의 묘도는 후배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뛰어난 묘도가 여러 점 그려졌는데요, 그중 양촌 마군후(출생·사망 미상)의 ‘반묘가수’(班猫假睡)를 눈여겨볼 만합니다.

화면의 절반은 발문이고 그림은 고양이 한 마리가 전부입니다. 고양이는 꼬리를 말고 앞발을 굽힌 채 웅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예리하게 치켜뜬 눈은 날카롭게 보이지만 얼굴을 발에 대고 작게 뜨고 있어 ‘반묘가수’(얼룩고양이의 풋잠)답게 잠에서 막 깨었거나 졸음이 채 가시지 않은 눈입니다. 입가의 수염과 털은 역시 정밀하게 묘사했고, 귀와 꼬리 끝은 진한 먹으로, 코끝은 엷은 붉은색으로 포인트를 줘 생동감이 넘칩니다. 특히 줄무늬 사이 흰털을 자세히 보면 가는 붓으로 검은 털을 적절히 섞어놓아 실제 고양이의 털을 완벽하게 구현했습니다. 이런 정밀한 묘사는 역시 변상벽의 영향일 것입니다. 현실감 넘치는 그림과 달리 발문은 조금 추상적이고 철학적입니다.

마군후의 ‘반묘가수’(18세기). ‘얼룩고양이의 풋잠’(혹은 졸음)이란 뜻이다. 작가는 개성이 뚜렷하고 정밀한 고양이 그림 덕에 변상벽의 영모화를 잇는 화가로 이름을 올렸다. 그럼에도 18∼19세기 조선 정조·순조 때에 활동한 작가라는 것 외에 출생·사망시기부터 행적까지 알려진 게 없다. 종이에 채색, 14.5×24.6㎝, 간송미술관 소장.
고양이를 의인화한 ‘오원전’ 이아기 담은 ‘반묘가수’

“가죽 털은 얼룩지고 발톱과 이빨은 굳센데 번쩍이는 생선이 있어 먹고 모전에 누워 있네./ 바다의 손님들은 몹시 어두운 걸 능히 아는데 배 주인은 가축 오원(고양이)을 사랑했네./ 간 비녀와 만든 띠는 같은 물건이 아닌데 잡은 쥐를 물고 나니 이것이 홀로 향기롭네./ 늙은 고양이가 옥 같은 얼굴이라 뽐내며 웃지 마라. 마침내 가마솥을 만나 잔칫상에 오르리./ 미산노인이 적는다.”

사랑스러운 고양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글입니다. 고양이가 쥐를 잡는 재주로 사랑을 받았으나 결국 인간에게 잡아먹힌다는 무서운 내용입니다. 중간에 ‘오원’이란 표현 덕분에 18세기 유본학의 소설 ‘오원전’의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원전’은 고양이를 의인화한 오원이란 신하를 주인공으로 약삭빠르고 시류를 잘 타는 조정관료들의 기회주의 행태를 비판한 풍자소설입니다. 끝에 적은 ‘미산노인’은 마성린(1727∼1798)을 말하는데, 해서와 초서에 능해 여러 점의 글씨와 현판을 남긴 문인입니다.

마군후의 생애와 행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1851년 작품으로 추정하는 ‘촌녀채종도’(村女採種圖·나물 캐는 여인)를 비롯한 인물화와 몇몇 영모화가 남아 있어 그의 예리한 필치와 뛰어난 묘사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고양이 그림’들을 통해 우리는 당시 사람들이 고양이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장수를 상징하거나 교만함을 경계하는 의미로, 현대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식의 차이와 상관없이 화가들은 고양이를 아주 좋아해 오랜 시간을 들인 관찰로 수준 높은 고양이 작품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변상벽은 어느 날 집 주변에서 자주 눈에 띄던 고양이에 매료돼 그때부터 매일 관찰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고양이를 그렸다고 했습니다. 그 덕분에 겉으로 드러난 모습뿐 아니라 고양이의 습성과 감정·내면까지도 묘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늘 바라본다는 것은 잘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생을 함께한다는 뜻의 ‘반려’는 그 대상을 올바로 알아보는 것이 시작이자 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변상벽의 영모화

변상벽의 작품세계는 둘로 나뉜다. 사람의 초상을 그린 ‘인물화’와 동물의 초상을 그린 ‘영모화’다. 즐겨 그린 정도가 아니라 출중했다. 묘사에 관해선 빈틈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세밀하고 꼼꼼했는데 일상 속 면밀한 관찰을 기본으로 삼았던 덕이다. 작은 새나 작은 동물을 소재로 깃·털을 부드럽고 꼼꼼하게 그리는 영모화에서 뛰어났던 사실성은 결과적으로 그의 인물화 기량과 관련이 있다. 도화서 화원으로서 그가 특기를 발휘한 분야가 초상화였던 것이다. 영조의 어진 두 점(1763·1773)을 비롯해 당대 명현들의 초상화 100여점을 그렸는데. 바로 그 얼굴·수염 등을 그린 데 사용한 공필을 그대로 영모의 터럭 묘사에 가져와 고양이·닭 등을 실물과 똑같은 모습으로 재현했던 거다. ‘변고양’ ‘변묘’ 혹은 ‘변계’란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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