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1년…대형 로펌 8곳 中 6곳 “위헌성 크다”

박정수 기자I 2023.01.27 05:00:00

[중대재해처벌법 1년]
규정 모호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
책임과 형벌 간 비례원칙 위반될 여지 상당
“입법 목적 정당성 있어 위헌 단정하긴 어려워”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국내 대형 법무법인들이 시행 1년을 맞는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을 놓고 위헌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규정이 모호해 헌법상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크고,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위반될 여지가 상당하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중처법 처벌 대상인 기업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검찰의 기소나 송치는 있지만 지난 1년간 법원의 판결이 전무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전담팀(TF)까지 꾸려 중처법 개선에 나섰지만, 전문가들은 합리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명확한 내용으로 보완하기 전까지 위헌성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 조항 모호하고 과잉 처벌 우려

26일 이데일리가 국내 대형 법무법인 8곳으로부터 중처법의 위헌성과 위헌 결정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취합한 결과 6곳이 ‘위헌 결정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나머지 2곳은 ‘위헌 가능성이 비교적 높지 않다’와 ‘위헌 결정 가능성이 적다’고 각각 답했다.

법무법인들은 공통으로 중처법의 일부 조항은 형벌 법규임에도 지나치게 모호하게 규정돼 있어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봤다.

김상민 태평양 변호사는 “어떠한 잘못으로 인해 처벌받는다는 것이 기본적인 형법의 요소이고 무엇을 하면 처벌받는지 정확하게 인지가 돼야 한다”며 “하지만 중처법은 무엇을 안 하면 처벌을 받는 반대의 개념이라 사업자가 종잡을 수가 없고 수사기관도 의미 파악이 안 돼서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박준기 태평양 변호사도 “실질적으로 중처법 시행 10개월 지나고 상당수의 건수에 대해 검찰이 처리했어야 한다”며 “하지만 모호한 규정으로 인해 현재 기소된 건은 10건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윤상호 지평 변호사(중대재해대응센터)는 “중처법 제4조 제1항은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 1호는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 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정한다 등의 표현은 형벌 규정으로서 명확하지 않아 명확성의 원칙 위반의 소지가 있다”면서 구체적인 법령의 불분명한 표현을 문제로 꼬집었다.

형벌이 과중해 침해의 최소성과 과잉금지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도 위헌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

법무법인 바른은 “비록 벌금형이 선택형으로 규정돼 있기는 하지만, 징역형의 경우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한을 정함으로써 중형으로 처벌하고 있다”며 “이는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위반될 여지가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이향은 동인 변호사는 “현재의 중처법은 경영책임자 등에게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하도록 규정하고, 이를 위반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무거운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며 “그런데 법 규정만으로는 안전보건 확보 의무의 내용이 무엇인지가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될 여지가 높다”고 봤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위헌 단정하긴 어려워…“합리적으로 이행할 수 있어야”

한편에서는 현재의 중처법이 위헌의 소지가 있어 보이지만, 재해를 줄이자는 입법 목적의 정당성도 없다고는 볼 수 없어서 위헌을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조상욱 율촌 변호사(중대재해센터 공동센터장)는 “중처법 위헌성 여부에 대해 중한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으면서도 그 요건이 확실치 않다는 주장, 현장에 있지 않은 본사의 경영책임자에 대해 현장에서 발생한 책임을 의제하는 것은 책임주의 원칙에 반한다는 주장, 위반의 정도에 비해 처벌의 정도 등이 과하다는 주장 등 다양한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조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를 심사하게 될 때 위헌의 소지와 함께 입법 목적의 정당성 등 순기능을 함께 비교 형량하게 될 것”이라며 “법 시행으로 재해 사건이 감소할 가능성 등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어느 정도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륙아주의 경우 사망사고 시 형량을 징역 1년의 하한형으로 규정한 것은 과잉 처벌 규정으로 볼 소지가 있다면서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 의해 안전보건 확보 의무가 15개 항목으로 유형화됐고 고용부 등 관계부처 해설서 등으로도 구체화된 점 △향후 검찰 처분례·법원 판례 축적으로 명확성 원칙 위배 소지가 줄어드는 점 등 합헌적 해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며 위헌이 됐을 시 사회적 파급력도 커 헌재도 신중히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중처법의 수범자인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의 범위가 특정 업종이 아니라 중대재해 발생 가능성이 있는 모든 분야가 대상이므로 어느 정도의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표현은 불가피한 점, 중처법상의 규정이 일부 모호한 표현이라도 해석을 통해 처벌 요건 특정이 불가능한 정도는 아닌 점 등에 비추어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안전보건확보의무를 부과해 중대재해 발생을 줄이겠다는 입법 취지, 불가항력적 사유가 아닌 안전조치 의무 위반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적지 않은 점, 중대재해 사건의 중대성 등을 종합하면 법정형도 과잉 금지의 원칙 등에 반한다고 인정하기 어려워 위헌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

국내 법무법인 가운데 최초로 중처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한 화우의 경우 “중대재해 예방이라는 중처법의 목적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추상적이거나 불명확한 부분을 보다 명확하게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신청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화우는 “중대재해 ‘예방’을 목적으로 하면서 ‘처벌’만을 내세우거나 헌법상의 원칙 위반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면서까지 법이 작동되어서는 안 된다”며 “중처법의 위헌성이 확인돼 관련 규정이 예측 가능하고 합리적으로 실행 가능한 명확한 내용으로 보완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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