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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얻으려면 조상묘도 판다”…집권여당의 가벼운 품격[국회기자 24시]

김기덕 기자I 2023.04.08 06:10:00

김기현號 출범 한달만에 위기 봉착
최고위원 잇단 실언에 민심 싸늘해
당 소속 김진태·김영환지사도 일탈
총선 패배 우려…소통·공감능력 키워야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딱 한 달 전인 지난달 8일. 국민의힘 지도부가 선출되면서 집권여당은 8개월 만에 정상궤도에 오르게 됐습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중징계 사태로 윤석열 정부 집권 초반 여당 지도부가 붕괴할 위기에 처했지만, 김기현호(號)가 출항하면서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정확히 한 달 뒤 김기현 지도부는 항로를 이탈해 좌충우돌하고 있습니다. 집권 초기 지지율이 급등하는 컨벤션 효과는 고사하고 당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표를 얻으려면 조상묘도 파는 게 정치인이다.” 앞선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후보 중 최다 표를 얻어 당선된 김재원 수석 최고위원의 발언입니다. 지난 12일 사랑제일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 극우 성향인 전 목사가 헌법 전문에 광주 5·18 정신을 수록하겠다는 김 대표의 발언을 문제 삼자 이에 동의하며 한 말인데요. 5·18 민주화 운동은 군부 정권 시절 벌어진 가슴 아픈 역사이자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헌법에 수록하겠다고 언급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역풍은 더욱 거셌습니다.

헛발질은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김 최고위원은 윤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제주 4·3 사건에 대해 ‘다른 기념일(3·1절, 광복절) 보다 격이 낮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앞서 태영호 최고위원이 “제주 4·3 사건은 북한 김일성 지시로 촉발했다”는 발언으로 민심이 들끓는 상황에서 또다시 기름을 부었다는 평가인데요. 연이은 실언으로 논란이 일자 김 최고위원이 한 달 간 최고위원회의를 비롯해 모든 공식 일정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그 충격 여파는 아직 가시지 않은 상황입니다.

여당은 여론 환기를 위해 민생에 집중했습니다. 그 와중에 당 민생특별위원회 수장을 맡은 조수진 민생 119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인 양곡관리법 개정안(초과 생상된 쌀을 정부에서 의무 매입)의 대안격으로 ‘밥 한 공기 다 비우기’ 캠페인을 한 라디오에서 언급했습니다. 남은 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밥 한 공기를 다 먹으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물론 회의 과정에서 나온 여러 아이디어 중 하나였으며, 아직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해법이나 본질에서 동떨어진 발언이라는 점에서 그 후폭풍은 상당했습니다.

이에 앞서 민생119 특위 첫 회의에서도 위원들은 고물가에 시름하는 서민들의 아픔을 공감한다는 측면에서 데우지도 않은 편의점도시락으로 오찬을 했습니다. 다만 편의점도시락을 개인 선호에 따라 선택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한 끼를 때우기 위한 편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생색내기용, 즉 보여주기식이란 비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지난 3일 오전 서울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민생특별위원회인 민생119 제1차 회의장에 편의점 도시락이 놓여져 있다. 이날 민생119 위원들은 편의점 도시락 오찬을 하며 자영업자들의 어려움, 국민부담 완화 방안 등에 관해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사진=뉴스1 제공)
민심과 동떨어진 행보는 불행하게도 또 이어졌습니다. 국민의힘 소속 김진태 강원지사가 강원도 홍천지역에 산불이 난 상황에서 추천의 한 골프연습장을 갔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또 같은 당 김영환 충북지사는 충북 제천에서 산불로 주민 대피령까지 내려진 상황에서 충주 시내 한 곳에서 민간단체와 술자리를 가졌다는 믿지 못할 보도도 나왔습니다. 이에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김 대표는 “당의 기강 확립을 위해 앞으로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언행에 대해 일체의 관용 없이 일벌백계하겠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때늦은 대처인데다 구두성 경고에 그칠 것이란 지적도 나오는 게 사실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이런 식으로 논란이 계속되는데 당이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지도부 실언으로 민심이 돌아서면 또다시 비대위를 가지 말란 법도 없다”며 “현재 상황으로서는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 승리는 고사하고 또다시 패배가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국민의힘 지도부나 논란이 된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습니다. 본인들이 전달하려는 의도가 그렇지 않았고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에서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냈다는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말에는 무게가 있습니다. 하물며 공인, 특히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아 대의정치를 하고 개별 헌법기관이라고 불리는 국회의원에게는 더 강조할 필요조차도 없습니다. 새 정부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는 집권여당의 수뇌부라면 더욱 신중하게 생각하고, 정제된 언어로 의견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당 지도부가 강조했던 것처럼 똑바로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똑바로 얘기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해 보입니다. 집권여당의 지도부가 소통, 공감 능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첫 과제가 될 줄은 한 달 전엔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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