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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고흐 떠난 비밀벙커… '대담한 빛'이 몰려왔다

오현주 기자I 2021.04.26 03:30:02

제주 빛의 벙커 '모네, 르누아르… 샤갈' 전
옛 국가통신망시설서 세번째 미디어아트
모네·르누아르·샤갈에 시냑·크로스·뒤피…
지중해 화가들 '혼돈 같은 붓 질서' 담아
회화 500점 35분 압축…10분 덤 '클레'도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1876) 중 한 장면.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빛의 벙커’가 세 번째로 올린 ‘모네, 르누아르… 샤갈’ 전의 벽과 바닥에 흐르고 있다. 인상파를 앞세워 신인상파·야수파·포비즘 등을 주도한 대가들의 걸작회화 500여점을 35분짜리 영상으로 압축한 미디어아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서귀포(제주)=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시간이 필요하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는데. 색이 빛에 적응하는데. 객관적으로는 도저히 가늠하지 못할 그 ‘예열’의 순간이 끝나면, 서서히 커튼이 걷힌다. 한바탕 잔치가 시작되는 거다. 수많은 붓끝이 빛을 불러내고, 끝없는 빛살이 색을 쏟아내는 성대한 연회.

그 자리에 꽃이 빠질 수 있겠나. 물 위에 올라탄 ‘수련’들(1910s)이 초대를 받았다. 지베르니연못에 여섯 명의 정원사를 두고도 못 미더워 몸소 돌봤다는 그 수련이 피우고 스러지길 반복할 때쯤, 꽃보다 화사한 여인들이 나선다. 들판 위로 쏟아지는 태양을 피해 ‘양산을 쓰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1886)을 앞세우고. 꽃잎을 흔들던 바람은 여인의 머리카락을, 치맛자락을 사정없이 건드린다. 그게 신호인 양, 눈 한 번 제대로 마주칠 틈도 주지 않는 그네들이 아쉬운 잔상을 남기고 사라져 간다. 앞벽에서 뒷벽으로, 이 기둥에서 저 기둥으로. 하지만 이도 잠시, 평화롭던 전경이 이내 왁자지껄해졌다. 그 유명한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1876)가 시작된 거다.

클로드 모네의 ‘양산을 쓰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1886) 등 주요 작품들이 바람결을 따라 흘러가는 중이다. 길이 100m 폭 50m 층고 5.5m를 꽉 채운 압도감이 ‘빛의 벙커’ 전의 장기이자 무기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클로드 모네(1840∼1926)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 중 단연 첫손에 꼽히는 이들이 나란히 나섰다. 아니 이들만이 아니다. 신인상파·야수파·포비즘 대가들도 차례로 불려 나왔다. 폴 시냑(1863∼1935), 앙리 에드몽 크로스(1856∼1910), 앙드레 드랭(1880∼1954), 모리스 드 블라맹크(1876∼1958), 알베르 마르케(1875∼1947), 피에르 보나르(1867∼1947), 라울 뒤피(1877∼1953). 그러다가 결국 ‘색채의 마술사’까지 기어이 소환하고야 만다. 마르크 샤갈(1887∼1985)이다.

어찌 보면 이들의 ‘조인’이야 새삼스러울 게 없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기획·상설전, 아니라면 미술사조를 망라한 크고 작은 도록과 책자, 하다못해 한때 새해 달력에도 꼭 붙어 다녔으니까. 그런데 아마 여기까진 상상하지 못했을 거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의 한 비밀벙커. 그 차가운 콘크리트 벽과 바닥을 녹이는 열기로 나서게 될 거라고는. 빛을 그렸던 이들이 빛에 의해 다시 태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란 얘기다.

빛의 벙커가 세 번째로 올린 ‘모네, 르누아르… 샤갈’ 전 중 한 장면. 수없이 점을 찍어 그림을 그린 앙리 에드몽 크로스의 그림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중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3000㎡ 가득 채운 빛의 거장들 색의 향연

제주 ‘빛의 벙커’가 세 번째 작품을 올렸다. 2018년 11월 첫 전시 ‘클림트’, 2019년 12월 두 번째 전시 ‘반 고흐’에 이은 ‘모네, 르누아르… 샤갈’ 전이다. ‘클림트’와 ‘반 고흐’가 개인전이었다면 이번에는 대규모 그룹전이라 할 만하다.

‘빛의 벙커’는 낯선 공간 낯선 방식으로 ‘그림을 감상하는 법’에 다른 길을 낸 미디어아트다. 한마디로 명작을 바탕으로 삼고 디지털 IT기술로 뼈대를 만든 뒤 음악으로 살을 붙인 종합예술인 거다. 길이 100m, 폭 50m, 층고 5.5m, 넓이 3000㎡(약 900평) 벙커, 그 벽과 기둥, 바닥까지 활용해 전방위로 ‘빛’을 투사하는데, 천장에 숨어 있는 90여개의 프로젝터가 수백 점의 이미지를 쉴새없이 쏟아내는 식이다.

빛의 벙커가 세 번째로 올린 ‘모네, 르누아르… 샤갈’ 전 중 한 장면. 사적인 내부공간을 즐겨 그리던 피에르 보나르가 프랑스 남부를 여행하며 풍경화가로 변신하던 시기에 그린 작품들이 눈에 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붙들어둘 수 없는 ‘찰나’가 관건이다. 움직이는 율동감에 속도감을 붙이고 위아래, 좌우, 앞뒤에서 걸작들이 튀어나왔다가 사라지는 입체감을 빚어낸다. 이번 전시에선 앞서 소개한 모네, 르누아르, 샤갈 등의 작품 500여점을 35분짜리 압축영상으로 만들어 흘려보낸다. 10분 남짓한 짧은 ‘덤’도 있다. 지난 두 차례의 전시에서, 클림트 뒤에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 반 고흐 뒤에 폴 고갱이 나섰듯, 이번 메인전 뒤엔 독일작가 파울 클레(1879∼1940)가 서브전을 책임졌다. 바이올리니스트로 평생 ‘음악그림’을 그렸다는 그의 다재다능하고 상상력 넘치는 회화세계를 광범위하게 펼쳐놨다.

라울 뒤피의 ‘니스 해변을 산책하는 사람들’(1926)이 물 흐르듯 흘러가는 중이다. 지중해서 옮겨온 깊은 푸른빛, 그 위에 얹은 화려한 사교계의 일상은 뒤피의 작품에 주요한 소재이자 모티프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눈만 유혹하는 게 아니다. 귀도 두들긴다. 심장박동 수를 높이는 70여개의 스피커가 배경음악을 진하게 깔아주는데, 말이 배경이지 눈을 감고 듣는다면 이 역시 주연급이다. 이번 명작을 서포트하며 기꺼이 조연을 자처한 위대한 음악가들은 모리스 라벨, 루카 롱고바르디, 클로드 드뷔시, 조지 거쉰, 존 서먼,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아마데우스 볼프강 모차르트 등. 협주곡과 오페라, 발레곡과 재즈를 넘나드는 장엄하고 서정적인 음악을 기껍게 헌정했다고 할까.

원작이 걸리지 않았다고 대놓고 외면할 일이 아니다. 원작을 거는 것 이상의 ‘수고’가 입혀지고 더해졌으니. 적어도 수십명의 전문가가 달라붙는 협업으로 이뤄낸 완성품이니까. 전시를 기획한 김현정 사업총괄이사는 “1년의 제작기간이 걸렸다”고 귀띔한다. “기획단계에서 작가와 작품을 선별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데 3개월여, 아트팀에서 연출기법을 고안한 뒤 그림·음악·공간의 세팅에 또 6개월 이상이 걸린다.”

빛의 벙커가 세 번째로 올린 ‘모네, 르누아르… 샤갈’ 전 중 한 장면. 누구나 인정하는 ‘색채의 마법사’ 마르크 샤갈의 작품 중 1962년에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하다사히브리 대학병원에 설치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재현되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전 두 전시와는 달리 이번에 치중한 건 ‘테마’란다. 이른바 스토리텔링을 입힌 건데. 전시에 출현한 화가들이 파리를 떠나 지중해 연안으로, 인상주의를 벗겨내고 모더니즘에 뛰어들게 한 여정을 캐냈다는 거다. 온화한 기후를 반영한 붓터치에 아낌없이 끌어들인 푸른빛, 어디까지 영감이고 어디까지 화풍인지 구분할 수 없게 한 ‘혼돈 같은 붓의 질서’를 살려내는 데 공을 들였다고 했다. 전시에 붙은 ‘지중해의 화가들’이란 부제는 그렇게 나왔다.

어두운 벙커 안에서 벌어진 일…빛에 빚진 색의 반란

한때 국가기간 통신망 시설로 썼던 비밀벙커. 태생이 비운했던 그 시절이 이런 식으로 보상을 받으리라곤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1985년 설계를 시작, 1990년 착공한 뒤 2012년까지 한국통신 해저 광케이블센터와 서버기지로 쓰였더랬다. 이후 5년여, 쓰임을 다해 방치된 공간을 ‘빛의 벙커’가 임대해 미디어아트 전시관으로 탈바꿈시켰다.

파울 클레의 ‘음악을 그리다’ 전에 나온 ‘황금물고기’(1925)가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다. 빛의 벙커가 세 번째로 올린 ‘모네, 르누아르… 샤갈’ 전 중 메인전에 이은 10분짜리 별도의 미디어아트로 제작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번 ‘모네, 르누아르… 샤갈’ 전은 ‘세 번째’의 고민을 온전히 입고 나왔다. 첫 전시 ‘클림트’, 두 번째 ‘반 고흐’에 이은 ‘다음’이라면 누가 나서도 부담이 됐을 터다. 그새 이룬 성과도 이미 만만치 않다. ‘클림트’에 56만명, ‘반 고흐’에 48만명이 다녀가 누적 관람객 수 100만명을 기분 좋게 넘겼다. 제주에 내려 빼놓으면 섭섭한 ‘코스’가 된 셈이다. 그러니 어찌 고민이 되지 않겠나. 그 갈림길에서 제작진은 굳이 대중성에만 집착하지 않기로 했나 보다. 움직임을 덜어낸 대신 세련된 화면을 선택하는 대담한 승부수가 보인다.

빛이 없다면 그림자가, 그림자가 없다면 빛이 의심을 받는다. 그럼에도 ‘빛의 벙커’에는 그림자가 없다. 대신 색이 있다. 오래전 인상주의의 태동이 그랬듯 빛에 빚을 진 건 색이다. 하기야 뭐든 상관이 있겠나. 그저 마음을 뚝 떨어뜨리면 된다. 감각을 열어둔 만큼만 보인다, 빛이든 색이든. 전시는 내년 2월 28일까지.

파울 클레의 ‘음악을 그리다’ 전 중 한 장면. 그림과 그림이 이어지는 순간에 잡아낸, 넓이 3000㎡(약 900평)를 가득 채운 가히 ‘빛과 색의 랑데부’라 할 만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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