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레고랜드 사태처럼 은행에 쏠리는 자금, 금융 시스템 불안 부르나

이명철 기자I 2023.07.17 04:59:00

5대 은행 수신잔액 다시 1900조원대, 2금융권은 감소 추세
은행채 발행 줄인 은행, 예금금리 올려 수신자금 조달 나서
예금금리 인상 경쟁, 대출금리 올려 예대금리차 벌어질 수도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최근 은행권에 자금이 몰리고 있는 이유는 일련의 2금융권 불안 사태와 더불어 예금금리 상승세가 맞물렸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이는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 신청(일명 레고랜드 사태)으로 은행권에 자금이 몰렸던 지난해 하반기를 연상하게 한다.

당시와 같은 상황이 재발하면 2금융권 또한 예금금리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고 결국 대출금리는 상승 압박을 받게 된다. 이는 대출 연체율이 상승하는 국면에서 금리에 부담을 줌으로써 금융 시스템 불안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financial chart with uptrend line graph of stock market and people on cityscape background


◇“2금융권 불안해” 은행에 예금 넣는 고객들


시중은행에 쌓이는 예·적금 자금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총수신 잔액은 3월말 1871조5000억원에서 3개월 연속 증가하며 6월말 1913조4000억원까지 불어났다.

총수신 잔액이 1900조원을 넘었던 것은 지난해 11월(1901조4000억원)이 마지막인데 이때보다도 더 많은 사상 최대 규모다. 이어 새마을금고 사태가 불거진 이후 이달 7일까지는 1919조원까지 늘었다.

5대 은행의 정기예금은 3월말 805조3000억원에서 6월말 822조3000억원으로 17조원 가량 증가했다.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을 포함한 요구불예금도 같은기간 6조4000억원 늘었다.

은행에 자금이 몰리는 이유는 우선 예금금리 자체가 오르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 공시를 보면 5대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12개월)는 현재 3.50~3.90%로 기준금리(3.50%)를 웃돌고 있다. 5월 초만 해도 모두 3.4%대에 그쳤지만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예금금리 또한 상승하는 추세다. 정기적금 금리(12개월)도 3.75~5.65%로 부쪽 올랐다.

시장금리가 오르다 보니 은행들도 은행채를 발행하기보다는 예금금리를 올려 자금을 조달하는 경향도 커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은행채 발행물량은 5월 24조7600억원으로 최대치를 찍은 후 6월 19조7200억원으로 감소했다.

발행액에서 상환액을 뺀 순발행액도 5월 9595억원이었으나 6월에는 마이너스(-) 1조5005억원을 기록했다. 5월만 해도 상환 외 추가 용도로 은행채를 발행했다면 6월은 은행채 상환을 위해 발행하기에도 급급했다는 의미다. 결국 나머지 자금은 수신을 통해 조달한 셈이다.

2금융권에 대한 불안 심리도 은행권에 자금이 이동하게 하는 요인이다. 새마을금고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에 따른 연체율 상승으로 구조조정에 들어갈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앞서 저축은행도 부동산 PF 부실과 연체율 상승 우려로 2금융권에 대한 불안을 키웠다.

공식적으로 집계·발표되진 않았지만 이를 통해 일부 고객들은 새마을금고, 저축은행에 넣어뒀던 예·적금을 빼 은행이나 다른 상호금융에 넣어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상호저축은행의 수신 잔액은 올해 1월말 120조8000억원까지 늘었으나 이후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5월말 114조5000억원으로 6조원 이상 빠져나갔다. 새마을금고 수신 잔액도 같은기간 260조원에서 258조6000억원으로 1조4000억원 정도 줄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기준금리 그대론데 시중금리만 올리는 부작용


막대한 자산을 보유한 시중은행 등 은행권은 2금융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하지만 은행권에 대한 자금 쏠림은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예금금리를 올린 은행권에 자금이 몰리게 되면 채권시장에서 조달이 여의찮은 2금융권은 예금금리를 올려서 대응할 수밖에 없다. 결국 예금금리 인상 경쟁이 벌어지게 되면 예금금리를 기준으로 하는 대출금리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지난해 10월에는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급격히 위축된 바 있다.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자 금융당국은 은행채 발행 자제를 요청했다. 이에 은행들은 은행채 대산 수신 자금 조달차 예금금리를 올려 자금이 쏠렸다. 지난해 10월과 11월 5대 은행 수신 잔액이 1900조원을 넘긴 것도 예금금리 상승 영향이 컸다.

예금금리의 급격한 상승은 2금융권에게는 자금 조달 압박 요인으로 작용했고 대출금리 상승으로 번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저축성 수신 평균 금리는 지난해 1월 1.65%에서 11월 4.29%까지 급등했다. 대출 평균금리 역시 같은기간 3.45%에서 5.64%로 뛰었다.

발단은 다르지만 최근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올리는 모습은 레고랜드 사태 당시와 유사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새마을금고는 채권시장에서 핵심 플레이어가 아니고 은행들이 환매조건부채권(RP)을 받아주고 있어 유동성 우려는 잦아들었다”면서도 “뱅크런을 막기 위해 2금융권에서 수신금리 경쟁이 일어나면 대출금리가 상승할 수 있는 점이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예대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자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인상 자제를 요청했고 올해 들어 은행들은 ‘상생 금융’ 명목으로 인위적으로 대출금리를 낮췄다. 이는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잡기 위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와 배치되면서 일각에서는 ‘정책 엇박자’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준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은행에 자금이 몰리면 은행의 힘이 세져 예대 스프레드(금리 차이)를 더 벌릴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며 “이는 유동성 회수 효과보다는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를 키울 수 있는 만큼 2금융권에 대한 위험관리를 강화해 소비자를 안심시키는 방안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