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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정책실험' 부작용에 백기…"최저임금 1만원 공약 못지켜 죄송"

이진철 기자I 2019.07.15 01:00:00

일단 해보고 안되면 후퇴.. 오락가락 정책 그만둘 때
경제여건 감안 뒷전 무리한 공약 추진, 노동계도 불만
2년 정책 실험 부작용..정치·진영논리 탈피해야,
향후 3년 경제정책 '포용성장·혁신성장' 궤도 수정

청와대 김상조 정책실장이 14일 오후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과 관련한 청와대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세종=이데일리 이진철 기자] “경제환경, 고용상황, 시장수용성 등을 고려해 최저임금위원회가 고심에 찬 결정을 내렸지만, 어찌됐든 대통령으로서 대국민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3년 내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달성할 수 없게 됐다”고 사과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 12일 2020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8590원을 올해보다 2.87%(240원) 인상한 것에 대한 입장 표명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역대 3번째로 낮은 인상률이지만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불만이다.

문재인정부가 내세운 소득주도 성장의 대표적 공약인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의 속도조절을 시작으로 ‘집권 3년차 증후군’에 빠진 주요 경제정책의 궤도 수정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추진했던 주52시간 근무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탈원전 에너지정책 등에서도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어서다.

◇ 靑 “최저임금, 국민적 공감대 겸허히 받아들여”

청와대는 지난 2년간 30%에 가까운 최저임금의 지나친 인상이 고용 등 경제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부작용을 뒤늦게 인정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소주성특위)가 지난 4일 발표한 ‘최저임금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 결정에 대해 자영업자는 동결을 선호한다는 의견이 61%로 가장 많았다. 저임금 인상 정책의 최대 수혜자인 임금근로자 역시 절반을 넘는 68%가 ‘동결’(37%) 또는 ‘1~5% 미만 최소 인상’(31%)을 선호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소주성 특위의 설문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의 전체의 어떤 명시적 암묵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 아닌가 생각을 한다”면서 “이런 국민적 공감대와 명령을 겸허히 받아들여 소득주도성장의 정책 패키지를 세밀하게 다듬고 보완하는 노력을 기울여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최저임금 과속 인상에 대한 우려는 이미 경제 곳곳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6월 통계청 고용동향에서 나타난 청년층 확장실업률(취업준비생 등 사실상 실업자를 보여주는 체감실업률)은 24.6%로 같은 달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제조업 취업자는 지난해 4월 이후 15개월 연속 감소세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 정규직 전환·주52시간 근무제, 현장 곳곳서 혼란

무리하게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주52시간 근무제 등을 약속하고 실제 정책 추진은 지지부진해 현장의 혼란과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민주노총 공공부문 공동파업으로 1만438개 학교 중에서 26.8%인 2802개 학교에서 급식이 중단돼 학생들이 도시락을 싸오거나 빵으로 점심을 때웠다. 방과 후 돌봄서비스는 5921개 학교 중 2.3%인 139개 학교에서 차질을 빚었다.

고속도로 요금수납원 노조 일부는 지난 6월30일부터 도로공사 정규직화 요구 농성을 하면서 지난 4일에는 고속도로를 점거하는 일도 있었다. 이는 도로공사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방침에 따라 직접 고용이 아닌 자회사를 설립을 통한 고용을 추진해서다. 이를 두고 예산이나 경영여건에 대한 고려없이 무리하게 정규직화 약속을 이행하려다 무늬만 정규직을 양산한다는 반발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이다.

이달 1일부터 시행된 주 52시간제는 정부가 땜질식 처방만 내놓는 사이 현장에선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정부는 노선버스업, 방송업, 광고업 등 300인 이상 특례제외 업종에 대해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기간 부여했다. 노동시간 단축의 현실적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나 업종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단 밀어붙이면 시행이 가능할 것이라는 오판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 지난 2년간 정책실험 부작용.. 실용주의 노선 필요

정부는 지난 2017년 11월 재생에너지 3020 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태양광발전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당시 6.2%에서 20%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산림 훼손이나 부동산 투기, 개발 사기 등 부작용 사례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급기야 정부는 소규모 태양광발전소 편법개발이나 투자사기 근절을 위해 집중 단속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원전산업에 대한 이해없는 에너지 전환 정책 표방은 탈원전으로 인식돼 핵심 인력이 속속 이탈하고 우리가 그동안 쌓았던 원전 생태계 붕괴를 야기하고 있다. 정부는 원전 해체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원전 관련 기업들은 극심한 경영난을 겪으며, 앞으로 5~10년 뒤를 내다보기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

정부가 지난 2년간의 실험적인 정책에서 부작용을 경험한 만큼 앞으로 남은 3년은 정치·진영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실용주의 노선으로 정책 기조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이미 소득주도성장은 포용성장으로, 경제는 혁신성장에 무게를 두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경제활력 제고 및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올해 세법 개정안·예산안 등에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반영한 후속 정책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정책은 늘 실시간으로 그 효과를 점검하고 아니다 싶으면 폐기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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