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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갤러리] 주름 많은 세상에 왜 하필 구김인가…서웅주 '구겨진 걸작'

오현주 기자I 2022.07.21 03:30:00

2022년 작
회화적 환영 의도한 장치로 '구김' 선택
종잇장 같은 화면, 사실 평범한 캔버스
이미지 속임수에 빠지지 말란 조언처럼

서웅주 ‘구겨진 걸작’(Crumpled Masterpiece)(사진=슈페리어갤러리)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구겨진’(crumpled)이 진화를 했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바탕에 색선을 죽죽 박은 스트라이프를 세워놓고, 야속한 주름을 만들어냈던 ‘구겨진 줄무늬’가 업그레이드했다는 얘기다. 기어이 마스터피스(masterpiece)에까지 손을 댄 거다. ‘구겨진 걸작’(Crumpled Masterpiece·2022)을 꺼내놨으니 말이다. 게다가 ‘걸작’의 내용물은 또 반전이 아닌가. 패러디 명작쯤을 실감나게 구겨놨을 거란 기대를 무시하고 문패뿐인 명작을 들여놨으니.

구김을 그리는 작가 서웅주(41)의 ‘허상’이 또 빛을 냈다. 작가는 구겨진 종이로 회화적인 환영을 의도한다. 기가 막힌 붓질 덕분에 그저 종잇장처럼 보이는 화면은 사실 나무틀에 고정한 평범한 캔버스였던 거다. 방점은 오로지 잘 구기기 위한 데 찍는다. 초기에 주로 구겼던 사진도, 이후 추상적 도형이나 문자도, 어느 순간 등장한 줄무늬까지, 구김을 좀더 선명하게 보이려는 장치였다니까.

가뜩이나 주름 생길 일 많은 세상에 왜 하필 구김인가. 한마디로 이미지의 속임수에 빠지지 말란 거다. 어차피 눈앞에 보이는 저것은 환영과 실재가 벌인 ‘짜고 치는 고스톱’일 수도 있으니까.

8월 11일까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슈페리어갤러리서 이해민선·정주영과 여는 3인 기획전 ‘마음의 지층’(Layers of Mind)에서 볼 수 있다. 캔버스에 오일. 62.2×100㎝. 슈페리어갤러리 제공.

서웅주 ‘구겨진 회색 줄무늬’(Crumpled Gray Stripes #2203), 캔버스에 오일, 91×91㎝(사진=슈페리어갤러리)
이해민선 ‘배경이 근경이 되면’(2017), 면천에 아크릴, 116.8×91㎝(사진=슈페리어갤러리)
정주영 ‘북한산 No.53’(2017), 리넨에 오일, 100×105㎝(사진=슈페리어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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