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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깔끔한 어느 도시. 그 거리에 놓인 한 집의 벽면에 하늘로 들어서는 사다리가 놓였다. 뭉게구름 사이로 창까지 열어두고. 더욱 인상적인 건 그 앞에 선 신사의 거대한 뒷모습이다. 슈트에 중절모까지 갖춘 모습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저이가 말로만 듣던 그 ‘신’인가.
과연 그럴지도 모를 저 장면은, 작가 한성필(48)이 꺼낸 ‘도시의 기념비적 건축물을 담는 또 하나의 방법’인 ‘이면’(Verso)(2019 촬영/ 2020 프린트)이다. 파사드를 걸어 원래 건물이 그 가림막 뒤에 슬쩍 사라지고 또 다른 공간이 태어나는 낯선 광경을 사진으로 포착한 것이다.
다큐멘터리와 환상이 묘하게 교차하는 지점. 이 작업을 위한 작가의 스펙트럼은 대단히 넓다. 한국은 물론 미국 산타모니카, 쿠바 하바나, 호주 발라렛, 일본 후쿠오카 등을 차례로 ‘점령’했다. 세계가 좁다 할 행보에는 남극과 북극도 포함됐는데, 인간과 자연, 지구환경 문제를 담아내기 위해서란다.
무거운 카메라를 짊어지고 세계를 떠도는 고충을 마다 않는 이유는? 무구한 역사와 거대한 자연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한 번쯤 떠올려보라는 일침이 읽힌다.
11월 17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30 소울아트스페이스서 여는 개인전 ‘비밀의 공간’에서 볼 수 있다. 크로모제닉프린트. 122×170㎝. 작가 소장. 소울아트스페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