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우리 기업들이 美 증시에 `韓경제 리스크` 밝힌 까닭

양희동 기자I 2019.05.09 05:00:00

국내 사업보고서에 쓰지 않은 불안 요소 지적
최저임금 인상 및 근로시간 단축 우려 적시
회계 감사와 최순실 게이트 수사 등도 거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후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EUV(극자외선) 전용 라인 건설현장을 찾은 모습. 왼쪽부터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문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은승 삼성전자 사장.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나라 안팎으로 경제가 어렵습니다. 민생도 어렵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약속했듯이 무엇보다 먼저 일자리를 챙기겠습니다”(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중)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0일로 취임 2주년을 맞는다. 2년 전 문 대통령은 경제 및 민생 회복, 일자리 확대 등을 약속했지만 취업률을 비롯한 국내 각종 경제 지표는 악화 일로를 걷고, 올 1분기엔 마이너스 성장까지 기록하고 말았다.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등 수출을 견인하던 국내 양대 반도체 회사의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반토막 났고 주요 기업들의 실적도 모두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른바 ‘적폐 청산’ 작업을 이어가겠다며 재벌 개혁 등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하고 있다. 이에 우리 기업들은 국내·외 어려운 경영 여건 속에서도 정부의 적폐 청산 기조 속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미국 증시에 상장한 SK텔레콤(017670)KT(030200), LG디스플레이(034220), 포스코(005490) 등 국내 주요 기업(주식예탁증서 발행)들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제출한 연차보고서를 연이어 공개했다. 대부분은 국내에 공시한 기존 사업보고서 내용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사업의 위험 요소’ 부분에선 각 기업의 고민과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 눈길을 끌었다.

이들 기업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한국 경제의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 중 △최저임금 및 근로시간 제한 △사회복지제도에 대한 정부 지출 급증

△한국 부동산 시장 가격의 하락 등은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이들 보고서에선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 시간 단축 등에 대해 기업의 재무 상태 및 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 우리 정부가 향후 세수입 감소에도 불구하고 재정부양 및 실업수당 등의 사회복지 지출을 급격히 늘릴 경우, 정부의 예산 적자가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부정적 요소로 열거된 또 다른 부분은 정부의 재벌 개혁 관련 내용이다. SK텔레콤과 LG디스플레이 등은 보고서에서 국내 대기업과 임원들의 부정에 대한 조사와 기업 회계 부정 및 특정 한국 기업 지배구조 등으로 인해 투자자 신뢰도가 저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KT는 ‘사업 사업과 관련된 위험요소’ 부분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연루된 사실을 직접 거론하며 “당사의 영업 활동, 명성 및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문 대통령은 2년 전 취임사에서 “구(舊)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미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우리 기업을 정부가 일방적인 ‘개도(開導)’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잘못된 관행일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정부는 LG디스플레이가 이번 보고서에서 쓴 다음 문장을 명심하길 바란다. “만일 한국의 경제 상황이 악화된다면 당사의 현재 사업 및 미래의 성장은 크게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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