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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 덕 칼럼]'굴뚝산업'이 가라앉고있다

남궁 덕 기자I 2014.08.29 06:00:00
[남궁 덕 칼럼]지난 여름 휴가때 울산과 함께 ‘블루컬라 특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거제도를 다녀왔다. 거제는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2, 3위 조선사가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다. 작년 기준 섬주민 1인당 국민소득이 4만1100달러다. 한국인 전체 평균소득의 2배 가까이 되는 셈이다. 10년새 두배로 늘어난 섬 인구 24만명 가운데 상당수가 두 회사와 관련있을 터. 거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때 왜선 26척을 격침한 옥포해전의 승전지인 데다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포로수용소,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생가 등이 있는 곳이지만, 지금와선 두 조선소를 빼놓곤 얘기가 안된다.‘거제=블루컬러 특구’는 두회사가 세계를 누비면서 많은 돈을 벌어들일 때 성립하는 방정식이다.

이 방정식이 잘 풀리지 않고 있다. 욱일승천하고 있는 중국 조선소들이 변수가 된 탓이다. 해운·조선 분석업체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수정환산톤수(CGT)를 기준으로 올 상반기 중국은 909만CGT(481척)를 수주했다. 중국의 시장점유율도 전년 동기의 39.9%에서 44.4%로 올랐다. 반면 한국 조선소는 상반기에 555만CGT(164척)를 수주, 작년 787만CGT(230척) 대비 29.5%나 줄어들었다. 한국 조선은 수주시장 점유율도 31.8%에서 27.1%로 감소했다. 세계 최대 울산조선소를 갖고 있는 1위 현대중공업마저 지난 2분기 창사이래 최악인 1조1037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실적악화는 주가 하락으로, 직원들의 성과급 인하라는 악순환 고리로 이어지고 있다. ‘기업도시’의 분위기도 예전같지 않다. 거제에서 만난 한 조선소 직원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저가 수주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며 “예전과 같은 호황은 기대하기 힘든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한국을 신흥 경제강국으로 키운 뿌리인 중화학공업이 성장 정체의 덫에 빠졌다. 조선은 물론 철강 화학에다 연관 산업인 해운까지 활력을 잃고 있다. 일부에선 ‘굴뚝산업의 몰락’이라고 지적한다. 원인은 다 안다. 후발국의 추격에 따른 경쟁격화. 문제는 대책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그럴까.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1등 자리에 안주해 위기파고가 몰려오는데도 이를 가볍게 여긴 점이 없지 않다”며 “제조업 부활의 시발점은 정주영 이병철 박태준 같은 1세대 창업자의 상상력과 리더십”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선 지난 달 구글로 자리를 옮긴 앨런 멀럴리 전 포드 최고경영자(CEO)를 ‘제조업 업그레이드 전도사’로 부르고 있다. 보잉 출신인 멀럴리는 포드에서 8년간 CEO로 근무하면서 미국 자동차 ‘빅3’ 가운데 유일하게 정부 구제금융을 받지 않고 경영을 정상화시켰다. 그가 포드를 재건시키는데 쓴 비법은 기술제일주의, 솔선수범,자국 소비자 으뜸주의 등이라고 미국 언론은 분석한다. 비법이 아니라 기본에 가깝지만.

이중 솔선수범 리더십. 멀럴리는 2008년 경제 위기가 발발하자 각종 급여를 자발적으로 삭감했다. 경영이 악화돼 정부 지원을 받게되면 자신의 임금을 1달러로 줄이겠다고도 서약했다. 수십 대에 달하던 임원용 비행기를 한 대만 남기고 매각했다. 이런 조치를 통해 직원들에게 구조조정의 당위성을 설득할 수 있었다.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충무공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한국이 제조업을 버리지 않을 거라면 독하게 혁신해야 한다. “좋은 시절이 다시 오겠지”라고 지금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면 때를 놓칠 공산이 크다. 정부도 독하게 혁신하는 기업엔 세금 감면과 인프라 지원 등 강력한 인센티브로 화답해야 한다. 수려한 자연경관의 거제도가 진짜 아름다운 건 바다를 낀 야드에서 웅장한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안다면 말이다. <총괄부국장 겸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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