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 인력난…인재 경쟁 아닌 수익 경영으로 풀어야”

박순엽 기자I 2022.08.10 05:00:00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인터뷰 ①
“국내 조선 업계서 가장 중요한 현안은 인력난”
“수주량 아닌 수익성 위주의 전략적 경영 필요”
“호황기 오고 있어…10년 전 후회 반복 말아야”
“사람 줄어도 일할 수 있게 자동화 설비 갖춰야”

[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선박 수주는 쏟아지고 있는데, 선박을 만들 사람이 없는 상황입니다. 내년이면 국내 조선 3사 간 숙련된 생산 인력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조선업계의 호황이 이어지면 생산 인력의 임금은 당연히 올라가겠지만, (현장 인력이 부족한 탓에) 임금 상승 압박은 더 커질 것입니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조선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 중 하나를 꼽으라면 생산 인력 문제”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국내 조선사들이 단순히 수주량만을 목표로 삼는 게 아니라 어떤 선박을 어떻게 건조해 수익을 창출할 것인지부터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사진=방인권 기자)
김 교수는 현재 조선소에서 발생한 인력난의 원인은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과 열악한 근로환경에 있다고 봤다. 그는 “조선업이 다른 제조업과 비교해 전체적으로 임금이 낮고 근로조건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왜 조선소에서 일하지 않는지, 젊은 사람이 유입되지 않는지만을 이야기해선 안 된다”고 했다.

다만, 그는 조선업계가 원자잿값 인상 등으로 많은 충당금을 쌓아 재무제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임금을 인상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도 언급했다. 그는 “현재 선박 척당 마진율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데, 여기서 이윤을 더 깎으면서까지 임금을 인상하긴 쉽지 않다”며 “이는 단순히 임금을 올리고 내리는 문제가 아니라 조선사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조선사들의 수익성을 높이는 게 가장 우선돼야 할 일이라고 못 박았다. 탈(脫) 탄소·디지털 전환 등의 세계적 흐름에 맞춰 기술력을 높이고, 생산 시설의 자동화 등을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조선소가 기술력과 생산성을 바탕으로 수익성을 높이면 인력난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교수는 또 국내 조선사들끼리 이른바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을 줄이고 전략적 협력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도 조언했다. 그는 국내 조선사들이 새로운 선박 기술의 글로벌 기준을 함께 세우면 이를 토대로 기술적 우위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관악 캠퍼스 내 그의 연구실에서 국내 조선 산업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사진=방인권 기자)
다음은 김 교수와 일문일답.

-조선 경기가 호황에 들어섰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른바 ‘슈퍼사이클’(초호황기)에 근접했다고 볼 수 있나.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만, 지금은 호황기의 초입 정도로 보아야지 벌써 슈퍼사이클 언급하는 건 너무 성급한 이야기이다. 물론, 선박 수요와 공급의 측면에서 보면 지금 수요가 늘고 있고 공급은 그새 많이 줄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즉, 조선 시황이 좋은 쪽으로 가고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슈퍼사이클이란 말을 언급하는 것은 너무 기대가 큰 사안이다. 과거 슈퍼사이클 시기엔 전 세계 신조선 발주량이 연간 6000만CGT(표준선환산톤수)를 넘기도 했으나, 현재는 4000CGT에 근접한 수준이다.

게다가 선박 수요의 1~2년 단기 예측은 전 세계 발주량과 수주량을 보고 가늠할 수 있으나 5년 이상의 장기 예측은 쉽지 않다. 선박 공급·수요에 대한 장기 데이터는 선주나 조선사 경영상 밝히기 어려운 내용이다 보니 시장에 공개된 데이터가 적다. 따라서 단기 예측은 비교적 신뢰성이 높으나 장기 예측은 정확도가 낮다.

이 때문에 조선 경기가 호황에 접어들고 있다는 건 맞지만, 언제 슈퍼사이클이 올지는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슈퍼사이클이라면 연간 5000만CGT 이상의 신조선 발주량이 수년간 이어져야 할 텐데, 그런 시황이 다시 나타날 것이란 예측은 쉽지 않다.

-국내 조선업계는 지난 10년 이상 심각한 불황을 겪었고, 그 원인이 호황기에 제대로 된 대비책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있다. 조선업계가 이번 호황기엔 어떤 준비를 하는 게 좋을까.

△국내 조선사들도 불황을 겪으면서 스스로 ‘과거 호황기 때 우리가 뭘 했느냐’는 반성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사업을 확장한 게 아니라 많은 돈을 벌다 보니 이러저러한 사업을 하면서 불황기 준비를 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업은 분명히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주기가 있어 인력을 재배치하고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 조선업계 주기를 보완하는 사업으로의 확장도 전략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싱가포르의 대형 해양업체인 케펠(Keppel)이 해양산업의 불황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부동산 투자업이었다. 조선 시황에 좌우되지 않는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해 불황을 견딜 수 있었던 셈이다.

국내 조선사들도 호황기 생기는 여유 자금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선 경영진의 현명한 판단과 선택이 필요하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사진=방인권 기자)
-현재 국내 조선소 인력난이 심각한 탓에 자칫 호황기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나.

△조선소 인력난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항이다.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를 잔뜩 해놨는데, 배를 못 지어서 지연되면 배상은 배상대로 하면서 신용까지 떨어진다. 생산 자체가 막히면 국내 조선 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이점이 그대로 깎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제조업보다 임금이 낮고 근로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조선소 인력 수급이 되지 않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조선사와 선가를 두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임금을 무작정 올릴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그렇다면 품질과 생산 효율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 즉, 수익성을 높이자는 말이다. 선주들이 ‘한국 선박 같은 건 어디 가도 찾을 데가 없다’고 생각하면 돈을 더 주고서라도 수주를 맡긴다. 선박 탈탄소화·디지털화 등에 관련한 기술 개발을 확실히 해야만 하는 이유다.

나아가 새로운 기술을 선도하는 기술 선도국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하게 해야 한다. 신기술의 국내 기준을 국제 표준으로 만들 수 있는 기업들로 거듭날 필요도 있다. 국내 조선사들이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걸 보여줘야 영업과 기술, 노동 측면에서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국내 조선사들끼리 수주하고자 선가를 낮추는 ‘코리안 리그’도 그만둬야 한다. 전 세계에서 국내 조선사만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훌륭하게 건조할 수 있는 나라가 없는데도 국내 3사끼리 경쟁해 선가를 떨어뜨리는 일은 일어나선 안 된다.

-정부는 우선 외국인 인력을 도입해 조선업계 인력난을 해결하려는 모습이다. 이에 대한 견해는?

△외국인 인력 도입과 관련해선 싱가포르가 롤모델로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외국인에 대한 임금이 내국인과 다르고 산업·숙련도별로 임금 체계가 분리돼 있다는 점에서 국내 현실과는 다르다.

이민 정책에 대한 차이는 제쳐놓더라도, 무슨 일을 하든 최저임금을 똑같이 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외국인들이 조선업에서 장기적으로 근무할 여지는 적다고 본다.

물론, 외국인 인력이 조선소 인력난의 일정 부분은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으나 완벽한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이 역시 호황을 대비해 몇 년 전부터 해외 인력 센터도 세우고, 용접 등과 같은 생산 교육을 선제로 준비했어야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사람이 줄어도 일을 할 수 있게끔 자동화 시설을 갖추는데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

-정부도 여러 방면에서 조선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 지원 방식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국내 조선 산업은 대형 조선소 위주로 형성돼 있다. 대형 조선소를 중심으로 기자재업체와 같은 여러 전방위 산업체들이 모여 하나의 산업 체계를 이루고 있다. 그동안 대우조선해양 처리가 쉽지 않았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하나의 대형 조선소가 무너지는 순간 조선 산업 생태계의 일부는 회복이 힘들 정도로 피해가 클 것이다.

즉, 대형 조선사를 하나의 기업으로 보기보다는 하나의 산업 체계로 봐야 한다. 우리나라 조선 산업의 가장 핵심적 기술 수요자, 인력 수요자는 대형 조선소다. 정부로선 중소·벤처기업 육성도 해야 하겠지만, 실제 산업을 끌고 가는 주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대형 조선소도 생태계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있어야 한다.

무조건 대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비판하지 말고, 최종적인 수요자가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 참여 기회를 줄 필요는 있다. 조선 산업의 특성을 고려해서 대기업도 정부 정책에서 한팀이 될 방법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김용환 교수는…

△대구 출생 △서울대 조선공학 학사·석사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공학박사 △대우조선공업 주임연구원 △미국선박협회(ABS) 연구 엔지니어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일본 오사카 대학 특임교수 △서울대 미래해양공학클러스터 센터장 △로이드기금 연구센터장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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