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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격변기 겪으며 정신무장, 촬영의 대가 정일성

박미애 기자I 2019.10.05 06:00:00
정일성 촬영감독
[부산=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일제시대에 태어났다. 해방이 됐고 분단과 전쟁, 4.19, 5.16, 12.12 등 격변의 시기를 겪었다. 긴장 속에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서 ‘영화를 통해서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정일성(90) 촬영감독이 60여년간 일군 영화인생의 원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격변의 시대였다. 격변의 시대는 그를 끊임없이 긴장시켰고 불안케 했으며, 정신무장토록 했다. 그 결과가 정일성을 촬영의 대가로 만들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으로 정 촬영감독을 선정했다. 영화제가 촬영감독의 회고전을 하는 경우는 드물기에 이번 회고전은 아시아 영화인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았다. 정 촬영감독은 4일 오전 부산광역시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 문화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개인적으로 영광이며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촬영감독들의 회고전이 개최되길 바란다”고 소회를 밝혔다.

정 촬영감독은 20대 후반 시절, 1957년 조긍하 감독의 ‘가거라 슬픔이여’를 통해 촬영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는 김기영 유현목 김수용 임권택 등 동시대를 대표하는 거장 감독들과 작업하며 파격적인 앵글과 색채의 미학으로 촬영을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한국영화계 독보적인 촬영감독이다. 1979년 교통사고로 큰 수술을 받았고 1980년 직장암으로 투병을 했지만 개인사는 그의 작품 의지를 꺾지 못했다. 정 촬영감독의 영화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던 독재정권 시절에 있었다. 그는 ‘알래스카의 늑대’에서 ‘왜 그랬던가’(1975)로 제목을 변경해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작품을 사례로 들면서 “그 시절에는 제목을 지을 수 있는 자유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정 촬영감독은 “역사적으로 핍박받은 일제시대에도 ‘아리랑’ 같은 명작이 탄생하지 않았냐”며 작품의 본질은 정신에 있음을 알렸다. 그는 “독재정권이라 해도 후배들에게 정신무장하게 해준 영화들이 있었기에 그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며 “표현의 자유는 없었지만 강렬한 색채를 통해서(‘화녀’), 어두운 시대에 더 어두운 영화를 통해서(‘만다라’) 저항했었다”고 정신의 무장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 촬영감독은 상업영화 중심의 현 풍토를 우려했다. 정 촬영감독은 “정치적 탄압만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게 아니다”며 “지금 영화를 하는 영화인들은 어찌 보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행복한 시대를 살고 있는데 그런 것을 생각하면 더 좋은 영화가 나와야 한다”고 유감을 표했다. 자본의 논리가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오늘날 업계의 현실을 지적한 것으로, 한국영화의 미래가 자본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독립영화에 있다고 한 이유다. 그는 “대자본에 항거할 수 있는 힘 있는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후배 영화인들에게 당부하며 “나 또한 젊은 감독과 작업을 통해서 기를 받고 또 다른 영화의 신세계를 구축하고 싶다”며 끝없는 작품 열정을 보였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2일까지 열린다. 올해 정 촬영감독의 회고전에서는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 유현목 감독의 ‘사람의 아들’(1980),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1980),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1981), 김수용 감독의 ‘만추’(1981), 배창호 감독의 ‘황진이’(1986), 장현수 감독의 ‘본 투 킬’(1996) 대표작 7편이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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