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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때녀'·'스우파'·'노는언니2'…왜 '언니'표 스포츠맨십에 환호할까

김보영 기자I 2021.10.14 06:00:00

여성 연대, 리더십 등 스포츠 정신 다룬 예능 인기
'골때녀'에서 '스우파'로, 페어플레이 정신에 열광
강인하고 정정당당한 모습에 신선함, 동경 심리 작용

(사진=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포스터)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Mnet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 1회에서 팀 ‘프라우드먼’의 리더 모니카(본명 신정우)가 상대 팀 ‘홀리뱅’의 리더 허니제이(본명 정하늬)를 최악(워스트)의 댄서로 지목하며 대결을 신청하자 허니제이가 남긴 말이다. 모니카와 허니제이는 크럼프와 걸스힙합, 각자 전공 분야 최고 자리에 올라 ‘춤꾼들의 스승’으로 불린 댄서다. 한 쪽의 자존심과 커리어에 흠집을 낼 수 있는 두 고수의 정면 승부에 모든 출연진은 긴장하며 숨을 죽였다. 반면 카메라가 비춘 허니제이의 표정엔 일그러짐 대신 미소가 번졌고, 후배들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던진 어록은 상대편 댄서들은 물론 전국의 시청자들까지 홀리며 ‘명대사’로 등극했다.

목표를 향한 ‘언니’들의 리더십과 노력, 연대, 의리, 존중, 페어플레이 등 ‘여성 스포츠맨십’을 보여주는 예능들이 각광받고 있다. 연예계 여성 축구팀들의 도전기를 담은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부터 여성 스트리트 댄서를 다룬 ‘스우파’, 여성 스포츠 스타들의 세컨드 라이프 일상을 그린 티캐스트 E채널 ‘노는 언니2’가 그 예다.

(사진=SBS ‘골때녀’ 방송화면)
女 축구 열정, 리더십 조명한 ‘골때녀’

여성이 메인인 스포츠,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이전에도 많았다. 다만 경쟁과 승패를 떠나 이들이 지닌 ‘스포츠맨 정신’ 자체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지난 6월부터 방송된 ‘골때녀’가 처음이다.

‘골때녀’는 각 분야 연예인 및 셀럽들이 여자축구팀을 꾸려 우승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린다. 배우는 물론 방송인, 가수, 개그맨, 모델, 타 종목 전 국가대표 선수 등 다양한 분야의 여성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국내 방송 사상 가장 많은 수의 여성 고정 출연진이 등장한다.

지난 2월 파일럿 방송 후 정규 편성된 ‘골때녀’는 첫회 시청률이 2.6%(이하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였으나 2회부터 6.2%로 2배 이상 껑충 뛰었다. 15회 넘게 방송한 현재까지 꾸준히 6~7%대 시청률을 유지하며 동시간대 예능 1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러한 시청자 성원에 힘입어 지난 6일 첫 시즌 마무리 후 공백없이 곧바로 시즌2 방송을 확정했다.

시청자를 사로잡은 비결은 남성들 못지않게 축구에 진심인 여성들의 열정과 노력, 리더십이 생생히 담겼기 때문이다. 특히 ‘불나방’ 팀의 리더 박선영과 ‘구척장신’ 팀의 리더 한혜진은 실력으로 전문 축구인들의 감탄을 이끌어내는가 하면 어려운 상황에 굴하지 않는 강한 정신력, 팀원들의 역량을 잘 살펴 이끄는 솔선수범의 모습 등으로 호응을 얻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미용 목적이 아닌 팀의 승리를 위해 체중, 체형까지 조절하며 몸을 관리하는 모습부터 팀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 부상까지 불사하며 축구공에 몸을 던지는 여성 출연진의 강인한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낯설면서 신선하게 다가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우파’를 이끄는 각 댄스 팀의 리더들. (사진=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비방, 신경전보다 페어플레이 정신 조명

지난 8월 방송을 시작한 ‘스우파’는 국내에서는 여성 스트리트 댄서들의 세계를 첫 조명한 경연 프로그램이다. 그간 연예인 뒤에서 무대를 돕는 존재 정도로 여겨지던 댄서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 그룹 ‘환불원정대’, 블랙핑크, 있지(ITZY), 박재범 등 유명 가수들의 안무를 만든 최고의 댄스 크루들이 대거 계급장을 떼고 대결하는 콘셉트로 눈길을 끌었다.

방송 이후 현재까지 6주 연속 비드라마 TV 화제성 1위(굿데이터코퍼레이션 발표 기준)를 놓치지 않는 것은 물론, SNS에 각종 ‘밈’과 각 크루, 구성원 개인 팬덤까지 형성될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프로그램이 이렇게 흥행한 게 단지 화려한 무대와 크루들의 인지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보다 대결 내내 잃지 않는 페어플레이 정신, 자신감에 기반한 자기 확신, 같은 목표를 공유한 상대방을 존중하는 매너와 팀원간 연대가 돋보이는 출연진의 언행이 더 많은 화제를 낳았다. 상대가 두려워 대결을 회피하거나 패배를 불안해하는 출연자는 없다. 그렇다고 상대편을 무작정 비하하거나 깎아내리는 발언, 그들에게만 불리한 계략을 세우지도 않는다. 결과 후에는 깨끗하고 승복한다.

시즌1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 9월 방송을 시작한 티캐스트 E채널 ‘노는 언니2’도 최근 방송된 ‘전국체전’ 특집을 통해 여성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특집은 국내 체육계의 가장 큰 대회로 꼽히는 ‘전국체전’이 코로나19로 축소되면서 참가하지 못하게 된 선수들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기획됐다. 각 분야 최정상 선수들이 자신과 거리가 먼 스포츠 종목 경기에 도전하며 보여주는 열정과 노력, 서로에 대한 응원 등이 재미 요소가 됐다는 반응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여성의 승부를 혹독한 경쟁과 질투, 시기, 신경전 위주로 보여주던 기존 프로그램 방식에 시청자들이 피로함을 느낀 게 이 프로그램의 인기에 한몫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대결은 치열하지만 정정당당하고 쿨한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일종의 ‘동경 심리’와 감동을 자극하며 공감 폭을 넓혀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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