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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적정임금 소문나니 내국인 근로자 몰려왔다"

김용운 기자I 2019.06.18 04:00:00

서울시 '적정임금 시범사업'
표준근로계약서대로 주휴수당 지급
근로자 만족도↑공사 차질없이 착착

지난 5월 하순 찾은 올림픽대로 여의도 진입램프 건설현장. 이곳은 서울시가 ‘건설근로자 적정임금 시범사업’장으로 선정해 건설일용직 근로자들에게 적정임금을 월급 형태로 지급하고 있다. (사진=김용운 기자)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주 5일을 일하면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어요. 덕분에 주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여유가 생겼죠.”

주말을 앞두고 지난 14일 찾은 올림픽대로 여의도 진입램프 건설현장. 도로를 오가는 차량 사이 안전 표지판 너머로 땀 흘리며 바쁜 손놀림을 하고 있는 인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곳은 서울 여의도 올림픽대로 하행선(김포방향) 여의교~서울교 구간에서 서울교 남단 노들길 진출로로 이어지는 폭 6.4m, 연장 712.6m의 연결램프를 신설하는 공사(이하 올림픽대로~여의도간 진입램프 공사)현장이다. 지난 2017년 2월 공사를 시작했으며 오는 9월 개통예정이다. 총사업비는 약 200억 규모다.

경력 25년의 작업반장 김동선씨는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일하면 주말에 쉬어도 주휴수당이 나오기 때문에 한결 마음이 가볍다”며 “제대로 돈을 받고 일하니 다른 현장보다 더 애착이 가고 열심히 일하게 된다”고 말했다.

공사규모가 크다고 할 수 없지만 이 곳은 건설 노사 상생을 위한 의미있는 실험이 진 행중이다. 서울시의 ‘건설근로자 적정임금 시범사업’으로 선정된 현장으로, 적정임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17년 건설일용직 근로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손을 본 것은 근로계약서였다. 그동안 건설현장들은 연차수당이나 휴일수당, 주휴수당 등 각종 수당을 임금에 포함시켜 지급하는 포괄임금제를 관행처럼 적용해왔다.

시는 노동조합 등과 협의해 급여산정 내역 안에 유급 휴일수당과 연차 유급수당, 휴일 근로수당 등 시간당 법정수당과 1주에 평균 1회 이상 유급휴일을 포함 시킨 ‘건설일용근로자 표준근로계약서’를 만들었다. 이어 시가 발주하는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시중노임단가 이상을 보장해야 한다고 공사계약특수조건을 개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건설근로자 적정임금 시범사업’을 펼쳤다.

시는 적정임금 시범사업을 진행하며 표준근로계약서 도입과 함께 포괄임금보다 많은 적정임금을 보장해 내국인 고용을 확대하고 공사 현장의 품질과 안전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했다.

적정임금제가 도입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내국인 젊은층 근로자들이 대거 몰렸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올림픽대로~여의도간 진임램프 공사현장에 투입한 공사인력 10명 중 9명 이상이 내국인이었다. 외국인 인력도 영주권이 있는 중국 동포였다. 적정임금을 주는 현장으로 소문이 나면서 내국인 건설일용 근로자들의 지원이 늘었다. 안전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40여명의 팀원과 함께 일한다는 김 반장은 “건설현장에 젊은이들이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노동강도가 센 것보다는 오히려 주말에 쉬면 직장인과 달리 주휴수당을 받지 못하는 작업환경 탓이 크다”며 “주휴수당을 보장해 주는 덕에 이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주말에도 각자 가정을 돌볼 수 있어 만족도가 무척 높다”고 말했다. 김 반장은 “만족도가 높다보니 일을 하는데도 더 꼼꼼히 하고 안전사고 위험도도 낮아졌다”며 “젊은이들을 유입시켜 건설현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5월 하순 찾은 올림픽대로 여의도 진입램프 건설현장. 이곳은 서울시가 ‘건설근로자 적정임금 시범사업’장으로 선정해 건설일용직 근로자들에게 적정임금을 월급 형태로 지급하고 있다(사진=김용운 기자)
현장 감리단의 박태선 단장은 “적정임금이 건설현장의 문제점을 모두 해결해주는 만능키는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표준근로계약서에 따른 적정임금을 보상하다보니 현장근로자들의 의욕이나 사명감이 확실히 높고 시공품질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임금은 월급형태로 지급하며 급여명세서에는 근무 날짜를 비롯해 소득세 등 각종 공제금액도 표시된다”며 “전반적으로 노무관리가 투명해지면서 현장의 비리 요소를 원천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적정임금 시범사업’을 건설현장 전반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임금 상승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누군가는 져야 하기 때문이다. 대형건설사 한 관계자는 “적정임금을 위한 전제 조건은 결국 적정공사비다”며 “관급 공사에서부터 적정공사비를 보장한다면 건설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적정임금을 받기가 더 수월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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