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호의 그림&스토리]<11>海보지 않고 어찌 알리오

오현주 기자I 2021.04.23 03:30:00

▲장한종 '어해도'로 본 실사구시 정신
조선 어해도 대가 장한종은 사실적 물속 묘사
정약전은 유배지서 어류도감 '자산어보' 집필
고답·관념적 성리학 탈피한 사물·사람에 애정
오랜 관찰과 관심이 실사구시의 뿌리 만들어

조선 ‘어해도’ 분야에서 일인자로 꼽히는 장한종이 그린 ‘물고기’(연도미상). 복사꽃 떨어진 맑은 물속에서 율동미를 뽐내는 ‘쏘가리’를 포착했다. 글공부에 매진하고 입신출세해 ‘부귀유여’를 바라는 길상화로 그렸지만, 맑은 푸른톤의 산뜻한 색감 덕에 감상화로서도 손색이 없다. 종이에 수묵담채, 25.6×29.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혹독한 세상살이에 그림이 무슨 대수냐고 했습니다. 쫓기는 일상에 미술이 무슨 소용이냐고 했습니다. 옛 그림이고 한국미술이라면 더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는 일을 돌아보면 말입니다. 치열하지 않은 순간이 어디 있었고, 위태롭지 않은 시대가 어디 있었습니까. 한국미술은 그 척박한 세월을 함께 견뎌온 지혜였고 부단히 곧추세운 용기였습니다. 옛 그림으로 세태를 읽고 나를 세우는 법을 일러주는 손태호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조선부터 근현대까지 시공을 넘나들며, 시대와 호흡한 삶, 역사와 소통한 현장에서 풀어낼 ‘한국미술로 엿보는 세상이야기’ ‘한국미술로 비추는 사람이야기’입니다. 때론 따뜻한 위로로 때론 따가운 죽비로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손태호 미술평론가] 며칠 전 코로나19 유행 이후 처음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제목은 ‘자산어보’(玆山魚譜). 평소 다산 정약용(1762∼1836)과 그 형제들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영화는 반갑기까지 했습니다. 정약용을 제외하곤 그의 형들이 역사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한 점은 늘 안타까웠고요. 영화는 정약용 형제 중 큰형인 정약전이 주인공입니다.

정약용은 아버지 정재원과 어머니 윤씨 부인 사이 3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삼형제 모두 어릴 적부터 글공부에 뛰어난 천재들이었습니다. 정조 사후 신유년 천주교 박해로 둘째 형 정약종은 순교했고 정조가 아끼던 정약전과 정약용은 간신히 목숨만 건져 형은 흑산도, 동생은 강진으로 유배를 떠납니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유배생활하면서 그곳 청년어부 창대와 주민들의 도움으로 집필한 조선시대판 해양생물백과사전입니다. 실제로 ‘자산어보’는 흑산도 근해에 서식하는 어류·해조류 등 거의 모든 해양생물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약전이 원래 ‘자산어보’를 완성하기 전 구상한 책은 그림을 포함한 ‘해족도설’(海族圖說)이었으나 이 소식을 들은 정약용이 문자 우위 시대 환경에 맞게 그림을 삽입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아마도 당대 유학자들에게 정약전이 쓸데없는 책을 썼다는 비아냥을 들을까 우려했던 모양입니다. 결국 최종 완성한 책은 그림이 사라지고 글로만 정리된 ‘자산어보’입니다. 만약 그림까지 삽입했다면 진정한 해양생물도감으로 인정받았을 텐데 조금 아쉬운 부분입니다. 아마 이는 조선시대 화가들이 실용적인 목적이 아닌 감상용으로 물고기나 게 등 수중생물을 그린 ‘어해도’를 많이 남겼던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겁니다. 말이 나온 김에, 아쉬움도 달랠 겸, 그중 조선후기 화원 옥산 장한종(1768∼1815)이 그린 ‘물고기’를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자산어보’에서 그림이 빠진 까닭은…

수초 사이로 세 마리의 물고기가 아래 사선 방향으로 헤엄치는 모습이 보입니다. 위로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한 마리가 몸을 꺾으며 방향을 바꾸고 있습니다. 엷은 파란색으로 물속을 표현했는데 수초와 맨 아래 물고기는 흐리게 묘사해 같은 수중에서도 깊이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에는 복사꽃이 떨어져 있어 분홍빛과 푸른물이 어울리며 맑고 산뜻한 분위기를 냅니다. 일반적으로 물고기는 많은 알을 낳기에 다산을 상징하고 어(魚)는 넉넉하다는 의미의 여(餘)와 중국어 발음이 같아 여유와 풍요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작품 속 물고기의 어종은 무엇일까요. 모양과 형태로 볼 때 ‘쏘가리’입니다. 조선의 물고기 그림은 어종에 따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쏘가리는 한자어로 ‘궐어’인데 여기서 궐이 궁궐의 궐과 발음이 같아 대궐에 입성해 관리로 출세하는 입신양명의 뜻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조석진·이한복·허련 등 조선후기 화가들은 쏘가리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백과사전인 이수광(1563∼1628)의 ‘지봉유설’(芝峰類說·1614)에는 궐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쏘가리는 곧 지금의 금린어(錦鱗魚)다. … 이는 천자가 좋아하는 것이어서 천자어라고 불리기도 한다. 상고하건대 ‘궐’은 ‘괘’다. 세상에서 이를 입성으로 읽어 ‘궐’이라 하는 것은 잘못이다”(‘지봉유설’ 중).

이수광은 쏘가리의 궐이 원래는 ‘괘’인데 우리나라에 궐로 잘못 전해졌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쏘가리 그림이 입신출세의 상징으로 그려진 것은 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해석입니다. 또 물고기 그림이 유독 세 마리를 그린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삼여도’의 의미로 세 가지의 여유만 있으면 글공부하는 데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그 세 가지 여유는 ‘하루의 남는 시간인 밤’ ‘일년의 남는 시간인 겨울’ ‘맑은 날의 나머지 시간인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을 의미합니다. 결국 장한종의 ‘물고기’는 삼여를 잘 활용한 것으로, 글공부에 매진하고 입신출세해 부귀유여를 바라는 길상화인 것입니다. 많은 화가들이 그린 전형적인 작품입니다. 다만 장한종은 복사꽃을 함께 그려 당나라 시인 장지화의 ‘어가자’(漁歌子)의 글귀인 ‘도화유수궐어비’(복숭아꽃 흐르는 물에 쏘가리가 살찐다)를 연상케 해 그림의 운치를 더했습니다.

끊임없는 관찰로 도달한 조선 ‘어해도 일인자’

안동 장씨 화원 집안 출신인 장한종은 1795년(정조 19년) ‘원행을묘정리의궤’ 등 많은 의궤에 참여한 뛰어난 도화서 화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해도의 독보적인 길을 개척한, 조선 제일의 ‘어해도 화가’란 칭송을 들었습니다. 전통적인 어해도 화풍을 계승해 길상화뿐 아니라 소라, 조개, 자라, 게, 가오리 등 다양한 수중생물을 잘 그렸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오리 그림은 오직 장한종만이 그려 조선시대 ‘어해도’를 더욱 풍성하게 했습니다.

장한종의 ‘게와 가오리’(연도미상). 바다생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엮은 8폭의 ‘어개화첩’ 중 둘째 면에 실었다. 장한종만이 그렸다는 ‘가오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비단에 채색, 24.6×3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장한종의 다른 작품 한 점을 더 볼까요. 여러 바다생물을 그린 8폭 ‘어개화첩’ 중 둘째 면에 수록한 ‘게와 가오리’입니다. 사선의 대각선으로 나눈 화면의 아래에는 게가 바닥을 기고 있고, 위에는 가오리가 헤엄치고 있습니다. 게(蟹)는 딱딱한 등껍질[甲]을 가지고 있기에 과거에서 갑과로 합격하는 장원급제의 ‘갑’으로 읽힙니다. 이 그림 속 게는 우리가 일명 ‘꽃게’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림처럼 등딱지 양쪽으로 뿔처럼 나온 것이 꼬챙이 같다고 해서 ‘관해’(串蟹)라고 부르는데 ‘관’은 바다로 삐죽 나온 지형을 뜻하는 ‘곶’으로 ‘관해’를 우리나라 말로 하면 ‘곶게’가 됩니다. 이 ‘곶게’가 변형돼 우리가 현재 쓰는 말인 ‘꽃게’가 된 것입니다.

가오리는 생김새가 홍어와 비슷하지만 또 다릅니다. 홍어의 몸통은 마름모 형태의 꼭짓점이 분명하고 가오리는 전반적으로 둥근 형태를 가졌습니다. 그림 속 물고기는 홍어가 아니라 가오리가 분명합니다. 배 쪽으로 입이 있고 눈처럼 보이는 두 구멍은 코입니다. 눈은 반대쪽 등에 따로 있습니다.

꽃게가 갑자기 가오리와 마주쳐 놀랐는지 눈이 튀어나오고 집게발까지 쳐들었습니다. 가오리도 게를 보고 당황했는지 몸과 꼬리를 부르르 떨고 있습니다. 장한종은 게와 가오리 둘 다 사실적으로 정확하게 묘사했습니다. 이런 세밀한 묘사는 오랫동안 수중생물을 관찰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조선후기 학자 유재건(1793∼1880)이 쓴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은 장한종에 대해 이렇게 전합니다. “젊어서부터 숭어, 잉어, 게, 자라 등속을 사다가 비늘과 껍질을 자세히 살펴보고 따라 그렸다. 완성될 때마다 그림이 사물과 닮았음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외국풍습과 물정 담은 ‘표해시말’

혹독한 유배생활에서 나온 실용서 ‘자산어보’는 고답적이고 관념적인 성리학에만 매달려온 정약전 자신을 포함한 조선 유학자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입니다. 정약전은 ‘표해시말’(漂海始末)이란 글도 남겼는데, 소흑산도 홍어장수 문순득이 바다에서 태풍을 만나 유구국(오키나와), 필리핀, 마카오, 광저우, 베이징 등 세계 여러 곳을 거쳐 다시 흑산도로 돌아온 표류기입니다. 정약전은 이런 외국 풍습과 물정에 대한 정보를 중요하게 생각해 문순득을 직접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표해시말’을 남겼습니다. 덕분에 오늘날 당시 그 지역에 대한 정보와 조선인들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정약전을 비롯한 실학자들의 이런 실사구시가 당시 조선의 주류였다면, 19세기 제국주의가 부상하는 세계 동향을 좀 더 빨리 알아챌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치욕스러운 일제강점기도 겪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깨어 있는 지성은 퇴색하지 않는 법이라 했습니다. 지식인과 관료라면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하며 새로운 물결에 민감하고 개방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시대에 분노하고 권력을 비판하는 지식인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기대, 세상에 대한 낙관이 빠져 있다면 분노는 쓸모가 없습니다. 정약전이 창대와 문순득을 넉넉한 애정으로 대하고, 장현종이 오랜 관찰과 관심으로 물고기를 대했듯이 말입니다. 실사구시는 바로 내 앞의 대상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했던 것입니다.

※ 자산어보 玆山魚譜

정약전이 16년 귀양살이 중에 집필한 방대한 ‘어류학서’다. 전라 흑산도 근해를 헤집고 다니며 수산동식물 155종에 대한 명칭·분포·형태·습성 등을 낱낱이 파악하고 기록한 뒤 ‘자산어보’란 제목을 붙였다. 완성을 본 건 1814년(순조 14년)이다. ‘자산’은 ‘흑산’의 다른 말이다. 가족에게 편지를 보낼 때마다 음침하고 어두운 ‘흑’산이란 표현 대신 쓴 자산을 제명에 사용했다고 서두에 밝히고 있다. “섬사람을 널리 심방하다가 초목과 조어를 이목에 접하는 대로 모두 세찰하고 침사해 그 성리를 터득한 장덕순(일명 창대)의 말이 믿을 만해 그를 맞아들여 연구하고 서차를 강구해 책을 완성했다”는 내용도 써뒀다. 24.8×17.7㎝의 크기에 매면 10행, 1행 21자로 된 3권을 묶어 1책으로 만들었다. 1권은 석수어·치어·노어·청어 등의 ‘인류’, 2권은 분어·해점어·돈어·오적어·장어 등의 ‘무린류’와 해구·해·복·합·감 등의 ‘개류’, 3권은 해충·해금·해수·해초 등의 ‘잡류’로 구성했다. 후대에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은 청어와 고등어의 회유·분포에 관한 기록이다. 현재 동해와 서해에 회유하는 청어·고등어의 실태를 당시와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로 꼽힌다. 필사본이 여러 곳에 소장돼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서울대·고려대·영남대 도서관, 서울대 상백문고 등. 다만 완사본은 하나도 없다. 1943년 여러 사본을 대조·보충해 새로 편성한 뒤 한글본을 만들었다.

△손태호 미술평론가는…

30대 중반 도망치고 싶던 때가 있었다. 세상살이가 버겁고 고달파서. 막막하던 그 시절, 늘 그렇듯 삶의 퍼즐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풀렸다. 그즈음 눈에 띈 옛 그림이 우연이었고 그 흔적을 좇아 미술관·고서화점 등을 누비고 다닌 게 필연이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찍힌 인장 ‘장무상망’(長毋相忘·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을 보고 어째서 ‘그림이 삶, 삶이 그림’이라 하는지 깨달았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도의 길은 그날로 접혔다. 동국대 대학원 미술학과로 진학해 석·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미술 전문가가 됐다. 조선회화·불교미술에 기둥을 세우고 그 안에 스민 상징 같은 ‘옛 그림’은 거울로 곁에 뒀다. 지금은 한국문화예술조형연구소 학술이사로 있으면서 이론·현장을 연결한 연구, 인물·지리·역사를 융합한 글과 강연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불상의 탄생’(한국학술정보·2020), ‘다시 활시위를 당기다’(아트북스·2017), ‘나를 세우는 옛 그림’(아트북스·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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