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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도 美도 "정상회담 어렵다"면서도…물밑 협상 가능성

정다슬 기자I 2020.07.18 00:00:50

美싱크탱크 "백악관 北위한 새로운 협상안 준비 중"
美 제대로 된 협상 못했다는 아쉬움…비건 "최선희, 낡은 사고방식 사로잡혀"
정상회담 안 이뤄져도 상황 관리 가능해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북·미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에 사인을 하고 있다.[사진=AFP제공]
[이데일리 정다슬 김혜미 방성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구체적인 협상 카드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대선이 불과 석 달 남은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마지막일 수도 있는 협상 카드다. 그러나 북한과의 협상은 대선 정국을 뒤집을 ‘반전 카드’도 활용하고자 하는 트럼프 행정부와 실질적인 대북 제재 해제를 원하는 북한의 입장 차이는 그 어느 때보다 큰 것 역시 사실이다.

美 “양보를 위해 양보를 교환할 의향”

해리 카지아니스 국익연구소 한국담당 국장은 16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대통령 선거 이전에 북한과 합의라는 돌파구를 원한다’는 제목의 아메리칸 컨저버티브 기고에서 “복수의 백악관 고위 관리들에게서 새로운 제안을 검토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비건 부장관의 방한 전후로 “미국과의 마주앉을 생각이 없다”(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는 말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왔다. 다만 비건 부장관 귀국 후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두 수뇌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어떤 일이 과연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른다”면서 또 여지를 남겨두기도 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연내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부인하면서도 “우리가 북한 비핵화라는 세계의 목표에 대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우리는 북·미 정상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카지아니스 국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적어도 현재로서는 양측에 명확한 결과물을 제공할 수 있는 양자회담의 아이디어를 개발 중이라고 언급했다. 핵심은 “민주당 대선 캠프로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약하다고 불리지 않으면서도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 ‘적당한 조치’(modest step)를 할 수 있을 만한 제공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냐다.

북한이 1곳 이상의 핵심 생산 시설을 해체하고 핵과 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유예)을 공식 선언하면 미국이 제재 완화 패키지를 제공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또 그는 국무부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의 핵무기 시설 동결은 물론, 핵물질과 미사일 생산의 중단을 담보하는 것에도 관심이 있다고 전했다. 하노이 회담에서 양측 모두 관심을 보였던 종전선언도 미국이 이번 회담을 통해 가능하다고 보는 선택지 중 하나다.

카지아니스 국장은 “우리는 양보를 위해 양보를 교환할 의향이 있고 테이블에 많은 새로운 것을 올려놓고 과거에는 하지 못했던 일부 위험을 감수할 수도 있다. 우리는 북한이 원하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이 일이 작동되도록 하고 싶다”는 백악관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비건, 대북 협상카드 품에도 못 꺼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는 비건 부장관들이 만들어놓은 안(案)을 한 번도 제대로 북한에 설명할 수 없었다는 아쉬움이 있다”며 “이를 한 번 제대로 협상하고 싶다는 생각은 분명히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실무협상에서 북측 대표로는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참석했지만, 화기애애했던 초반 분위기는 단숨에 반전돼 결국 빈손으로 끝났다. 일각에서는 북측 대표로 나선 김 대사는 애초에 협상책임 권한이 없었다며 스톡홀름 실무회담은 하노이회담 무산에 따른 굴욕을 되갚아주려는 북한의 ‘쇼’였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비건 부장관은 지난 8일 한국을 방문해 북한에 카운터파트너를 교체해줄 것을 촉구했다. 그간 비건 부장관의 북측 카운터파트너가 최선희 제1부상이라고 대내·외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성명이다. 비건 부장관은 주한 미국대사관을 통해 최 제1부상을 “낡은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부정·불가능한 것에만 초점”이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부장관으로 지명되면서 받은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최 제1부상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라며 카운터파트너가 될 것을 촉구한 것과는 거리가 있는 발언이다.

미국이 지속적으로 북한과의 협상 의지를 나타내고 있지만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3개월 남짓 동안 미국과 북한의 입장 차를 좁히고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시간이 촉박하다.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해 ‘행동 대 행동’ 단계적 비핵화를 수용할 경우, ‘10월 서프라이즈’를 통해 여론의 반전을 이끌려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히려 후폭풍에 직면하게 된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다면 회담장에 나오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다.

북한이 당장 회담장에 나오지 않더라도 회담 개최 여부를 둘러싼 ‘밀고 당기기’가 이뤄지는 것만으로도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 교수는 “북한은 협상 과정에서는 도발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대선에 부정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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