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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대란]깐깐한 기준 못 넘은 33곳 '거래정지'…애꿎은 주주만 '분통'

이명철 기자I 2019.04.01 05:15:00

박삼구 퇴진에 웅진에너지 상폐 위기 등 여파 커
주기적 지정 등 新외감법으로 감사인 권한 강화
재감사 받아도 ‘적정’ 불확실…주주들 희망 고문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상장사들에 대한 감사의견 ‘비적정(한정·부적정·거절)’과 제출 지연이 속출하는 이유는 회계 개혁의 과정에 나타나는 성장통이라는 게 금융당국과 회계업계의 시각이다. 다만 회계 개혁의 여파는 생각보다 거셌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삼구 회장은 아시아나항공(020560) 사태에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당장 상장폐지를 걱정해야 하는데다 감사범위 ‘적정’으로 되돌리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하는 등 부담이 과도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 한화마저 제출 차질…아시아나 논란도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감사의견 비적정을 받은 기업(유가증권·코스닥)은 2015년 12개에서 2016년 18개, 2017년 25개로 증가세다. 2018년에는 현재 33개가 비적정을 받았다. 여기에 제출 지연되고 있는 곳이 7개임을 감안하면 역대 최고 수준이 확실한 상황이다.

예년에는 주로 중소기업 위주인 코스닥시장에서 문제가 됐다면 올해는 대기업들이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 대기업인 ㈜한화(000880)LS(006260)전선은 정기주주총회가 열리기 일주일 전까지 감사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해 지연 공시를 냈다.

아시아나항공(020560)은 감사의견 ‘한정’을 받았다가 논란이 확산되자 부랴부랴 재감사에 돌입, 2영업일만에 ‘적정’을 받기도 했다. 대형 항공사의 회계 투명성이 도마에 오르면서 그룹을 이끌던 박 회장이 퇴진을 결정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코웨이를 다시 품에 안았던 웅진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웅진에너지(103130)도 감사의견 ‘거절’을 받고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 이 회사가 발행한 1200억원대 전환사채(CB)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는 그룹 전체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지난해 10개 이상의 상장사들이 한꺼번에 퇴출 위기를 맞았던 코스닥시장은 혼란이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한 기업단체 관계자는 “감사의견 비적정이 늘어날 것이라고 봤지만 예상보다 더 많은 기업들이 대상에 오르게 됐다”며 “감사인이 감사 계약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오히려 의사소통이 더 줄어든 것 같다”고 지적했다.

◇ “꼬투리 잡힐라”…보수적인 회계 처리

예년에 비해 감사의견 비적정이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로 외부감사법 개정에 따른 ‘주기적 지정제’와 ‘감사인 선임 기한 단축’이 꼽힌다.

주기적 지정제란 9년 중 6년은 자율적으로 감사인을 선임했다면 3년은 금융당국이 지정하는 회계법인을 감사인으로 선임해야 한다는 제도다. 감사인이 기업으로부터 직접 감사 계약을 따내야 하는 부담을 줄여 독립성을 확대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11월 처음으로 220개 기업의 감사인을 지정할 계획이다.

감사인이 지정되면 3년간 감사 후 바뀌기 때문에 연장 계약 등으로 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특히 다음 지정 감사인이 이전 사업연도 회계 처리를 지적할 가능성도 높아 문제가 될 소지를 만들지 않겠다는 게 현재 회계업계 분위기다. 지정 감사인이 회계기준을 위반할 경우 금융당국의 제재도 강화되기 때문에 더욱 깐깐한 회계기준이 적용될 전망이다.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기업 의지와 상관없이 감사인이 지정되면 이해관계에서 해방돼 독립성이 높아진다”며 “회계사 입장에서도 구속이나 과징금 등 개인에 대한 처벌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감사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감사인 선임 기한이 이전 사업연도 결산 후 4개월에서 45일(12월 결산법인은 2월 15일)로 단축된 것도 큰 영향을 미친다. 감사보고서 작성 상황을 보고 기업이 계약 여부를 결정하던 상황에서 벗어나게 됐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기업이 칼자루를 쥐고 있었지만 상황이 역전됐다.

◇ 상장폐지 유예됐지만 거래 재개 미지수

감사인들의 보수적인 회계감사로 기업들은 행정상 업무 수정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기한보다 늦게 제출하겠다고 알린 상장사는 8개로 전년대비 167%(5개)나 늘었다. 작년 재무제표를 확정하지 못하다보니 정기주주총회가 늦어짐은 물론 4월 1일이 기한인 법인세 납부도 차질을 빚는 경우도 나타나게 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업들은 우선 상장폐지에 대한 이의신청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케어젠(214370)을 비롯해 8개 기업이 한국거래소에 상장폐지 관련 이의신청을 접수한 상태다. 셀바스AI(108860) 등은 이의신청을 제기하고 재감사도 진행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거래소는 이의신청을 받으면 15영업일 내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최근 상장규정을 개정하면서 감사의견 비적정을 받아도 차기연도 감사의견을 기준으로 상장폐지를 결정하게 된다. 다만 이의신청을 제기하고 재감사를 받아 ‘적정’을 받으려는 시도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재감사나 차기연도 감사를 통해 감사의견이 전환될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금감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재감사를 통해 감사의견이 ‘적정’으로 바뀐 기업은 20개 중 8개(40%)에 그쳤다. 감사환경이 엄격해지면서 이 비율은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상장폐지가 유예되지만 매매거래는 그동안 정지된다. 투자자들은 기약 없는 기다림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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