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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집토끼 다 몰아내고 선거 치를텐가

논설 위원I 2016.03.22 03:01:01
4·13 총선에 즈음한 여야의 ‘막가파’ 공천 놀음에 유권자들이 기존의 지지 정당을 대거 이탈할 조짐이 엿보인다. 이런 경향은 새누리당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느낌이다. 마구잡이 친박(親朴)계 밀어주기로 ‘사천’(私薦), ‘박천’(朴薦) 등의 신조어를 양산하느라 전통적 지지층조차 상당수가 당을 등지는 것도 모르는 듯한 눈치다.

21일 대구시 동구 유승민 의원(동구 을) 지역구 사무실에서 관계자들이 유 의원 공천 심사 결과 발표를 기다리며 TV를 보고 있다. 이날 새누리당 지도부는 유 의원의 공천 문제를 결론내지 못했다 (사진=연합뉴스)
새누리당의 경우 무엇보다 이한구 공직자후보추천관리위원장의 독선이 문제다. 비박(非朴)계를 무더기로 탈락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원내대표까지 지낸 3선의 유승민 의원에게 ‘정체성’을 들이대며 자진 탈당으로 몰아가는 고압적 태도에 대한 반발이 여간 거세지 않다. 그런데도 당 일각에선 “며칠만 더 끌면 무소속 출마마저 어렵다”는 해명까지 곁들이며 해당 지역구를 무공천으로 방치하자는 황당한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집권당의 ‘공천 학살’은 원칙도 없고 정의도 사라졌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제19대 국회 출석률 상위 10명 가운데 4명을 다음 국회에서 볼 수 없게 된 마당에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심판론’은 공허하기 그지없다. 청와대 조윤선 전 정무수석과 윤두현 전 홍보수석을 비롯한 친박계가 새누리당 표밭에서 치러진 당내 경선에서 줄줄이 고배를 든 것도 여간 쑥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여론의 눈치를 살피느라 의도적으로 탈락시켰다면 더 문제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약과다. 낙천자들의 탈당 사태에 이어 전통적 지지층까지 등을 돌리는 형국이다. 새누리당이 유 의원을 낙천시키면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응답이 10명 중 3명꼴에 이른 여론조사도 있다. 물론 의석을 내주든 말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새누리당이 책임질 문제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셀프 공천’으로 내홍에 휩싸인 더불어민주당도 사정은 오십보백보다. 유권자들이 혼선을 일으키고 있다는 얘기다.

집토끼 다 놓친 다음에 산토끼 잡겠다고 부산떨어 봐야 부질없는 일이다. 국민을 우습게 알고 대한민국을 정치 후진국으로 주저앉히는 공천 장난질이 더 이상 되풀이돼선 안 된다. 정치권은 이제라도 무엇이 진짜 국민을 위하는 길인지 진지하게 자문해 봐야 한다. 지금 이뤄지는 공천이 민의를 대변하는 것인지부터 따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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