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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비서의 '사랑해요' 메시지…1심 법원 판단 어땠나[사사건건]

한광범 기자I 2023.04.22 05:00:00

"비서실 내부서 사용하던 관용적 표현…이성 감정 표현 아냐"
"'꿈에선 돼요', 朴 성적언동 회피하고 대화 끝내려는 표현"
"비밀대화방 사용한 朴, 메시지 성희롱 내지 부적절함 인식"
"박원순, 피해자 철저히 외면하고 자신과 가족 명예만 생각"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이 성희롱 사건 피해자인 비서 김잔디(가명)씨의 ‘사랑해요’ 메시지 등을 근거로 “오히려 박 전 시장이 성희롱 피해자”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앞서 1심은 유족이 문제 삼는 메시지들을 부적절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박 전 시장 유족은 지난 20일 서울고법 행정9-1부(김무신 김승주 조찬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의 성희롱 인정 직권조사 결과’ 취소소송 2심 첫 변론기일에서 “오히려 성희롱 피해자인 박 전 시장이 가해자로 설명되고 있다”며 성희롱을 인정한 1심 판결을 취소해 달라고 요구했다.

앞서 박 전 시장은 2020년 7월 9일 비서실 직원이던 피해자가 전날 자신을 성폭력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권위가 직권조사를 통해 2021년 1월 박 전 시장의 성희롱을 인정했고, 유족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으나 지난해 11월 1심은 인권위의 손을 들어줬다.

2020년 7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됐던 고(故) 박원순 전 서울장 분향소. (사진=방인권 기자)
유족 소송대리인은 항소심 첫 변론에서 “피해자 측에서 문자메시지를 ‘사랑해요’로 시작했음에도 이 부분을 제외하는 등 실체적 하자가 있다”며 “1심은 반대신문권을 보장하지 않았고, 아귀가 맞지 않은 참고인 진술에 근거하는 등 사실인정에 오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직장 내 성희롱, 즉시 신고 흔하지 않다”

유족 측은 앞서 1심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유족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족 측이 가장 문제 삼는 피해자가 박 전 시장에게 보낸 “사랑해요”, “꿈에서 만나요”, “꿈에서는 돼요” 등의 메시지에 대해서도 부적절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사랑해요’ 표현에 대해선 “이성 사이의 감정을 나타낼 의도로 표현한 것이라기보다는 피해자가 속한 부서에서 동료들 내지 상·하급 직원 사이에 존경의 표시로 관용적으로 사용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 ‘꿈에서는 돼요’라는 메시지에 대해서도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대답이 곤란한 성적인 언동을 하자, (피해자가) 이를 회피하고 대화를 종결하기 위한 수동한 표현으로 보인다”며 “박 전 시장에게 밉보이지 않고 박 전 시장을 달래기 위해 피해자가 어쩔 수 없는 한 말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앞서 박 전 시장 유족은 1심에서도 피해자가 동료에게 ‘걱정은 안 하지만 박 전 시장 행위에 대해 제3자가 봤을 때 조금 우려되는 것이 있다’고 언급한 점이 성희롱이 아니라는 근거가 된다는 주장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오히려 박 전 시장의 언동이 부적절한 행위였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며 “‘걱정을 안 한다’는 언급은 피해자가 성희롱 피해 사실을 부인하는 의미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박 전 시장 유족은 1심에서 피해자가 성희롱 주장을 사건 발생 이후 한참 이후에 처음 언급한 점을 근거로 주장의 신빙성이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1심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 성희롱 인정 요건이라고 볼 수도 없다”며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선 피해자가 피해를 즉시 신고하는 경우는 흔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즉시 문제 삼지 않고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에 고소를 결심하게 됐다고 하더라도 박 전 시장과 피해자 사이의 권력관계, 직장 내에서의 현저한 지위 차이, 조직문화 등으로 인해 오랜 시간 피해를 감내하다가 고소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朴 자살, 자신 잘못 시인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

박 전 시장 유족은 아울러 1심에서 박 전 시장이 보안 메시저인 텔레그램의 비밀번호를 비서실 직원과 공유한 점을 근거로 ‘성희롱 메시지를 보냈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도 폈다.

1심은 이에 대해 “박 전 시장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대화 내용이 삭제되는 텔레그램 비밀대화방 기능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박 전 시장 역시 피해자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성희롱 내지 최소한 부적절한 행위인 것을 스스로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일축했다.

박 전 시장 유족이 박 전 시장 사망으로 방어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을 펴기도 했지만, 1심 법원은 여기에 대해서도 다른 판단을 내렸다.

1심은 “피재자 주장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박 전 시장은 고위공직자로서 이를 적극 반박하거나,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방어권을 행사할 능력도 있었다”며 “박 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박 전 시장은 잘못이 있다면 이를 고치거나 스스로 돌아봐야 할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주장에 대한 어떠한 해명도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문제 상황을 도피했다”며 “피해자의 피해를 철저히 외면하고 오로지 자신과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선택으로 볼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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