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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갤러리] 찌르는 넝쿨이든 푸근한 둥지든…곽수영 '움직이지 않는 여행'

오현주 기자I 2022.01.03 03:20:00

2021년 작
겹겹이 쌓은 두꺼운 물감층 철필로 긁어
극대화한 명암대비에 얹은 '수행적 장치'
어떻게 할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

곽수영 ‘움직이지 않는 여행 21-Ⅶ’(사진=가나아트)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빠져나오는 중인가, 들어서는 중인가. 빛과 어둠이 극명하게 갈린 여긴 어느 성당이란다. 하지만 종교성을 내걸고, 밝은 쪽으로 옮겨간다 해도 상황은 편해 보이지 않는다. 화면 전체에 엉겨붙은 가시넝쿨 같은 선 때문이다. 규칙 없이 팽창한, 바짝 날을 세운 채 부유하는 먼지 같은 저들이 발목이라도 잡을 듯한 기세인 거다.

작가 곽수영(67)이 자신만의 기법으로 세운 세계, 그 바탕에는 예의 ‘선’이 들어 있다. 흔히 연상할 붓으로 그은 선이 아니다. 겹겹이 쌓아올린 두꺼운 물감층을 철필로 긁어내 만든 자국이다. ‘움직이지 않는 여행 21-Ⅶ’(Voyage Immobile 21-Ⅶ·2021)은 극대화한 명암의 대비에 얹은 ‘수행적 장치’로, 그저 경건한 성당의 풍경 그 이상을 내보인다.

결국 빛과 색의 변화보다 어떻게 할퀴어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 이야기란 얘기다. 그래서 먼지 같은 가시넝쿨도 때로는 ‘잔가지로 만든 새둥지’ ‘포근한 실뭉치’처럼 보일 수도 있는가 보다.

내년 1월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30길 가나아트센터서 여는 개인전 ‘심상의 빛’(The Light of Imagery)에서 볼 수 있다.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가 여행을 주제로 작업한 작품 중에서도 성당시리즈 27점을 골라 걸었다. 캔버스에 아크릴. 116.8×91㎝. 작가 소장. 가나아트 제공.

곽수영 ‘여행 19-Ⅸ’(Voyage 19-Ⅸ·2019), 캔버스에 아크릴, 162×130㎝(사진=가나아트)
곽수영 ‘움직이지 않는 여행 20-XXV’(Voyage Immobile 20-XXV·2020), 캔버스에 아크릴, 130.3×162㎝(사진=가나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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