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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넘은 집값 담합]'호가 올리기' 온상된 단톡방

박민 기자I 2018.09.13 04:10:00

진화하는 집값 담합
아파트 단지별 온라인 대화방 성행
1000가구 대단지도 짬짜미 쉬워져
담합 대화방 적발·제재도 쉽지 않아

그래픽=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박민 기자] “(카톡) XX 가격으로 판다는 것은 말도 안되죠. XX 이하로는 절대 매물 내놓지 맙시다.”

최근 폭주하고 있는 서울 집값 급등의 배경으로 온라인 단체 채팅방을 통한 가격 담합이 지목되고 있다. 과거에는 아파트 부녀회 등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담합이 요즘은 카카오톡 채팅방이나 입주민 전용 온라인 카페 등으로 옮겨와 집값을 띄우는 ‘담합의 장’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경력 20년차의 강남의 한 공인중개사는 “1000여가구 넘는 대단지에서 일시에 호가를 1억~2억원씩 올려달라고 주문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집주인들의 가격 담합이 있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정부의 잇단 부동산 대책에도 집값이 꿈적도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이처럼 집주인의 가격 담합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각종 부동산 관련 온라인 카페에서 ‘카톡방’, ‘채팅방’, ‘단톡방’이라고 검색어를 기입하면 특정 지역명이나 단지 이름을 내건 채팅방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대부분 아파트 실거래가나 동네 소식 등을 공유하자며 참여자들을 유도한다. 이들 채팅방에서는 실시간으로 일대 아파트 단지의 거래가격이 공유되고, 이는 다시 ‘우리 단지만 안 오를 수 없다’는 심리로 이어지며 호가를 끌어올리는 불쏘시개가 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 채팅방 참여자는 “부동산 대책이 나와도 이곳(채팅방)에서는 집값이 오르는 쪽으로만 해석하는 글들이 넘쳐난다”며 “특히 우리 아파트 단지가 타 단지보다 싸게 팔릴 이유는 없다는 식으로 얼마 이하로는 절대 팔지 말자는 말들도 오간다“고 전했다. 최근 들어 매매계약을 체결했다가 파기하는 사례가 급증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문제는 이같은 집값 담합을 제재할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현재 공정거래법상 담합행위의 처벌 대상은 ‘사업자’이기 때문에 ‘개인’인 입주자들은 처벌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업무방해죄(형법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로는 처벌 가능하지만 개인의 담합 행위를 적발하는 게 사실 쉽지 않는 실정이다.

집값 담합 통로로 가장 왕성하게 활용되고 있는 카카오톡 채팅방의 제재도 쉽지 않다. 카카오톡 운영정책상 유해 목적성이 있는 글을 올릴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내부 채팅 이용자의 신고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카카오톡 관계자는 “도박, 음란, 청소년 유해활동에 해당하는 글을 올릴 경우 서비스를 제한할 수 있지만 집값을 얼마에 팔자는 얘기가 담합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사법기관이 판단할 부분으로 본다”며 “내부 이용자 중 채팅 이력 등을 캡쳐해 사법기관에 신고를 하기 전까지는 제재 조치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도 최근 채팅방을 통한 집값 담합을 인지하고 있지만 사실상 단속은 중개업소 현장 점검에 그치는 실정이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을 확보하기 어려워 몸통을 잡지 못하고 꼬리만 잡는 식이다. 조사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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