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해우소]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계약서도 없이 일한다?

황효원 기자I 2020.07.04 00:15:00

이순재 사건으로 촉발한 '연예인 매니저' 업무 논란
근로감독관의 업무 회피 및 소극적 대응도 도마 위
직장갑질119 "근로감독청 신설 등 근본적 개선 필요"

[이데일리 황효원 기자] 이른바 아파트 경비원 ‘갑질’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인터넷에 노출되면서 대중으로부터 공분을 사고 있다. 상사로부터 막말과 지속적인 괴롭힘을 견뎌야 하고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심화하면서 기업경영난이 심화하자 고용유지를 무기로 한 직장갑질까지 더해져 직장인들의 하루가 고되기만 하다.

최근 TV 프로그램에서 기성세대를 풍자하기 위해 우스갯소리로 나오는 “라떼는(나 때는)말이야”는 누군가에게는 웃어넘기지 못할 말일 수도 있다. 이데일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올라온 직장인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공인노무사에게 노동관련법에 저촉되는지 들어봤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표준계약서도 쓰지 않고 업무와 상관없는 부당한 노동을 강요했다”

지난달 29일 배우 이순재(85)의 전 매니저 A씨는 자신이 겪은 부당한 노동 강요와 관행적으로 이어진 연예인 매니저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폭로했다. A씨는 다른 업무로 바빠서 근로계약서를 쓰지 못했다는 소속사의 황당한 해명까지 덧붙였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한 탓에 A씨는 4대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두 달 동안 주말을 포함해 5일밖에 쉬지 못했다. 또 휴일, 추가근무 수당은 커녕 기본급 월 180만원밖에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소속사 대표는 A씨가 허드렛일이 힘들다며 하소연하자 5인 미만 회사라 근로기준법 위반이 아니라며 A씨를 해고했다. 하지만 SBS 취재 결과 소속사 대표가 운영하는 연기학원은 소속사와 같은 사무실을 사용했고, 매니저 채용 면접을 학원 직원이 봤기에 사실상 같은 회사로 볼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씨의 소속사는 A씨가 ‘머슴살이’나 ‘갑질’이라는 표현은 과장한 것이라며 이씨의 가족은 A씨에게 일반적인 가사 업무로 불리는 청소, 빨래, 설거지 등을 시킨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A씨는 해고되기 전 이씨에게 직접 상황을 전달하며 개선을 요구했지만 이씨는 앞선 매니저들도 똑같이 해줬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A씨는 근로계약서를 쓰지 못했기 때문에 회사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려웠고 결국 A씨는 노동위원회에 ‘부당 해고’ 구제를 신청했다.


A씨의 폭로 이후 국내 연예계 노동 환경이 도마에 올랐다. 이들의 열악한 처우와 근로시간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지 않는 점, 주먹구구식 채용 등이 문제로 제기됐다. 실제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조사’(2018년 기준)에 따르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곳은 14.3%,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곳은 18.3%로 나타났다. 특히 현장 매니저의 경우 비정규직이 대다수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연기학원과 기획사를 한 곳으로 볼 수 있는 만큼 직원 수 5인 이상, 부당해고 규제대상이라고 지적했다.

이남준 공인노무사는 SBS에 “각각 사업장이 신고가 된 건 다르더라도 실제는 하나의 사업장이라서 그 하나의 사업장이 상시 근로자 수가 5인 이상이라면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매니저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을 느낀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관행으로 여겨온 매니저의 부당한 업무들이 해소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노동청에 신고했지만 일부 근로감독관의 업무회피와 소극적 대응으로 2차 피해를 당하는 이들의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직장인 B씨는 “휴가 가고 싶으면 영원히 쉬어라”는 말을 듣는 등 가족회사 갑질에 시달리다 퇴사한 뒤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은 회사 측의 조사를 받지 않으면 사건이 종결된다는 말 뿐, B씨가 건넨 증거자료와 녹취록을 조사하지 않았다. B씨는 “괴롭히는 사용자가 모두 가족인데 회사 측의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고 주장했다.

근로기준법 76조의 3(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은 회사인 사용자에게 신고토록 되어 있다. 사용자는 이를인지한 경우 지체없이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갑질 행위를 한 당사자나 그 특수관계인이 조사 주체가 되면 이 과정이 쉽지 않고, 괴롭힘으로 퇴사할 경우 노동청에 신고할 수밖에 없다. 근로감독관이 회사에 신고하라고 하거나 신고인 조사도 하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라, 근로감독관은 ‘퇴사했으니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돌려보내는 경우도 있다.

근로감독관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직장 내 괴롭힘 방치법’으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은 지난 3월부터 제기됐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진정사건 처리현황에 따르면 종결한 2739건 중 진정 취하는 1312건으로 절반에 가까운 47.9%나 된다.

직장갑질119는 “퇴사 후 신고, 가해자가 특수관계인인 경우 등 근로감독관 직접조사 범위를 늘리고, 조치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업장은 곧바로 근로감독을 실시토록 해야 한다”며 “근로감독청 신설, 근로감독청원제도 활성화 등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대책 변화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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